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아 안녕
내가 아는 당연함 속에
장애인은 없었구나
류재영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운영지원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류재영입니다.
이렇게 글로 인사를 드리려니 작년 10월에 코로나 2차 백신 맞고 바로 센터 면접을 보게 되어 몸살 기운에 땀 흘리며 면접 본 게 생각이 납니다. 집에 가서 뻗어 있었는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아서 우선 감사하다 그러고 다시 뻗어 잤던 기억도 나네요. 면접의 기억은 여기까지 해두고 출근 후 저와 센터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며 인사 드리는 모습이 더 좋을 것 같네요.
노란들판? 장애인? 자립생활? ‘장애’라는 말에 대한 생각은 참 많이 했습니다. 낭독봉사를 통해, 공부하며 만났던 동료를 통해서, 생각할 기회는 참 많았지만 이렇다 할 저만의 대답을 내지 못했습니다. ‘자립생활’이라는 말은 생각할 일도 없었고, ‘노란들판’이라는 것(면접을 준비하기 전에는 단체라는 것도 몰랐으니, 것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네요)은 더더욱 알 수 없었습니다.
센터판에 들어와 노란들판과 함께 하게 되어 장애인과 자립생활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릅니다. 뭔가를 알았다는 것도 아니요, 뭔가를 해내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조금 더 알고 싶고, 알고 싶어서 함께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센터판과 만나게 된 이유는 기존에 근무하시던 유지영팀장님의 출산휴가 대체직 채용입니다. 17개월 계약직. 이게 시작입니다. 빠르네요.. 벌써 해가 바뀌고 계약기간의 대략 5분의 1 정도가 끝났습니다. 아무튼 17개월 일 열심히 해야지~ 하던 제가 지금은 17개월이란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 될지, 그리고 그 뒤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동권과 투쟁. 두 가지 단어가 센터에 들어와 가장 많이 들은 단어입니다. 누군가는 2022년이면 인류가 한마음이 되어 우주를 개척하고 있으리란 기대를 했다던데, 유럽에선 전쟁을 하고 있고, 일주일에 5일을 만나는 제 동료들은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실은 아직은 왜 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그런가, 거부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들어온 현재, 투쟁의 가장 큰 목표는 이동권입니다. 이걸 2022년에 싸워서 얻어내야 한다는 점은 이상합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투쟁을 해야한다는 점이 아마 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알고 싶다’는 심정을 만든 듯 합니다. 내가 아는 당연함 속에 장애인은 없었구나.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크고 작은 차별로 나타났을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제법 뻔뻔한 편입니다. 그래서 뻔뻔하게 글 중간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끼워 넣으려고 합니다. 노란들판 속 동료들에게도 죄송하고 노란들판 밖 사람들에게도 죄송합니다. 몰라서 안했고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뻔뻔한 제가 최선을 다해 알아보고 제 답을 내려고 합니다. 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투쟁에 함께하고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물어보고 있습니다. 나중에 만나면 조금씩 천천히 많이 알려주세요.
언제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기억력은 제법 좋지 않은 편입니다) 아마 이런 대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티비를 보면 나오는 유니세프와 같은 광고를 믿을 수 없다던 그 분은, 그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 눈에 안 보이는 일은, 없는 일이다. 뭐 이런 식의 생각이었는데 이해는 안됐지만 인정은 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저도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보지 못해서 몰랐습니다. 제 입장에선 자그마한 턱이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은행 창구의 높은 책상. 식당을 들어가는 계단. 매일 걷는 보도 위 끊어진 점자블록. 왜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모르겠습니다.
장애인은 이러이러하다. 자립생활이란 무엇무엇이다. 이런 정의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이런 정의가 필요없는 세상을 생각합니다. 제가 말을 하고 글을 쓸 때는 장애인이란 단어의 사용을 피합니다. 이렇게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처음이네요. 모든 상황에서 장애가 작용하진 않으니까 그렇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신체가 불편한 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짧게 표현하면 생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짧게 쓰지 않는 편입니다. 길게 길게 주절주절해서 오해가 없는 의사소통을 하고 싶은 저의 작은 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이게 제가 원하는 하나의 해방입니다. 센터에 들어오고 노란들판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다가 본 문구가 생각이 나서 기억에 의존해 비슷하게 제 입맛에 맞게 바꿔 적고 끝내보려고 합니다. 제가 센터에 온 이유는 누군가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오고 보니 아무래도 내 해방과 노란들판의 해방이 같은 곳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노들과 함께 할 시간 속이나 그 끝에 제가 제 경험과 생각으로 내놓는 답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길 원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