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을 132호 - 계속 질문하겠습니다 / 민푸름

by 루17 posted Aug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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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질문하겠습니다

고민하고, 실천하고, 다시 고민하고, 그럼에도 또 실천했던

노들센터의 20년을 맞이하며

 

 

민푸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금년 종로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노들센터는 <계속 질문하겠습니다>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노들센터 개소 20주년을 기념하면서다. 10주년, 20주년을 기념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와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이슈다. 노들센터 20주년도 마찬가지다. 다큐멘터리 최종본을 만들기까지 4개의 기획안이 나왔고, 제작에는 꼬박 4개월이 걸렸다. 이 과정은 노들센터가 20주년을 맞이하여 무엇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 그래서 이 20주년을 어떤 계기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그 고민을 기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지면을 빌려 공유하고자 한다.

 

 

  1. 개요

 

   -UN 장애인권리협약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독립적으로 사는 것에 관한 일반논평 5’ 서론에서 “많은 장애인들은 그 자신이 선택한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아예 없거나 [수용 시설 같은] 특정 삶의 방식과 연계되어 있었고, 지역사회의 기반 시설은 모두를 포용하는 형태로 고안되지 않았다. 자원은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투자되기 보다는 시설에 투자됐다. 결국 장애인들은 가족들에게 의존하거나 버려지고, 시설에 수용되고, 고립되고, 분리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시설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장애인이 탈시설과 지역사회로의 자립을 통해 권리의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매우 중요한 장애인의 권리 중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은 장애인뿐 만이 아니다. 청소년들 또한 가정에서, 학교에서 자신의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장애인들이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하여 지역사회로 자립하듯, 청소년들 또한 가정으로부터, 학교로부터 탈시설하여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택한 장애인들은 ‘나쁜 장애인’으로, 청소년들은 ‘비행 청소년’으로 쉽게 낙인찍힌다.

 

   -이러한 낙인에 대항하여 탈시설, 탈가정, 탈학교를 자신의 존엄을 되찾아가는 과정으로 의미화하며,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와 탈가정, 탈학교 당사자가 일대일로 서로의 탈시설 이전, 탈시설 과정, 탈시설 이후의 삶을 알아가는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탈시설을 키워드로 서로의 삶이 어떻게 다르고, 동시에 어떻게 맞닿아있는지 확인하며 시설화된 사회에서 연대감을 가지고 서로의 삶을 독려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시설화된 사회에서 서로의 삶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확인함을 넘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권리의 주체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전환을 이야기하고, 어떤 제도적 안전망이 필요한지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

 

 

  2. 예상 제작 과정(가안/3-5월 중 진행 예정)

 

  〈사전 인터뷰〉

   -워크샵 1회기 (탈시설과 탈가정, 탈학교의 연관성)

   -장애·청소년 당사자 상호 인터뷰 1회차 (탈시설한 곳과 이유를 중심으로)

   -장애·청소년 당사자 상호 인터뷰 2회차 (탈시설 이후 유의미한 사건, 인물, 장소를 중심으로)

   -장애·청소년 당사자 상호 인터뷰 3회차 (탈시설 이후 삶의 변화를 중심으로)

   -장애·청소년 당사자 상호 인터뷰 4회차 (탈시설 이후 현재 삶의 목표, 목적을 중심으로)

 

 

  첫 번째로 작성한 기획안이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만드는 영상에서 갑자기 무슨 탈가정, 탈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나 싶을 수도 있지만, 지난 1년간 권익옹호활동가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나눴던 이야기가 탈시설 운동에서의 ‘시설’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였다. 2021년도에는 탈시설장애인당 활동을 권익옹호활동가분들과 열심히 했는데,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UN 장애인권리협약 중에서도 자립생활과 탈시설 관련된 부분을 별도로 톺아보기도 하고, 탈시설 운동의 당사자는 장애인거주시설로부터 탈시설 한 사람들만 이야기하는 걸까? 탈재가 당사자들은 시설에 살지 않았으니 탈시설 운동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있는 걸까? 재가장애당사자의 경험과 탈시설 당사자의 경험이 맞물리는 부분도 많은데 이 경험을 ‘탈시설 운동’의 맥락 안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뭘까? 하는 고민들을 나눴다. 그래서 발바닥 활동가를 강사로 모시고 탈시설과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장애인거주시설을 ‘비롯한’ 시설, 그리고 시설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렇게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노들센터에서 탈시설 운동에 함께 하며 당사자들이 탈시설 운동에 대해 가졌던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기록하면 시설이 존재하는 사회, 그리고 시설사회에서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의 일원들이 가져야하는 고민들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들센터 20주년을 맞아 이러한 고민을 확장해보고 싶었다. 특히나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의 활동을 권익옹호활동가 분들과 함께 세미나 등을 통해 알아가보았던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청소년의 탈시설과 주거권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었고,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이야기하는 탈시설, 시설, 가족, 주거권의 이야기들과 진보적 장애운동 판의 탈시설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보는 것이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이 가진 고민과 비전을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의 탈시설과 장애당사자의 탈시설을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엮어가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자립생활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노들센터의 지난 20년과 앞으로의 20년을 살펴보는 기획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아쉽게도 다른 기획을 준비해야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주년 기념: 했고, 하고 있고, 해야 할 것(가)

 

  장애인 이동권 운동과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중증장애인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활동지원서비스’이다. 중증장애인들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활동지원이 필수적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지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중증장애인들은 지난한 투쟁을 통해 이를 권리로서 쟁취해냈다. 이후 2005년 활동지원서비스 시범사업이 시작되고, 2006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활동지원서비스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겨우 장판에 들어온 지 1년 밖에 안 된 나는 궁금하다.

  1) 활동지원서비스가 없을 때 중증장애인들은 어떻게 지원을 받았을까? 노들센터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을 때 어떤 역할을 했을까?

  2) 활동지원서비스가 시범사업일 때와 법령으로 제도화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당사자들은 더욱 안정적인 서비스를 받게 되었을까?

  3) 활동지원서비스만 받는다고 중증장애인들이 완전히 지역사회에 통합될 일은 없다. 이들이 탈가정, 탈시설을 하고자 할 때, 주거지원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노들센터는 어떻게 이를 지원했을까?

  4) 체험홈과 평원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이후 자립생활주택이 생겼다는데 자립생활주택과는 또 어떻게 다른 걸까?

 

  이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보완되어왔는지, 제도의 공백을 노들센터의 활동가들이 어떻게 메우고자 노력해왔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도를 만들고, 고치고, 제도의 공백을 메웠던 노들센터 활동가들의 노력이 지난 노들센터의 20년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20주년을 맞아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해왔던 센터의 족적을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거지원을 키워드로 따라가보고자 한다.

 

 

  그렇게 나온 두 번째 기획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획안 또한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영화를 만들기까지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와 두 번의 기획회의를 가졌다. 그 중 한 번 이 기획안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당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로부터 들었던 평가 지점이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기획안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난 20년간 어떤 성과를 내왔는지를 드러내고자하였다. 그러나 1) 노들센터의 투쟁보다는 노들센터가 제공해왔던 서비스에 더욱 기울어져있다는 점, 2) 노들센터의 20년간의 성과(투쟁의 성과이든 서비스 제공에 대한 성과이든)를 노들센터를 거쳐간 여러 인물들을 통해 기록해야해서 하나의 서사로 통합되기 어렵겠다는 점, 이라는 두 가지의 중요한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이 기획안은 이 기획을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보았을 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지난 20년간 노들센터에서 만들었던 각종 서류들과, 사진, 영상 등의 미디어자료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연도별 사업계획서와 사업결과보고서를 시작으로, 이 사업이 어떻게 구상되고, 진행하면서 어떤 우여곡절들이 있었는지, 종료되고는 어떤 피드백이 나와 어떤 부분을 반영하여 진행했는지 등을 보기 위해 주간회의록, 사업 장면장면들을 담은 사진과 영상들, 센터 서버와 서류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은 어지간하면 다 본 것 같다.

 

  더불어 화면에 들어갈 장면들을 구상하기 위해 노들센터의 20년에서 중요한 장소들을 이곳저곳 가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2002년 노들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던 명륜동의 대보빌라, ‘체험홈’이라는 이름으로 탈시설당사자들과 함께 했던 성북구의 주택, 이후 본격적으로 제도권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된 수유동과 하월곡의 남성/여성 자립생활주택 등을 방문했다. 그 곳에 가니 서류와 자료들을 볼 때는 들지 않았던 질문들이 새로 생겼고, 그 질문들을 바탕으로 다시 서류를 검토하거나 어떤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예컨대, 이 주택은 어떻게 구하게 됐는지,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입주자 분들이던 동지들의 당시 주된 활동반경은 어디였는지, 동지들의 당시 반응은 어땠는지, 어떤 부분을 좋아하셨고, 어떤 부분을 불편해하셨는지 등이 그랬다.

 

  다양한 자료들을 살펴보고 현장들을 방문하다보니 지역사회에서의 당사자들의 자립생활 하루하루와 그들을 조력하는 이들의 하루하루를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첫 기획안을 만들며 들었던 고민들에 대한 해답이 되지는 못했다. 이는 여느 자립생활센터들에서 하는 일들이지 않을까? 노들센터가 20년을 맞아 노들센터만 할 수 있는 얘기가 맞을까? 20주년을 맞아 이러한 과거를 되새겨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물론 있지만 더 유의미한 계기로 만들 수 있는 방식은 뭘까?

 

 

  〈함께 쓰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주년 기념사(가)

 

  새로운 기획안을 만들기 위해 홍은전 활동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은전 활동가는 노들센터 개소 20주년을 맞아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것보다 앞으로의 자립생활운동의 20년을 대비하며 현재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의 활동가들이 어떤 과제를 직면하고 있는지, 그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자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주년을 맞이하는 상근활동가들의 고민, 자부심 등을 담은 20주년 기념글을 한 편 같이 쓰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기획안을 작성하며 노들센터라는 조직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은 20년 전 노들야학 사무국에 의해 작성된 노들장애인자립생활터 준비과정에 대한 글 정도였다. 2002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처음 문을 열 때와 2022년 현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사람도, 처한 제도적/경제적 환경도, 당면한 문제도 다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풀어나가는 활동가들의 고민들도 자연히 변화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 2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를 자립생활운동활동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정말 자립생활운동활동가인지 회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가 되고 싶은 자립생활운동활동가는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20주년 기념글을 함께 쓰기를 제안한다.

 

 

  비켜갈 수 없는 고민이었고, 잘해야하는 고민이었지만 센터도 딱 이거다! 하는 묘수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 노들의 활동들을 오랜간 지켜본 이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글로만 만나뵀던 홍은전 활동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홍은전 활동가와 만나 그간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는지, 그런데 왜 잘 안되고 있는지 하소연을 늘어놨다. 자료들도 많고, 할 얘기도 많고 재료는 충분한데 대체 왜 이렇게 어렵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었다.

 

  홍은전 활동가는 두서없는 하소연을 주의깊게 들어주시고는 지금 내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이슈가 무엇인지 정리해주셨다. 그건 노들센터보다는 노들센터의 사람들이었고, 노들센터가 해온 일보다는 노들센터가 해온 고민들이었다.

 

  20년간의 회의록을 보며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많았다. 중앙투쟁과 노들센터 사업 혹은 활동 간의 관계, 당사자와 조력자라는 관계맺음, 지금 노들센터가 하고 있는 것과 앞으로 노들센터가 해야할 일들의 연결 등에 대해 노들센터에서 활동한 이들은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 뿐만 아니라 감정들도 다양했다. 그들은 지치기도, 기쁘기도, 신나기도, 당황하기도, 혼란스럽기도, 솔직하기도, 솔직하지 못하기도 했다.

 

  당시 회의록에서 봤던 이름들과 지금 회의록을 채우는 이름들은 다르다. 그러나 과연 저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고민들과 생각들과 감정들은 다를까? 그래서 노들센터의 활동가들이 20년 전에는 어떤 고민들을 했고, 지금은 어떤 고민들을 하는지, 그 고민들이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그 고민들을 앞으로의 노들센터 20년을 위해 어떻게 의미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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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임소연 활동가와 노들센터 20주년 선언문을 작성하는 워크숍도 두 번이나 진행했다. 한국에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어떻게 들어와 어떻게 전개되었고, 그 속에서 노들센터는, 노들은 어떤 역할들을 했는지 함께 봤다. 더불어 활동가들이 선언문에 꼭 넣고 싶은 내용을 공유하고 내용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며 각자 자립생활운동의 활동가로, 노들센터의 활동가로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고, 어떤 고민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것이 노들센터의 선언이 될 때, 우리는 어떤 말에 힘줄 것인지, 무엇에 힘을 주며 나아갈 것인지 다짐하는 시간도 물론 포함되었다.

 

  이후에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난 기억들이 압도적이다. 노들센터의 시작을 연 1대 소장인 박경석 고장쌤과 노들센터 기획안을 작성한 당시 노들야학 상근활동가 김도현 활동가. 2대 소장인 김영희 소장님과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현재 김포센터의 해방 활동가. 그리고 노들센터의 지난한 활동을 함께했던 경진이형, 노들센터와 함께 누구보다 지역사회의 기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임실언니 등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장 중요한 화두는 투쟁이었다. 그럴싸한 사무실도, 넉넉한 여유도 없었지만 그 고된 과정에서도 노들센터의 포문을 열어 지역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맨손의 투쟁. 탈시설 당사자 한 분 한 분을 누구도, 한순간도 배제하지 않기 위해, 지역사회 내에서 그의 자리를 오롯하게 지켜내기 위해 제도를 바꾸는 현장에서, 개인의 일상을 바꾸는 현장에서 펼쳐왔던 투쟁.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제도권 내로 진입하면서 제도권 안팎을 오가며 서비스 전달 혹은 제공만 하는 기관으로만 남지 않기 위해 투쟁의 가치를 지켜내고자 해왔던 투쟁. 무엇보다 중증장애인 당사자로 비장애인 중심인 세상에서 존재 그 자체만으로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부담에 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소소한 일상의 순간조차도 투쟁이 되어야함을 버텨온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지난한 투쟁까지.

 

  결국 노들센터의 20년을 맞아 노들센터가 20년간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어떤 고민을 이어갈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찍게 되었는데, 정작 만들고보니 무슨 투쟁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 투쟁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중증장애당사자 한 명 한 명의 자리를 지역사회 내에 세우고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무엇보다 노들센터가 20주년을 맞아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의 일원으로, 진보적 장애운동의 일원으로 이 고민을 다른 동지들과 나눌 수 있어 기뻤다. 노들센터는 이제 앞으로의 20년을 향해 다시 한 번 채비를 했다. 지난 20년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냥 위풍당당하기보다는 수없는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들센터는 그간의 질문을 잇고 또 이어 질문하기를, 고민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휘청거리며 실천하기를, 지칠 때도 있음을 알면서도 싸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노들센터 앞으로 20년의 투쟁에 건투를 빈다. 이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들도 노들센터의 건투를 빌어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주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20주년 선언문

 

  2002년 9월 1일, 노들센터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시기였지만 그때부터 노들센터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정착시키기 위해 중증의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을 공감하고 지원하며, 자립생활 권리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배제와 차별로 얼룩진 기존 장애인 복지 정책의 틀을 전환시키는 활동을 해 오며, 장애인 당사자의 삶이 권리로서 보장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 환경, 사회문화적 환경들을 바꿔 가는 활동에 전념해 왔다. 노들센터는 지금껏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자립생활운동의 가장 선두에 섰으며. 그동안 묵묵히 현장을 지켜왔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더 진보적인 활동으로 연결해 나갈 것을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자 한다.

 

  당사자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삶에 대한 상상력을 새롭게 확장할 것이다.

  우리는 장애가 장애인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에 반대한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보장은 국가의 책임으로서 헌법 제34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삶에 대해 차별을 가하며 장애인을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보편적인 권리조차 박탈해왔다. 장애인 삶의 주체는 장애인 당사자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과 사회적으로 놓인 조건이 차별로 인식되어 저항하는 이들 또한 당사자이다. 당사자성 운동은 수많은 연대의 고리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주체라는 분명한 방향에 기반하여, 연대의 고리를 확대하는 자립생활 운동으로 이어나가 장애인이 빼앗긴 목소리와 권리를 되찾는데 함께 할 것이다.

 

  장애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며, 일상 속 저항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장애인의 모든 일상의 순간은 투쟁의 연장선이자 치열한 저항의 현장이다. 장애인은 공기처럼 무수한 차별적 현실을 마주하며, 시설과 보이지 않은 골방에 갇혀 낙인찍힌 존재로 살아왔다. 정상과/비정상을 나누는 야만적인 비장애 중심의 사회 속에 장애인의 삶은 드러나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합하지 않은 몸으로 규정되어 분리와 소외 속에 비정상적인 존재로 구분되어 세상에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에 노들센터는 자립생활운동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이란 폭력적인 구분을 거부할 것이며, 장애인을 배제하고 통제했던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한다. 지난 20년 동안 노들센터는 다양한 현장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펼쳐왔듯이 저항의 현장에서의 도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인이 일상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고, 저항해왔던 경험이 다시 힘찬 움직임으로 계속 연결해 나갈 것이다.

 

  함께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비장애 중심의 지역사회는 장애인에게 고립의 공간이자 배제의 공간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일어나서 식사하고 샤워하고 친구를 부르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자립 공간이 마련되려면 지역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노들센터는 지역사회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권익옹호 활동, 지역주민 인식 개선 캠페인, 턱 없는 가게 만들기 등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해 왔다.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는 지역사회가 변해야 안정적인 자립생활이 가능하다. 노들센터는 자립생활이 온전하게 실현될 수 있도록 지역 운동에 관심을 높이고 새로운 활동의 방향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에 노들센터의 거점 지역인 종로구 지역 특성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자립생활 운동을 확산시킬 것이며, 평등한 지역사회가 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모든 시설은 폐지되어야 하며, 시설 사회를 향해 맞서 싸울 것이다.

  사람을 쓸모없음과 쓸모있음으로 구분하여 분리와 배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가두는 시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시설 안에서는 무엇도 선택할 수 없고, 단면적인 경험만 강요당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안에 갇힌 개인의 삶의 시간은 멈춰 있으며, 시설은 우리 사회가 숨기고 보이고 싶지 않은 참담한 배제의 공간으로 작동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람을 집단적으로 가둬 버리는 모든 시설을 반대한다. 누구든 지역사회에서 산책하고 배우고 이동하며 친구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시설화된 사회를 철폐하기 위해 동료를 조직하고, 투쟁하며 탈시설화된 지역사회를 만들 것이다.

 

  연대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립생활운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은 차별에 저항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활동이다. 노들센터는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턱을 낮춰 누구에게나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 이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함께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는 약한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회를 향해 공적 제도의 권리가 확장될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과 역할 수행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투쟁을 할 것이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20년 동안 진보적 자립생활운동 현장에서, 장애인 일상의 현장에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진보적 자립생활운동의 거점은 장애인 개개인의 삶이며, 우리는 그 거점을 중심으로 장애인운동을 이어왔다. 이제 우리는 위의 다짐을 바탕으로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여, 다시 다양한 현장 속에 스며들어 투쟁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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