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비마이너
단식과 깡통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으며, 읽기의집 집사이기도 하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46일. 인권활동가 미류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보낸 단식의 시간이다. 내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는 그의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 허기진 시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내 눈에는 비쩍 말라가는 그가 지시등처럼 보였다. 위태로운 단식을 이어가던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위태롭게 질식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비하하는 사회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 미류의 단식은 이들의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우리는 한 생명이 위험에 처함으로써 다른 생명들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는 비극적 현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처음 발의되었다. 그러나 논의는 없었다. 다만 발의되고 발의되고 발의되었을 뿐이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15년 동안 일곱 번의 발의, 일곱 번의 가쁜 숨소리가 터져 나왔을 뿐이다. 행정부가 바뀌고 의회가 바뀌고 강산이 바뀌어도 변한 건 없다. 입법자들의 말은 한결같다. 그저 ‘나중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이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나이,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이 당연한 법안은 ‘합리적 이유’ 없이 가로막혀 있다. 과잉입법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둘러대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이 이 법안에 대한 심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일 수는 없다. 입법자들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 말들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이 말들을 두르고 있는 세력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권리를 다툴 수는 있다. 타인의 어떤 권리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두고 다툴 수는 없다. 철학자 아렌트는 이 권리를 부인하면 “시민의 권리인 자유와 정의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는 시민권 이전에 시민임 자체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다. 누구도 고용, 재화와 서비스의 이용, 교육, 행정서비스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접근을 차단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는 누구도 사회 구성원 자격을 함부로 부인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가. 내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취업할 수 있는 존재임을 누구랑 합의하라는 것인가.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차별받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이름으로 사회적 배제를 공공연하게 추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추인 이상이다. 보통 합의란 손익을 계산해서 서로의 이익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의 전제로 요구된 합의는 이런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대한 요구는 차별 해소를 위해 차별하는 자의 허락을 받아오라는 요구와 같다. 이는 그 자체로 끔찍한 차별 상황을 만들어낸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라는 요구가 실상은 사회적 구걸을 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동권과 탈시설을 요구하는 장애인들의 시위에 깡통이 등장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이들이 요구하고 있는 권리들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이들 권리는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법원이 애용하는 표현을 빌려 쓰자면 “그 침해의 정도가 작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위반”되니 즉각 시정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장애인들도 동네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장애인도 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인정하라는 요구이다. 이것은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와 의회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니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허락을 얻기 위해 지하철 바닥을 배로 기며 깡통을 내밀고 ‘기본권을 보장해 줍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인권이 허기진 사회이고 기본권을 구걸하는 사회다. 인권활동가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요구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장애운동가는 동네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소박한 요구를 걸고 깡통을 내밀어야 한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내가 사는 사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이렇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괜찮을 수 없다.
“흑인이자,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주의자, 시인,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다른 인종과 커플인” 오드리 로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차별 세력들과의 전투에서 어느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할지 선택할 여유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디서나 나타나 나를 파괴하려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파괴하러 나타났다는 것은 곧 그들이 당신을 파괴하러 나타날 날도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5월 27일자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