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퀴어퍼레이드다
이창현
행동하는 성소수자
태양이 땅으로 내려와 한강에서 사우나를 하는듯한 끈쩍하고 더운 날씨.
2022년 7월 코로나 이후 무려 3년 만에 열린 축제 퀴어퍼레이드.
퀴어퍼레이드를 10년 이상 참가해 보았지만, 이번 축제는 더욱더 특별했다. 억압된 해방감. 단 하루 나 자신을 모두 다 같이 표현하고 당당하게 행진할 수 있는 날을 기도하듯이 기다려왔다. 2022년 이전 퀴어퍼레이드 줄여서 ‘퀴퍼’, 내 인생의 퀴퍼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부모모임'을 통해서였다. 부스 참여를 하고 행진도 하고 트럭에서 춤도 추고, 무대에서 공연 댄스를 참여한 기억이 부끄럽게, 기억이 난다.
친구들 사이에 퀴어퍼레이드는 명절과 비슷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 친한 친구, 싫어하는 친구. 전 애인. 전에 썸 탄 사람. 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 나랑 싸운 사람 등등 만난다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축제(명절)이니까 어떠한 멋진 옷을 입을까? 퀴어퍼레이드까지 운동을 해야겠다! 명절이니까 휴가를 내고 근처에 숙소를 예약하고 친구들과 놀거나 이태원에 클럽을 가거나 종로에서 술을 먹거나 하는 아름다운 과정을 거친다. 나도 명절을 대비하여 의상을 고르고 렌즈를 끼고 최대한 멋지게 준비를 하고 축제이자 투쟁의 현장 퀴어퍼레이드로 출동한다.
그 명절 같은 퍼레이드에서 이번에는 내가 노동하고 활동하는 노들장애인야학 이름으로 부스랑 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소수자 관련된 단체가 아닌 장애인 단체로 참여하는 건 처음이다. 뭔가 부끄러움 반 어색함 반으로 퀴어퍼레이드 준비를 한 것 같다. 그래도 직장인데... 같이 연대하지만 뭔가 왜 이리 부끄럽지? 라는 내면의 겨자씨만한 걱정은 있었다.
때마침 개인 sns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랑 같이 연대 행진을 하면 어떠할까? 라는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는데 어찌어찌하여 정말로 행성인이랑 전장연이랑 같이 트럭을 준비하는 팀이 꾸려졌다. 아쉽지만 트럭 계획은 불발되고 트럭 대신 어떻게 행진을 할지 대항로 활동가, 행성인 활동가가 모여서 회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눈 굴러가듯 무심히 ‘이렇게 하면 좋겠다’가 정말 ‘이렇게 되는구나’라는 현실로 느낀 순간이었다. 구호도 만들고 피켓도 만들고 굿즈를 준비하고 행진준비를 잔뜩 했다.
행사 당일 빨간색 반팔 저고리에 하얀 반바지를 입고 퀴어퍼레이드를 향해 출발했다. 퀴어퍼레이드는 즐기고 축하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가는 길목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사랑하니까, 동성애는 치료할 수 있어요, 돌아오세요, 부모님이 이 짓 하는 거 아냐? 사탄의 자식들, 음란마귀들, 이런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오는 혐오 세력도 함께 찾아온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특히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모여온다. 서울 말고 다른 곳 퀴어퍼레이드는 폭력적인 사건도 있고 테러를 당하는 일, 집단 린치를 당하는 상황도 있지만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신촌에서 진행한 퀴어퍼레이드 이후로는) 생각보다 잠잠하게 진행한다.
처음에는 정말 왜 저러지 저 사람들? ‘제발. 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부처님을 믿고 하니 그런 말 그만해라’ 또는 감정적으로 욕을 하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아이고 또 오셧네요? ㅎㅎ 여러분들도 이 축제를 즐기러 오셨군요. 저희 성소수자 없으면 여러분 심심해서 어쩌나요? 파이팅!’ 하는 마음가짐으로 지나간다. 그 혐오의 길목을 지나가면 무지개 깃발이 찰랑찰랑 흩날리는 광장에 도착!
무덥고 끈적하고, 하필이면 2022년 퀴어퍼레이드는 서울시 중구에만 비가 쏟아지는 기적 같은 날씨였다. 노들야학X전장연 부스에서는 투쟁 사다리에 쇠사슬로 꾸민 포토존을 만들었다. 핫이슈인 지하철 투쟁에 많은 사람이 연대와 응원을 보내주셨다. 지나가는 나의 지인에게도 같이 사진 찍고 가라, 부스 보고 가시라, 홍보도 하고 안내도 많이 하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하는 축제의 노동이었다.
축제의 꽃 행진
비가 폭포처럼 올 때, 움직이는 철장 감옥 안에 스피커를 올리고 비닐로 보호조치를 하고 활동가들이 밀면서 행진을 시작했다. 스피커에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몸을 흔들면서 행진을 했다. 오르막길, 스피커에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서 함께 올라가는 상황이 펼쳐졌다. 다른 차량 스피커는 폭우로 고장이 났지만 장판의 스피커는 폭우의 투쟁 속에서 승리했다. 꿈같은 행진이 끝나고 다들 웃는 얼굴로 비가 그친 하늘을 보면서 투쟁을 외치고 3년 만에 진행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끝맺음이 되었다.
이번 퀴어퍼레이드는 나에게는 ‘연대란 무엇인가?’ ‘내가 소속된 곳에서도 프라이드를 즐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고 그리고 답을 찾아준 축제였다.
답은 차별 없는 이곳 노들야학 우리 모두 즐기고 외치고 나는 이곳에서 아주 당당하게 내 자긍심을 가지면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투쟁하고 노동하는 이곳에 있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것. 또한 응원하는 많은 동지가 친구가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확인하게 되었다.
퀴어퍼레이드는 서울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 열리고 있다. 그 축제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차별 없는 세상, 권리를 쟁취하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해피 프라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