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자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새벽 4:00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알람에 적힌 내용은 ‘선전전 가자’이다. 그렇다. 4:00에 일어나는 이유는 지하철 선전전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4:00에 일어나서 간단하게 홈트를 하고 5:00에 씻고 6:30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이동한다.
7:30,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하기 위해 온 활동가들로 지하철 승차장은 북적북적하다. 박경석 고장쌤의 발언으로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시작한다. 장애인의 속도에 맞게 한 줄로 천천히 지하철을 탄다. 5분 정도 소요가 된다. 그러자 서울교통공사에서는 방송한다. “현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지하철 시위로 인해 열차가 상당 시간 지연되고 있습니다. 이에 양해 바랍니다”라는 멘트로 방송을 한다. 지하철을 타는 것뿐인데, 시위라니 말도 안 되게 방송으로 선동하고 있다.
지연이 뭘까? 한참 생각한 것 같다. 지연은 곧 시간이다. 지연은 빠르게 움직이는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시간은 곧 돈과 연결된다. 일분일초 자본을 증식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시스템이기에 돈과 연결될 것이다. 지연은 시간이고, 시간은 돈이고, 즉 지하철 선전전은 자본주의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자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욕설과 혐오의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20분 늦는다. 당신들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되면 책임질 것이냐고, 이렇기 때문에 장애인은 안 된다.” 등등 다양하게 직설적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20분 정도 가지고 욕설과 혐오의 말들을 내뱉는다니. 어이가 없다. 장애인들은 20년간, 아니 일평생 이동할 수 없어서 노동할 수 없었고, 이동할 수 없어서 집에만 있어야 했고, 이동할 수 없어서 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는데 고작 20분 가지고 뭐라고 한다니 화가 너무 난다.
지하철을 타는 행위는 시간을 멈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비장애인 시간을 잠시 멈추고,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시간이다.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욕설은 그동안 장애인의 권리에 무관심해 왔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알았어도 무시했던 존재들이 눈에 보이자 자신들의 시간을 빼앗으니 욕을 한다. 이것은 존재를 무시해 왔던 결과이자 모순의 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지하철 타기를 참여한 이유는 한 가지다. 부채감이 있어서다. 장판 활동가들의 투쟁으로 만든 장애복지 정책을 27년간 아무런 비용 없이 이용해 왔다. 그들이 몸을 던지고, 다치고, 연행되어서 만들어진 인프라를 감사한 마음 없이 당연히 누릴 권리로써 생각했었고, 이용했었다. 하지만 장판의 활동을 알게 되고, 투쟁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죄책감이 생겼다.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 없이 인프라를 이용해 왔던 나날들이 오마주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내 주변을 감싸 안았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감사하다라는 인사 없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이동권에 대해서 같이 투쟁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철 타기 선전전을 참여했다.
나는 또 지하철을 타러, 선전전을 하러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자본주의의 시간,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멈추기 위해서, 그동안 존재했지만, 외쳤지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지하철을 탈 것이고, 시간을 멈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