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애인탈시설지원 조례를 만들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박미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들을 만나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노들과 함께라는 것은 언제나 자랑스럽습니다.
2009년 김포에 위치한 장애인거주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장애수당 미지급 등의 비리와 횡령, 그리고 끔찍한 인권침해에 분노한 장애인 8명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33일간 대한민국 최초로 ‘탈시설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전개하였다. 이에 서울시는 자립생활주택, 탈시설 정착금, 탈시설 전담부서 설치 등 전국 최초로 선도적 탈시설 정책을 시행하였고, 여전히 미흡한 측면은 있지만,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확인하였고, 어느 지자체보다 모범적으로 장애인 탈시설 및 자립생활 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하지만 탈시설 정책 시행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부재하여 시장의 말 한마디에, 의지에 따라 탈시설 정책이 축소되거나 역행할 위기에 처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반복되어왔다.
서울장차연의 지속된 요구와 질긴 투쟁 끝에 2021년 3월 30일, 서울시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지원주택 공급, 활동지원급여 등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개별 조례에 일부 내용이 담겨 시행되고 있지만, 탈시설화 정책을 아우르는 조례의 부재와 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보다 안정적 정책 추진을 위해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탈시설화 정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 조례」를 2021년 연내 제정하겠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연내 제정 약속은 결국 이행되지 못하였고,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졌다.
우리는 탈시설 조례 제정을 촉구하며 2022년 4월 5일 시청역 승강장에서 농성을 시작하였고, 5월 30일 서울시의회 앞으로 농성장을 한 차례 이전하여 농성을 이어갔다. 단단한 서울시 투쟁의 거점을 기반으로 기자회견, 결의대회, 문화제 등 강고한 투쟁을 지속 전개하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요지부동이었다. 20년, 그 이상을 지연되어왔던 ‘시민’으로서의 권리,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일상’을 살아갈 권리.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10대 서울시의회 종료까지 한 달. 기존에 서울장차연이 제시한 ‘조례’보다는 많이 축소된 내용이었지만, 민관협의체 협의안을 바탕으로 5월 25일,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의원 발의(서윤기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2) 대표발의)로 추진하였다.
조례 발의 후 절박한 심정으로 뙤약볕 아래에서 매일 같이 피켓팅과 결의대회를 이어나갔다. 거센 반대와 비난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많은 동지들이 서울시의회 앞으로 쏟아져 나왔고, 하루하루를 그저 묵묵하게 채워나갔다.
6월 13일, 찬성5 : 반대2로 조례(수정안)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여 본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드디어 2022년 6월 21일, 본회의 날이 찾아왔다.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동지들을 비롯한 많은 동지들로 서울시의회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결의대회는 후반부로 달려가고 있었고, 그곳에 있던 경찰관들도 ‘조례가 통과되어 행진은 없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으고 전광판을 직시하고 있었다.
찬성 54, 반대 2. 결과 : 가결(통과).
파란 전광판에 뜬 글씨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나왔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동지들도 보였다. 나 또한 펑펑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의 기분을 아직 형용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잠 못자며 보도자료를 쓰고 엠프를 나르던 나날들이 떠올라서? 너무 기뻐서? 그날 동지들의 함성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공동생활가정·단기거주시설·영유아시설이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신규 시설 설치 및 신규 입소 제한 조항이 포함되지 못하였으며, 탈시설 욕구를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 의사소통을 지원하여 탈시설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해당 조항이 제정 과정에서 삭제되는 등 많은 한계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 24시간 개인별 지원체계 수립을 통한 지역사회 중심의 장애인 권리가 실현되기 위한 출발점. 그 앞에 우리의 힘으로 당당하게 동지들의 손을 맞잡고 설 수 있게 되었다.
‘탈시설’은 찬성과 반대라는 논쟁과 사회적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UN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적이고 보편적 권리이다. ‘탈시설’은 무작정 올해 안에 시설을 폐쇄하라는 것이 아니다. 시설 수용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단단하고 촘촘한 24시간 지원체계 보장과 함께 모든 시설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 될 것이다. 가자! 지하철 타고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