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하게
잊혀지지 않기
노들장애인야학 신입교사세미나 질의응답 시간 중에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의 답
정리_서한영교
1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2
음. 신입교사들에게 하는 말이니까, 좀 길어져도 이해해주세요. 83년에 태수를 만났고, “가슴이 빠개지”는 그 감정에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어요.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했는데, 노들을 만나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그 사이에 20년간의 투쟁이 있었어요. 강도 면에서나, 단일 면에서나 지금보다 20년 전, 그때가 더 셌어요. 그냥 한번 투쟁하고 나면, 연행되어 잡혀가는 건 비일비재했죠. 그때는 현장에 있던 장애인들이 다 연행되었어요. 전동휠체어를 연행했는데, 트럭에 다 실었어요. 내릴 때는, 사람 따로, 전동 따로. 지금은 연행되는 것은 없잖아요. 투쟁의 강도로만 보면, 지금은 훨씬 더 약해요. 아무튼, 그것 때문에 뭐가 변했느냐면은, 전경 버스에 저상버스가 들어왔어요.
2001년, 지하철 선로에 내려갔고, 1년 내내 토요일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지하철을 돌아다니면서 서명받았어요. 상근자도 없었지요. 그것을 자원교사들이 다 했어요. 55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2004년도에 입학 총회를 할 때 사용했어요. 또 하나는, 한강대교를 6시간을 기어서 활동 지원시간을 제도화시켰어요. 광화문에는 1842일이라는 길고 큰 투쟁을 통해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받기도 했죠. 이동권 투쟁도 21년을 싸우니까,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90% 정도 도입되었고, 서울시 저상버스는 60%가 도입되었어요. 이 정도 되면 조금 살살해도 되는데,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
천
천
히
하면 어떨까?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지금 시기에. 조금 더 천천히 해도 되는 거 아니냐. 윤석열 정부가 이제 막 시작했는데, 조금 천천히 갈 수 있는 것 아니냐. 조금만 하면 안 되냐. 장애인 인권과 관련된 예산은 삭감된 적 없지 않냐.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나도 해요. 그런데, 나도 답이 없네요.
3
제 생각을 말하기 전에 넷플릭스 영화,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2022)의 한 장면을 같이 보면 어떨까, 싶어요.
(화면해설: 나치 독일의 초등학교 교실의 수학 시간이다. 직사각형 나무 테두리로 짜여있는 칠판 위로 교사가 수학 문제를 내고 있다)
교사: "독일 가정의 하루 생활비가 5.5라이히스마르크인데 유전병 환자 한 명의 하루 생활비와 치료비가 12라이히스마르크라면 독일 국민이 잃은 가치는 얼마가 될까?"
(화면해설: 여덟 명의 초등학생들이 나무 책걸상에 앉아 저마다 고개를 숙인 채 문제 풀이에 열중하고 있다. 그중 한 학생이 손을 든다.)
학생1 : "이런 사람들을 돌보는 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면, 어떻게 해야 해요?
(화면해설: 학생의 질문을 들은 교사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당황한 듯 시선을 바닥에 놓는다. 그사이 교실 가장 뒷줄에 앉아있는 다른 학생이 낮게 읊조린다.)
학생 2: "죽여야지.”
(화면해설: 교실 한가운데 웅장한 나치 깃발이 걸려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과 함께 한 문장이 놓인다….)
“그리고 장애인은 잊혀져갔다.”
4
이 단편영화는 1939년도에 나치 독일이 실행한 T4프로그램을 배경으로 했어요. 장애인 집단학살 프로그램이었죠. 당시 생체실험한 장소 주소가 T4(Tiergartenstraße 4번지)여서 그 이름을 따서 붙여졌죠. 전쟁 수행에 ‘비용’이 많이 들자 노동 불능의 장애인을 비용문제로 살 가치가 없는 밥벌레들로 판단하고 장애인을 죽인 거예요. 우생학이 큰 역할을 했죠. 그런데, T4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도 잘 몰라요. 유대인학살은 잘 알지만요. 유대인들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독일은 사과했지만, 이 역사에 대해서 독일은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았어요. 이렇게까지 장애인들을 죽였는데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잊혀졌다는 것, 잊혀졌다는 것이에요. 왜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릴게요.
악랄하게 잊혀지지 않으려고
더 악랄하게 싸워 잊혀지지 말아야겠다!
대한민국 사회는 나치 독일과 방식만 다른 T4 작전을 실행하고 있지 않으냐!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로! 어차피 저항도 하지 못하니까! 결국엔 잊혀진 채로 죽어갈 것이니까! 중증장애인들 3만 명 가까이 거주 시설이라는 곳에 격리시켜놓고 내가 너를 위한다고!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마치 선한 것처럼 말하며 나치 독일보다 더 야비하게!
국가의 무책임으로 인한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발달장애 가족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남지 않고, 잊혀지고 있는 거잖아요. 국가는 가족들이 발달 중증장애인을 살인하도록 방치하고, 그 가족들은 자살로 몰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너무 비참한 거죠.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있어요.
2021년 12월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언제 끝날지는 모르는 이 집중적 투쟁은 20년간 흩어졌던 주제들과 그 간의 모든 전략과 전술이 집중되고 있는 시기라고 보면 돼요. 전술적으로 보면 그래요. 과제마다 사용했던 투쟁 전술들을 지금 집약적으로, 폭발적으로 쓰고 있는 중이에요. 왜 그래야 할까요? 무기도 좀 아끼도, 사람도 좀 쉬게 하고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지금의 투쟁을 통해 악랄하게 싸워야 우리 문제의 본질이 보이지 않을까. 더 악랄하게 싸워야지만 바로 이 ‘비용’의 문제가 보이지 않을까. 바로,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현장에서 싸워왔던 힘, 현장에서 사회적 힘이 있을 때, 그 본질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힘차게 투쟁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밝히며, 오늘 노들야학 신입교사 세미나를 마치도록 할게요. 악랄하게 투쟁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