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여전히 인지하는 중입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활동가의 접근성 토로기
아영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워 보이는 경험을 한다. 영화제가 끝나고 나면, 버스에 앉아서 출근하는 길도 나쁘지 않다. 그래도 최고는 초여름 저녁에 마시는 청량한 라거와 햄 없는 김밥이다.
장판 활동가들이 “이거 재밌을 것 같지 않니”, “이런 작업들 우리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데...”하며 사람을 낚을 때 저는 홀랑하고 마음을 뺏겨버리는 이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 2년차가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부 활동가들에게 낚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에 다짐을 하는 활동가가 되어버렸지만, 그 다짐은 영화제를 준비하다보면 어느새 또 녹아 없어져있지만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주요한 목적은 장애인을 둘러싼 시혜적 시선들이 어떻게 장애인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알리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일상을 구성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활동들을 기록하고 보여 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개인이 겪어온 차별을 내면화하며,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것으로 인지하거나 자포자기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살짝은 추상적인 이 말들을 구체적인 행사로 만들 때, 일상에서 장애인의 삶은 얼마나 쉽게 삭제되어왔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삭제되어온 권리들을 영화제에서만큼이라도 실현하기 위해 준비를 하다보면 다시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또르륵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2018년부터 가능한 모든 작품에 수어자막과 화면해설을 넣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수어자막은 농인에게 제공되며,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기계적으로만 이야기를 하자면, 요렇게 한 문장으로 끝날 수 있지만, 하나의 영화에 수어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영화의 소리를 끄고 본다고 생각하면,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여러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통역하는 과정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그리고 수어통역이 아닌 수어자막이므로, 기계적인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잘 담아낼 것인지 등을 고려해야합니다. 또한 처음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하고 제작된 영화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영화에 수어자막을 넣다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메시지들을 축약적으로 담아야하는 경우들도 발생하고요.
화면해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데요. 이미지들을 음성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펼쳐진 이미지 속에서 어떤 부분들을 뽑아내서 해설할 것인지 선택하는 과정은 고민을 많이 하게 합니다. 예를 들자면, 부엌에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있고 그 앞 탁자에는 꽃병과 상자가 있다라고 합시다. 그러면 여기서 ‘어두운 부엌에서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탁자 위 꽃병과 상자가 놓쳐져있다’ 라고 설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두 표현 모두를 설명할 수도 있지 않나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수어자막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를 설명해야하기에, 선택적 정보를 전달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예들을 통해 설명을 했지만, 정보 접근과 선택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는 어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 어렵기 때문에 영화제에서는 매번 평가를 하는 지점입니다. 한 편으로는 쪼그라들기도 하는 지점들인데요. 대부분의 상영작들에 대한 수어자막과 화면해설 제작이 1~2개월 안에 이루어지다 보니 고민을 집중적으로 하기에는 어려운 점들이 있습니다. 항상 부족한 지점들이 있고, 아쉬운 부분들을 느끼게 되는데요. 그것은 잘 평가하고 남겨서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좀 더 잘 하기위해선 예산도, 시간도, 사람도, 더 필요한 현실적인 부분들도 있긴 합니다만..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언제나 웰컴입니다!)
지금까지는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심적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심적 접근성에 대해서 ‘이 공간에 내가 편안하게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과 정체성을 훼손 받지 않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만드는 것인데요. 경사로가 없어서 갈 수 없었던 영화관, 영화를 볼 때마다 공감하기 어려운 비장애인 중심의 서사, 무심히 들어간 장애 비하적 표현들. 손상이 있는 개인을 배제하고 있는 사회의 인식과 구조를 인지하는 것이 심적 접근성의 첫 단계이지 않을까...
이렇게 하나씩 차별적 요소들을 인지하는 과정과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 매회 영화제는 개최됩니다.
접근성에 대한 지점들뿐만 아니라, 19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자체로서 어떠한 의미와 내용을 던질 것인가를 고민하며 슬로건과 이미지를 기획합니다. 또한, 출품한 영화들을 보며 올 해 상영될 영화를 고르고, 선정된 영화를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내고 이야기할지 프로그래밍도 하고요.. 영화제로 치자면 접근성과 컨텐츠 구성,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기획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은데, 컨텐츠 구성과 올해 영화제 담당자 소감은 다음 호에 실어도 될까요..? 분량 조절 실패...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