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
이제 정치가 책임져라!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2021년 12월 3일부터 시작된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100회 이상 참여했다.
지난 9월부터 정기국회가 시작됨에 따라 ‘23년도 정부 예산안이 국회의 심의 절차를 가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작년 12월부터 외쳐왔던 ’23년 예산 요구가 반영될 것인지, 아니면 국회의 정치 다툼 속에 휴지조각이 될지, 곧 판가름이 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의 국회 예산 심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국회가 과연 제 역할을 할지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국회는 예산 ‘심의’ 권한을, 기획재정부는 예산 ‘편성’ 권한을 갖고 있다지만, 기획재정부가 반대하면 실제로 증액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보다 기획재정부라는 관료 권력이 더 상위에 있는 것만 같다. 면담을 통해 예산 요구를 할 때면, 여당은 야당이 반대해서, 야당은 여당이 반대해서 안 되는 거라고, 서로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어떤 해에는 국회의원들이 서로 헐뜯고 정치 다툼을 하느라 회의가 개최되지 않아 예산 심의 자체가 없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23년 예산도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쉽사리 예측하기엔 어렵지만, 우리는 국회가 제 역할을 다 하도록 정치의 책임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투쟁을 그저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장애인권리예산에는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장애인평생교육시설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활동지원 수가 및 월 평균시간 확대 △탈시설 장애인 활동지원 추가 월 240시간 보장 △근로지원인 확대 및 동료지원가 사업 개편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예산 요구를 가지고 전장연은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기본소득당 등 모든 원내 정당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만이 면담 요구에 대한 어떠한 회신도 없는 상황이다. 10월에만 3차례에 걸쳐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통해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면담을 촉구했다.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고 했건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장애인 예산이 OECD 최하위라는 사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당 대표와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장애인권리예산이 전장연이라는 특정 단체만 요구하는 예산이라며 절대로 들어주면 안 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장애인권리예산은 대한민국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여전히 차별하기 위해 정파 논리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요구는 역대 정권 내내 계속되어 왔다.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 차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의 가치는 지금껏 장애인들에게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산 없는 권리, 공허한 부도 수표만 남발되었다. 파란당이 집권했을 때도, 빨간당이 집권했을 때도 일관되게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아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정치 권력의 뻔뻔함에 화가 난다. 역대 정부 중에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으로 책임 있게 보장한 정부가 있었다면, 이 시위는 장기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집권했던 정치권력 모두 장애인권리예산의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이제라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11월 중순이 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소위원회가 가동되어 예산 심의가 구체화된다.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통해 삼각지역(윤석열 대통령 용산 집무실)에서 국회의사당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이동의 여파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고,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이 불편을 야기하는 권력에 함께 책임을 물어주셨으면 한다.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연대와 참여를 촉진하는 직접 행동이기도 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모르고 살았던 비장애인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장애인권리예산 요구’를 맞닥뜨렸을 때, 99%는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1%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이 분명 조금씩 늘어날 것이다.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불편함을 겪으면서, 이 불편을 멈추기 위한 정치의 책임을 함께 촉구해줄 것이라고, 그렇게 이 사회가 변화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