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밥상과 코로나19는
공존할 수 있는가?
: 2020 학생무상급식기금마련 평등한밥상 후기
박임당
노들야학에서 활동 중. 제 아무리 코로나19가 기승이어도 무상급식은 지켜내야 했기에,
수시로 무너지는 멘탈을 부여잡고 동료들과 함께 평등한 밥상을 무사히 차려냈다
2019년 평등한 밥상(혹은 호프) 팀장은 행사 평가를 진행하면서, 후원마당 티켓을 판 매하는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 후원금 모집에 꼭 필요하다는 평을 남겼다. 보통 후원마당 행 사는 오뉴월에 열렸기에 후원인을 일찍부터 모집하기 위해서는 티켓이 연초에 빨리 나와야 한다. 2020년 호프 팀을 맡게 된 나는 2월 초 호프 티켓 발행을 목표로 1월부터 후원마당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다. 디자인이나 예술에 그다지 감각이 없는 나는 학생들에게 밥과 사람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고, 그림을 스캔해서 노란들판 현수막공장에 티켓 디자인을 요청했다. 작년 후 원마당 행사 때 걸었던 알록달록 가랜드의 축제분위기를 상상하며 가랜드도 넣어달라고 했다. 마음이 계속 급했다. 하지만 이때는 알지 못했다, 코로나19의 서울지역 확산과 그에 상응하여 계속 계속 미뤄져야만했던 비운의 행사 연기 스케줄에 대해서 말이다.
연기에 연기에 연기
재난은 평등한 크기로 닥쳐오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 사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뭉 쳐서 싸우고 함께 활동을 만들어 온 사람들이 만 나기 어렵게 되었고, 함께 모여서 숟가락을 들고 음식을 나누어 먹던 모습도 규제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야학 학생들은 매일 와서 시간을 보내 고 수업을 듣던 야학에 오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었고, 매일매일 점심과 저녁 식사를 하던 공간 에 오기 어렵게 되었다.
2020 평등한밥상(호프) 티켓
야학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한 조치의 하나로 부분적으로 휴업에 들어갔다. 야학 에서 끼니를 함께 하던 학생들이 집에 계시는 나날이 길어지자 야학은 들다방과 함께 반찬꾸러 미를 만들어 전 학생 가정 방문을 다녔다. 상근자 3인을 한 팀으로 3개의 조를 짜서 하루 열 곳 이상의 학생들의 집을 방문했다.
아무도 야학에 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수의 학생들이 활동지원시간 부족 등의 이유 로 야학에 매일 와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이런저런 일정들로 야학이나 대항로에 방문할 일들이 있었다. 휴교기간에도 따끈한 한 끼 식사를 야학에서 먹게 되는 경우들이다. 휴교와 부분적인 수 업, 전면 수업 운영 등을 반복하는 시기에, 급식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을 유지하면서 무상급식을 지켜내는 일은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 안전한 식사 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식사 공간과 시설의 변 화도 필요했고. 그런데 무엇보다 모두가 힘든 이 시기에 매년 후원금에 전액 의지하고 있는 무상 급식후원금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모은단 말인가? 머리가 아파 왔다.
코로나 시대의 후원마당, 새로운 실험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무상급식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휴교와 개교(?)가 반복되더라도 급식을 유 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건비는 필요하고, 실제로도 학생들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대항로를 방문하고 있고, 식사도 계속 한다. 급식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후원마당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 등장한 첫 번째 아이디어는 우선 예년처럼 한바탕 후 원 호프를 열자는 것. 대신에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기대하며 일단 날짜를 미뤄본다는 것이 었다. 봄에서 후텁지근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주로 열리던 후원마당을 과감하게 가을로 연기했다. 가을날 먹고 마시기 좋은 날짜로 고른 날은 2020년 9월 5일 토요일. 가을이면 코로나 19도 잠잠해지리라! 행사 연기 스티커를 급하게 인쇄하여 전단지와 티켓에 붙이며 후일을 기약 했다.
물론 오판이었다. 8월을 기점으로 서울지역에 코로나19가 어마어마한 확산세였고, 9 월 초에 하는 먹고 마시는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10월 9일 한글날인 금요일로 한 달 여를 미뤄보았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결과를 알고 있듯, 이날도 역시 왁자지껄 모여서 먹고 마시는 행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연기.
새로운 안이 필요했다. 행사를 전면 수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10월 23일에는 행사를 무 조건 한다는 마음으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모두가 안전하게, 그러면서도 후원인을 계속 모집 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후원마당 혁신안이 다시 불려 나왔다. 후원 티켓을 들고 현장에 방문하는 분들을 위해 음식을 패키지에 포장해서 가지고 갈 수 있게 싸 주자는 것. 코로나19로 현장에 오실 수 있는 분들이 많지 않겠지만, 따뜻한 음료와 술, 음 식과 간식을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다면 기존 후원마당처럼 음식을 나눠 먹는 기조를 유지하면 서도 코로나 시대에 적합할 것 같았다.
하지만 행사장 방문마저도 꺼려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만남을 줄이는 방식 이 필요했다. 텀블벅 등 소셜펀딩 플랫폼들의 방식처럼 후원금을 모금하고, 선물을 준다면 어떨 까? 마침 야학 교사들이 쓴 책이 쏟아져 나온 한 해였다. 책과 마스크, 식권 등을 엮어서 금액대 별 꾸러미를 만들었다. 이를 어떠한 경로로 신청받을 것인가? 교장샘이 묘안을 내놓았다. 들다방 쇼핑몰을 통해서 신청을 받자는 것이었다. 노들야학의 급식을 운영하고있는 들다방을 홍보하는 계기도 되고, 이미 구축되어있는 들다방의 쇼핑몰과 결제 시스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렇게 현장에서의 음식과 음료 포장 패키지와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후원 두 가지 방식으로 새 판 을 짰다.
행사는 이렇게 진행됐다.
온라인 행사는 들다방 쇼핑몰에 물품을 업로드하고, 홍보를 하며 시작되었다. 꾸준히 꽤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행사는 이미 시작한 것이고, 장기전은 아니더라도 중기전 쯤은 되는 것이었다. 후원마당 당일 하루면 끝나던 행사에 비해 품은 비교적 적게 들었지 만, 꾸준히 신경 쓸 일이 있었다. 그러면서 물품 리워드 방식의 후원 모집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 가와 앞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10월 23일에 있었던 오프라인 행사는 매년 가을에 열리던 ‘노란들판의 꿈’과 함께 마 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하였다. 올해의 ‘노란들판의 꿈’은 탈시설지원법제정기원 ‘당신이 잇는 거 리에서’라는 이름으로 대항로의 단체들이 함께 행사를 여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 노란들판에 서는 우리의 대표적인 두 개의 큰 행사를 함께 진행하면서 무대 행사도 관람하고 음식도 포장해 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함께 진행하기로 하였다. 물론 관람 인원은 코로나19로 인 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100명~50명 내로 제한될 것이었지만, 온라인으로 행사를 생중 계할 것이니 나름대로 방역과 안전을 고려한 행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와 밝히지만, 나름대로 후원마당 팀장을 맡게 되면서 해보고 싶던 컨셉이 있었다. 현실은 코로나19에 집중하느라 안전과 방역이 주요한 컨셉이 된 것 같지만... ‘평등한 밥상’을 열 때마다 음식과 일손을 보태준 노들야학의 고마운 후원인들이 있다. 매년 두둑한 후원금과 더불 어 일손을 보태러 와주시는 김치명인 이애라 님, 엄청나게 맛있는 비건 메뉴를 만들어주고 일손 도 잔뜩 몰고 와주는 카페 별꼴과 친구들, 들다방의 친구이자 후원마당 카페 메뉴를 함께 고심해 주고 지원해주는 통인동커피공방, 비건 간식을 만들어서 찾아오는 리슨투더시티 은선, 노들야학 급식에 매달 쌀을 후원해주시고 행사 당일에도 일손으로 참여해주시는 한살림, 수시로 들다방에 식재료를 후원해주시고 행사 당일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닭을 튀겨주시던 이형록 님 등. 나열만 해도 너무나 화려한(?) 노들야학의 친구들과 함께 여는 후원마당이 내가 원하던 컨셉이었다. 기존 행사를 진행하던 대로 자리를 잔뜩 깔아두고 맛있 는 음식을 대접하는 행사였다면 적극적으로 연대 메뉴 혹은 친구 메뉴를 만들어 알리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계속 행사 컨셉이 바뀌고 메뉴도 수시로 변경되는 바람에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 메뉴가 생겨났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꾸준히 야학을 방문해 소독 제와 간식, 비타민C 등을 후원해주던 성미산 마을 학교와 후원마당으로 인연을 더 돈독하게 한 것이 다. 성미산마을공동체에서 만든 수제맥주인 ‘성미 산에일’을 후원마당의 술 메뉴로 넣기로 했다. 후 원마당 준비팀 멤버들이 성미산마을학교를 찾아 가 견학하고 마을 펍에 가서 ‘성미산에일’도 먼저 맛보고 돌아왔다. 성미산마을학교 학생들이 만들 어 준 추가 메뉴도 포함되고, 학생과 교사분들이 일손을 도우러 와주어서 음식도 같이 준비하고 부 스도 함께 지켰다. 친구들과 함께 여는 후원마당 의 꿈(?)을 일부 실현한 것이다. 성미산 마을과 마 을학교 학생·교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먼저 전해본다.
후원마당 당일은 후원금으로 티켓을 교 환하고 티켓을 음식이나 물품으로 수령해갈 수 있 도록 운영했다. ‘노들장애학궁리소’ 부스에서는 노들야학 교사들이 쓴 책을 포함한 물품꾸러미를, ‘들다방’ 부스에서는 커피와 차, 쿠키를 받아갈 수 있었다. 노들야학 본부 부스에서는 현장에서 후원 금을 모금하고 티켓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주류 부스에서는 ‘평등한 밥상’스티커가 붙은 와인이나 ‘성미산 에일’ 맥주, 4칸 안주 도시락을 수령할 수 있었다. 가장 큰 2층 교실에서는 안주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10명 정도 되는 인원이 분주하게 움직여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안주를 만들었다. 준비시간까지 포함해 거의 하루 종일 행사를 진행했던 이전과 달리, 부스 운영도 4시간으로 단축하여 운영했다. 음식하기, 서빙과 자리 세팅, 빈 그릇과 자리 치우기, 쓰레기 정리 등 뒷정리 등 품이 많이 들었던 행사 대신에 시간적으 로도 여유가 있고 활동가들도 덜 지치는 방식으로 행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후원마당이 쉽지 않은 행사이기도 하지만, 1년에 한 번 후원인들과 직접 만나 야학 공간을 소개하고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나눠 먹는 즐거운 행사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 왁자지껄 분주한 풍경이 행사를 준비하는 내내 그 리웠다. 게다가 준비 비용도 기존 후원마당에서 풍족하게 음식을 나눠 먹은 것보다 더 들었다. 음 식 먹을 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존 메뉴보다 가격도 낮추어서 준비했고, 포장 용기나 컵 등을 많이 구입해야 했다. 리워드로 제공한 책과 물품, 배송비 등의 단가도 높았다.
그렇지만 노들야학의 ‘평등한 밥상’을 함께 차려주신 후원인들의 성원은 코로나19에 도 굴하지 않고 뜨거웠다. 후원금이 꾸준히 모아졌고, 급식 운영에 필요한 큰 금액을 마련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행사 당일 애써 준 노란들판의 활동가들과 노들 야학의 든든한 교사들, 행사장을 찾아준 후원인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 구나 하는 뜨끈한 마음을 느낄 수 있기도 했다. 비대면의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어려운 시기에 어렵게 치른 행사이니만 큼, 그리고 행사 이후에 방역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래도 잘 치러냈구나 하는 평가를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과는?
결과를 궁금해 하실 것 같아, 홈페이지 등에도 게시했던 후원금 모금액과 후원인 명단 을 지면을 통해 게시하려고 한다. 2020년의 무상급식기금 마련에 애써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21년에도 노들야학의 학생무상급식과 후원마당은 여전히 어려운 고비 를 만날 것 같다. 지자체의 급식 지원금은 올해도 한 푼도 없고, 코로나19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도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과 함께 ‘평등한 밥상’을 무사히 차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후원마당 수익금 사용처 | 2020년 학생무상급식에 필요한 금액은 66,000,000원 입니다. ‘2020 평등한 밥상’을 통해 모아주신 후원금 총액은 58,768,389원 입니다. 후원금은 다음의 내역으로 사용됨을 알려드립니다~
후원인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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