권영진 노들야학 동문을 추모하며
양현준
사단법인 노란들판 이사장
2000년 무렵, 호리호리한 몸에 수동휠체어를 타고 자가용을 운전해 노들장애인야학에 다녔던 권영진 동문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된다. 사고에 의한 척수장애를 지니고 있었지만 신경이 일부 남아 있어 통증을 많이 호소했었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난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처음 불타오르던 때, 야학 총학생회장을 하며 앞장서 활동했던 그였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붙임성 있게 다가갔기에 많은 이들이 그를 좋아했다. 야학 수업을 마친 후 늦은 시간 술자리나 집회 뒤풀이 자리에 끝까지 같이 있었고, 마지막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집까지 자기 차로 데려다 주곤 했다. 장애인 이동권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척박했던 시절, 학생들을 자신의 차로 야학까지 같이 태우고 오거나 귀가 지원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섬세한 성격이지만 투쟁에서는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장판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장애인 이동권 투쟁보고서 - 버스를 타자!」에 그의 모습이 나온다. 버스 앞을 가로막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그는 노들야학 졸업 후 경기도에 정착해 활동을 했고, 이천시 이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았다. 그러나 그를 늘 힘들게 했던 통증으로 인해 오래 활동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며 치료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오래 전 기억이다.
그리고 한동안 소식을 모르고 지내다 지난 4월 1일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늦은 시간 그의 장례식장에 가서 명복을 빌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 우리와 함께 했던 동료, 초창기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헌신적으로 함께 했고 장애인자립생활 운동을 개척하며 불꽃처럼 살다간 청년이다.
한창인 나이에 급작스런 떠남도 황망하지만, 통증으로 힘들어 했던 기억이 더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그의 영면을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