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수 있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구리·인창 C구역 철거 반대 연대 투쟁-
천성호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는 천성호
2020년 7월 구리시청에 허가된 구리·인창 C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이 시행되었다. 구리·인창 C구역을 개발하는 재개발정비사업은 구리시 인창동 289-29번지 일원에 구역면적 50,487㎡, 대지면적 35,423㎡ 부지에 건폐율 32%, 용적률 374%를 적용해 12개 동, 지하 2층~최고 42층 높이에 총 1,180세대 규모로 건설되며 시공사는 롯데건설이다.
청솔 3반의 조상지 학생은 뇌병변 중증장애인이다. 상지는 2016년에 노들장애인야학에 입학하여 지금까지 5년 동안 야학의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해왔다. 또한, 작년 2020년에는 서울시 공공일자리를 통해 장애인들의 노동과 인권 활동을 열심히 해오고 있었다.
2020년에 재개발 사업이 확정되고, 상지, 상지를 지원하는 이수경 활동지원사는 2021년 1월에 구리시 인창동의 성일장여관 옥상으로 올라갔다. 철거반대 투쟁을 하기 위해서이다. 언젠가 상지는 옥상에 올라간 이유에 대해 “엄마가 옥상에서 싸우고 있어서 같이 싸우기 위해, 엄마를 지키기 위해 올라갔다”라고 말했다.
상지 엄마 이해옥은 남편과 헤어지고, 중증장애인 상지와 함께 먹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상지를 시설에 맡겼다. 그리고 혼자 일본 오사카로 갔다. 상지와 함께 살기 위해 조금이라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김치를 팔아서 돈을 모았다. 3년을 계획했지만, 계획된 시간은 더 흘러갔다. 그때 돈을 모아 지금의 성일장 보증금과 권리금을 마련했다. 성일장은 구리·인창에 있는 2층짜리 여관인데, 상지 엄마는 혼자 힘으로 상지를 보면서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여관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상지를 다시 시설에서 성일장으로 데려왔다.
상지 활동지원사 이수경은 3년 전부터 상지를 지원해 왔다. 중증장애인 상지를 곁에서 지원하기 위해서 같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같이 갇혀서 지원하는 일이다. 위험하기도 한 일이다. 그렇다고, 상지를 떠날 수 없었다. 구리·인창 철대위는 철거지역 소식을 야학에 전하기도 했고, C구역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불안함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구리·인창 C구역 옥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용역 깡패들이 들어오고, 협박과 욕설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조합과 같이 용역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3월 5일 구리·인창 C구역에서 연대 투쟁을 진행하였다. 노들야학, 노들센터, 서장연(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사(빈곤사회연대),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등이 같이 힘을 모아 구리·인창에서 철거반대 집회를 진행하였다.
발언 중인 이해옥 위원장
철거반대 투쟁 집회 노들야학, 노들 센터 참가자들
이해옥은 1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상지 엄마에서, 성일장 주인에서, 철거반대 투쟁전면에서 싸우는 투사가 되어 있었다. 철대위 소속인 전주밥상 전라도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 지하의 조그만 기계공장을 운영하는 분들도 어색한 투쟁 발언이지만, 절박함이 묻어나왔다. 이날 연대투쟁에서 야학의 학생, 노들센터에서 함께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조합과 용역에게 우리도 연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구리·인창에 새로운 봄이 오고 종종 철대위와 소식을 전하면서 야학에서 상지가 보고 싶다고 해서 야학에서 학생들과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같이 가서 이야기도 듣고, 밥도 같이 먹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같이 얼굴도 보고, 일상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성일장은 예전에는 1층에 목욕탕도 같이 운영하였다. 그래서 옥상에 목욕탕 굴뚝도 같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가 다시 방문했을 때 성일장 옥상의 목욕탕 굴뚝을 뼈대 삼아 세운 망루를 보았다. 철대위는 쫓겨나지 않고, 결사적으로 투쟁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세웠다. 높은 망루가 불안해 보였다.
상지 지지 방문하고 옥상에서 밥을 같이 먹고 있는 노들야학 학생
물러서지 않겠다 투쟁
구리·인창 C구역에서 사람들은 모두 떠나가고 부서지는 집들도 점점 늘어만 갔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합원 상지 엄마, 전주 밥상을 운영하는 부부, 상지, 상지 활동지원사 이수경이 옥상에 남아 있었다. 용역들은 외부인들이 성일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길들과 입구를 막아섰다. 성일장도 용역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현관문을 막았다. 여관 입구의 1층 문 앞에 전철연 봉고차로 고정했다. 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차 바퀴에 시멘트를 부어 단단하게 고정하였다. 이제 옥상에 있는 다섯 명은 건물 밖으로, 옥상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먹을 것들, 물과 라면을 비축하고 쌓아놓았다. 용역들을 막아낼 깨진 돌들도 쌓아놓았다. 물러나지 않겠다.
옥상위 사람들 (한국일보 21. 06. 13.)
상지는 긴장하면 호흡이 가빠지고, 근육이 굳어지는 증상이 있어서 근육 이완제를 먹어야 한다. 용역들이 들어오고, 거친 말들이 오가면서 상지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는 없었다. 나갈 수 없는 사람들, 그래서 상지의 약은 옥상에서 내려오는 도르래를 통해 두레박에 담아서 올려지곤 했었다.
5월이 되고 철대위 옥상도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었다. 3월에 뿌린 옥상의 작은 텃밭의 상추와 파가 크게 자라서 먹을 수 있었다. 주변의 건물들은 거의 다 철거되고 있었다. 이제 용역들이 들어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야학에서도 최대한 같이 연대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철거를 반대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5월 26일 구리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하려고 간 이수경이 긴급체포 되는 일이 발생했다. 긴급체포 사유는 성일장 건물 옥상에서 불법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구리·인창 철대위에서 오늘 이수경이 체포되었으니, 내일 용역들이 밀고 올 수 있다고 전해주었다. 철대위 상황을 파악하고, 준비해야 했다. 27일 새벽 4시에 택시를 타고 구리로 향해 갔다. 성일장 입구 봉고차에서 잠자는 용역이 갑자기 깨어나서 내 옷과 가방을 잡고는 못 들어간다고 막아섰다. 나는 상지에게 가야 했다. 옥상에서 날아오는 소리, 떨어지는 오물을 피하며 용역은 물러났다.
아침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용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가 와서 용역들이 들어오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포크레인이 성일장 앞의 마지막 남은 건물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포크레인을 막기 위해 돌을 던지고 저항했다. 성일장 앞의 건물이 부서지면, 용역들이 크레인을 타고 옥상으로 바로 치고 올 수 있었다. 남은 이들은 망루로 올라가는 길밖에는 없다.
옥상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계속되었고, 포크레인은 물러갔다.
5월 28일 이수경 긴급체포에 대해 노들야학을 비롯한 5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설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공권력을 오남용하고
뇌병변중증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는 구리경찰서를 규탄한다!
구리경찰서는 지금 당장
활동지원사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취소하고 즉시 석방하라!
5월 31일 경찰의 부당한 권력 남용을 비판하고, 구리·인창 철거 문제 해결을 위해 구리시청에서 집회를 진행하였다. 야학, 노들센터, 빈사, 전철연, 전장연 차원에서 함께 했다. 집회가 진행중인데, 노란 셔츠를 입은 성격이 급한 구리시장이 나타나서 바로 면담을 진행하자며 집회를 방해하였다. 우리는 집회를 마치고 시청 입구에 간단하게 의자를 마련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우리의 주장은 “재개발 인허가를 승인한 구리시장이 C구역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고, 이수경을 석방하라”라고 했다. 구리시장은 내일 철대위와 만나 면담을 진행하고, 이수경 석방에 대해서는 서한문을 작성하여 법원과 경찰서에 보내기로 약속했다.
6월 1일 구리시장은 약속대로 재개발 현장에서 철대위와 면담을 시작하였다. 시장은 “중증장애인이 있고, 용산 같은 참사가 발생하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철대위 입장을 물었다. 이해옥 위원장이 말했다.
“우리는 돈도 없고, 변호사도 없습니다. 용산 같은 일이 안 발생하도록 해 주세요. 우리가 이대로 쫓겨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사람이 사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해온 성일장이 나에게 생명이고, 생명줄입니다. 돈 몇 푼 주고 나가라고 하니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철대위와 이야기하는 구리시장
이날 구리시장과의 면담으로 일단 구리·인창 C구역에 대한 강제집행은 유보되는 것 같았다. 구리시장은 철대위와 면담이 끝나고 재개발 조합장과 회의를 하러 갔다. 조금은 협상의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수경이 계속 구리경찰서 구치소에 있었고, 경찰에서 풀려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했다. 각 시민사회 단체와 석방 촉구를 요구하는 서명을 작성하였고 모두 1,462명이 참여해 주었다. 특히, 용산참사 희생자 네 분 유족들이 이수경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탄원서를 작성해서 보내주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더 큰 슬픔이 있는 사람들이 함께 슬픔을 나누는 일이었다.
6월 3일 이수경 석방 촉구를 위한 집회를 2시에 구리경찰서 앞에서 진행하였다. 경찰이 이수경을 긴급 체포한 죄명은 모두 7가지였다. 1) 특수절도 2) 업무방해 3) 특수공무집행방해 4) 특수폭행 5) 특수재물손괴 6) 특수폭행 7) 특수재물손괴 등이었다. 사건 제목에 특수가 들어가니 무섭다. 특수폭행과 특수재물손괴는 모두 두 건씩이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강제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강제집행에 대한 “저항권”을 사용한 것이었다.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강제 집행과정에서 인권을 보호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대법원은 부동산 등에 관한 인도청구의 집행(인도집행) 시 현장에서 채무자 등의 인권이 보호돼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예규를 제정하고 4월 1일부터 시행한다.(뉴시스, 21.3.29)
특히, 아동에 대한 배려(예규 제4조)는 ‘집행관은 아동에 대해 친절하고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해야 하고, 보호자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노약자·장애인·임산부·중환자 등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유엔의 권고나 대법원의 예규도 현장까지 닿기에 너무나 멀었다.
기본적으로 경찰은 장애인활동지원사라는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수경이 구속되어 중증장애인 상지를 지원할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엄마가 하면 되죠”라고 말했다. 이는 활동지원사의 개념과 활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찰의 사건 개요에서 이수경을 전철연, 전장연에 가입한 활동가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수경이 쫓겨나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용역들에 저항했는데, 이 ‘저항권’조차도 죄가 되고, 체포하고 구속될 사안이란 말인가? 용역들은 철대위 건물 주변에 4개의 CCTV를 설치해 24시간을 감시하였고, 이 촬영본이 경찰에게 넘어가 있었다.
형사소송법 제202조(사법경찰관의 구속기간)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구속한 때에는 10일 이내에 피의자를 검사에게 끌어들이지 아니하면 석방하여야 한다. 구리경찰서에서 의정부 법원으로 넘어가면 법률 다툼의 재판이 남아 있을 것이다. 억울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10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수경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는 비가 오는데도 야학과 센터, 서장연, 빈사, 전철연의 활동가와 야학의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구리경찰서 정문 앞에서 이수경 석방을 촉구하였다. 경찰들은 우리를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우리는 때론 발언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석방을 촉구하였다. 6시가 넘어 구리서 형사과장과 면담이 진행되었다. 형사과장은 이수경이 불법을 하였기에 석방은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억울하면 법원에서 다투라고 앵무새 같이 말하였다. 그날 밤 경찰서에서 늦게까지 우리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날, 경찰서에서 이수경을 면회 갔을 때, 야학 동지들에게 당부드린 말이 있었다. 면회신청서 뒷면에다 볼펜으로 얼른 받아 적었다.
노들장애인 야학 선생님들, 동지들에게
상지 철거 싸움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지의 손을 놓치지 말아 주세요.
저 없어도 상지는 야학과 동지들이 버티고 있어, 호흡하고 버티고 있어요.
상지를 볼모로 버티고 있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막아주세요.
학교에서 배운 장애 인권, 어머니에게 힘이 되기 위해
상지는 스스로 싸우고 있어요.
중증장애인들의 분노를 놓지 말고 연대의 힘으로 모아서 싸웠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날 이수경은 의정부 법원으로 넘어갔고,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되었다. 그리고 재판이 시작되었다. 야학에서 재판과정에 대한 지원을 하고 의정부교도소로 면회를 오가면서 소식을 전했다. 이 와중에 구리·인창 C구역은 다행히 조합 측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성일장 옥상에 올라갔던 사람들 상지, 상지 엄마, 부부가 내려왔다. 6개월만이었다. 다행이었다. 상지는 다시 야학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구리·인창 철대위 철거반대 투쟁에 대한 재판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의정부 법원으로 사건만 넘어가 있었다.
9월 19일 의정부 법원 1심에서 이수경에게 실행 6개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했다. 이수경은 풀려났다. 우리는 항소를 할 예정이다.
우리는 이 싸움이 질 줄 알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철거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진 싸움이다. 돈을 벌려는 자본과 권력, 인간의 욕심을 힘없는 자들이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는가? 쫓겨난다는 그것은 단지, 집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았던 삶의 기억들도 강제로 쫓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일이다. 그래도 삶의 끈을 다시 붙잡을 구리·인창 C구역 동지들에게 함께 살아가자는 말을 전하고 싶다.
“최소한 ‘수평이동’은 가능하게 해 줘야죠. 성일장은 딸이랑 살아가는 집이자 일터였어요. 집수리도 직접 다 했고, 꽃나무 묘목 하나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어요. 그런데 무작정 재개발을 할 테니 몇 푼 쥐어 주고 그냥 나가라고 하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한국일보 21.6.13일, 이해옥 님)
장미꽃이 활짝 핀 5월의 성일장, 다시는 볼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