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저곳에
함께 가기 위하여
김희우
돌곶이 포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나의 방에서 광장으로, 일터로, 학교로, 주민센터로, 경찰서로, 친구들이 있는 카페로, 가족이 있는 식당으로, 다시 나의 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길을 거쳐야 한다. 길을 거치지 못한다면 이곳은 이곳, 저곳은 저곳일 뿐이다. 이곳과 저곳에는 사람이 있다. 이곳의 사람과 저곳의 사람은 연결되어야 한다.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동해야 한다. 최소한,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음식 맛이 어떤지 말하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식당에서 나와 좋아하는 술집에서 술 한 잔 하기 위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공동체적 공간인 ‘저곳’이 있다. 저곳은 또한 나의 삶을 평안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일궈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유동적인 사회적 집단들로 이루어진 땅에서 내가 최소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는 ‘저곳’에서 발화해야 하는 것이다. 발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나의 ‘이곳’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있는 ‘저곳’으로 스며들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장애인 이동권이 상징적인 의제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의제로 다뤄져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곳과 사람들의 저곳을 연결하기 위하여, 또한 ‘저곳’이 나를 제외한 타인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의 저곳’이기 위하여.
아무렇지 않게 길 위를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 계단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기다렸다. 오른손에는 어젯밤 유성매직으로 써둔 피켓을 꼭 쥐고 있었다. 경복궁역에서 내리니 수많은 휠체어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길 위에도, 지하철에서도, 내가 속해 왔던 수많은 공동체에서도 보지 못했던 수많은 휠체어들이, 바퀴들을 주재하는 팔과 몸과 영혼들이.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왔다지만, 단순히 견학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간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회는 이래야 한다.’라는 결의에 찬 구호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나 최소한 ‘그래도 이러면 안되지.’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도착했다. 아주 태연히도.
소수자들은 연결되어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으로 이끌었다.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여성 청년 노동자로서 장애인의 투쟁이 남의 투쟁일 수 없으리라는 교차성에 대한 인식으로 나는 이곳에 올 수밖에 없다고 나름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지금까지 참여해오던 수많은 투쟁들에서 대부분 비당사자였던 나는 그런 식으로 무결함을 취득하곤 했다. 그러나 모든 개개인의 소수자성은 나와 너가 다른 만큼이나 다를 터인데, 어떻게 우리는 같은 구호로 외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는 같은 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거쳐 왔던 것이 아니었나. 과연 남의 투쟁이 나의 투쟁이 될 수 있나. 장애인의 투쟁이 비장애인의 투쟁이 될 수 있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복잡한 마음으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투쟁 현장에 가면 갈수록, 왜 장애인의 투쟁은 늘 타자의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곳을 내가 있기 불편한 자리라고 느꼈던 이유는 실은 나조차도 장애인의 구호를 남의 구호로 여기고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은 학교에서, 동아리에서, 그 밖에도 내가 속해 있었을 수많은 공동체적 공간에서 장애인을 만나고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장애인, 비장애인이 지역 속에서 한데 섞여 자유롭게 살아가는 환경 속에 있었더라면 장애인의 문제는 단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친구의 문제, 남일같지 않은 문제, 더 나아가 나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내면화할 수 있었겠다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결국 장애인의 고민이 타자의 고민이 되지 않기 위해선 연결되고 스며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직까지도고민이 말끔히 정리되었다고 말하긴 어려우나, 머리가 복잡할 때면 그때의 연대하고 고민하던 감각을 떠올리곤 한다. 설령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닐지라도, 투쟁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우리’가 될 수 없을지라도, 나는 우리가 되기 위한 감각을 놓치 않으려고 한다. 감히 선언해보자면, 나는 그 한 줌의 감각을 붙잡고 앞으로도 연대해보려 한다. 우리가 저곳에 함께 가기 위하여. 우리가, 저곳에, 함께, 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