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연대가
혐오를 이긴다
소성욱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의 활동가로서
성소수자 인권과 HIV/AIDS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이며,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집행위원이기도 하다.
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인권운동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말은 장애인 인권운동을 지속하는 모든 동지들을 존경한다는, 사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무지개빛 깃발 뒤에 회원들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형숙동지가 또다시 삭발을 했던 날, 혜화역에서 연대발언을 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어떤 말도 못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이라도 보태야겠다는 심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발언했습니다. 발언했던 내용을 조금 다듬어 글로 다시 나눕니다.
촬영하는 카메라 화면 속에 소성욱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전장연 동지들이, 장애인 동지들이 엄청 많은 욕설과 폭언, 한국정치의 혐오조장에 의한 피해를 심각하게 입은 것에 대해, 저는 행성인의 일개 회원이지만 감히 대표하여 우리 모두가 전장연을 엄청 사랑한다고, 동지들을 엄청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이 글을 빌어, 고백합니다. 저는 전장연을, 동지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제가 발언을 했던 날의 투쟁은 형숙동지의 삭발로 시작됐습니다. 온오프라인 상에서 동지들을 향한 멸시, 혐오, 차별이 넘쳐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던 저는 전장연 동지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지, 얼마나 멋있고 사랑받기에 충분한지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또다시 삭발을 한 형숙동지와 함께했던 투쟁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예전에 저는 경기도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당시 학내에 민주주의 투쟁이 있었는데요, 형숙동지가 감사하게 연대를 와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학교에 저상버스도 다니지 않고 인도는 울퉁불퉁 엉망이고, 경사로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형숙동지가 위험하지만 차도로, 언덕도 높아서 지나기 어려운 길을 뚫고 연대와주셨습니다. 형숙동지가 발언도 해주시고 천막도 지켜주셨습니다.
10년 전 쯤에는, 지금은 복직투쟁에 승리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부산에 갔었는데요, 그 곳에서도 형숙동지를 비롯한 전장연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같이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투쟁했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 서로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행복하게 인사 나눴습니다. 장애인 권리와 인권을 외치기 위해 찾아갔던 경기도청 앞에서도, 우리 모두가 이 나라의 시민이고 인권이 있다는 것을 외치며, 우리는 함께했습니다. 그때 누군지 모를 정장을 빼입은 사람이 우리의 목을 조르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화가 나고 무섭고 억울해서 제가 많이 울었었는데요, 그때 그 함께 싸웠던 순간이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그때 울던 저를 형숙동지가 토닥여주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수도 없이 거리와 광장에서 전장연 동지들을 만났습니다. 광화문 농성하던 시절에도, 매해 개최된 퀴어문화축제에서도요. 저는 서로에게 연대, 아니 연대 그 이상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투쟁에 그저 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우리의 투쟁’이라는 것, 그 감각을 느끼게 해준 분들이 전장연 동지들입니다. 또 형숙동지를 포함해서 많은 전장연 동지들이 저와 제 남편 결혼식에 오셔가지고 축하도 해주시고 그러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인권을 얘기하고,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마무시한 벌금을 감당하고, 때로는 감옥에서 노역을 살아야 하기도 했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많은 동지들이 매일매일 삭발을 하고 계십니다.
사실 저는 좀 겁이 많아가지고 욕설이 진짜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의 흘기는 시선, 그 백안이 굉장히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장애인 이동권을 외면해온 이 나라 정치현실입니다. 그런 이 사회가 더 무섭습니다. 욕도 무섭지만 정치인이 공공연하게 장애인 혐오를 부추기는 이 사회가 정말로 무섭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회에서 더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이 사회를 바꾸고 함께 살기 위해서, 좀 겁이 많지만, 그때 동지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또 가야죠, 계속 가야죠.
사실 남편이 있는 남편으로서, 성소수자로서, 많은 성소수자 동료들도 느낄텐데, 성소수자들도 만만치 않게 욕을 참 많이 먹습니다. 더럽다고 하기도 하고, 저번에는 우리 부부를 ‘죽이고 싶다’는 코멘트도 봤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런 혐오와 위협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당연히 익숙해지지도 않고요, 전혀 괜찮지가 않습니다. 하물며 지하철에서 수많은 모욕들을 만났을 전장연 동지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정말 아픕니다. 성소수자를 가리켜 병신이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진짜 많은데요, 그럴 때에는 정말로 우리가 마주하는 혐오와 차별에 함께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내 눈 앞에서는 안보였으면 좋겠다’, ‘내 옆에는 없을 것이다’, ‘없으면 좋겠다’, ‘없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은, 장애인 동지들과 성소수자 동지들을 비롯해서 HIV감염인과 에이즈환자, 이주민과 난민, 홈리스들이,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아주 흔하게 자주 겪는 폭력이자 고통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알아야 합니다. 내 옆에는 없을 거라고,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만들어낸 투쟁이 이 세상을 더 나은 사회로, 살기 좋게 바꾼다는 것을요.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은 때로는 지하철의 속도를 몇십분 느리게 하기도 했겠지만 모든 시민의 이동권을 아마 20년도 더 넘는 시간을 앞당겨 진보하게 했을 겁니다. 성소수자와 여성들의 성평등을 향한 투쟁이 모든 시민들의 성평등과 맞닿아있고, 이주민과 난민의 시민권이 모든 이의 기본권과, 홈리스들의 반빈곤 투쟁이 모든이들의 주거권 보장과 연결되어 있듯 말입니다.
저 또다시 결심합니다. 전장연 동지들과 앞으로도 기꺼이 계속 ‘욕을 먹겠다’, ‘감수하겠다’ 다짐합니다. 욕설과 혐오가 무섭고, 두렵고 아프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렇게 우리가 아프고 힘든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그게 더 무섭고 끔찍하기 때문에 동지들과 언제까지나 함께 하겠습니다. 투쟁.
소성욱 활동가의 결혼식에서 이형숙 대표님을 비롯한 전장연 활동가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