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남겨두지 않으려면
리슨투더시티와 노들야학이 진행한
‘장애포괄 재난 워크샵’을 통해 본 장애와 재난
박은선
리슨투더시티 디렉터로 2009년부터 리슨투더시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현재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환경공간정보 및
재난연구실 박사수료 연구원으로 재난과 여성, 장애인
그리고 사회적 자본의 관계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www.listentothecity.org
parkeunseon@gmail.com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프로젝트의 시작
“재난은 우리 사회에 평상시에 있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뿐이지 새로운 문제 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일본 구마모토의 한 장애해방 활동가
리슨투더시티는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통해 2018년부터 장애와 재난 에 대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65명과 인터뷰하였고, 노들장애인야학,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 등 과 함께 협력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중에서도 노들장애인야학에서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3년 간 재난 워크숍을 진행했다. 첫 해에는 지진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상상해보 는 워크숍, 둘째 해에는 직접 대피를 해보는 워크숍 올해는 코로나 19 상황에서 야학 학생의 상 황에 맞는 코로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보는 워크숍이었다. 이 모든 내용은 회복 도시 홈페이지 www.resilientcity.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마모토의 한 인터뷰이는 위와 같이 말하며 재난이란 전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일상 의 문제가 잘 보이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재난의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째 는 주위의 소외되고 몫이 없는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그렇듯 재난 시에도 씁쓸하게도 재난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존재가 된다는 점. 둘째는, 사회적 약자가 재난약자가 된다는 사실은 일 상의 불평등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절대 풀리지 않는 과제라는 뜻이다. 재난에 가장 취약한 사람 들은 장애인,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인데, 특히 장애인의 경우 재난 발생 시 사망률이 현저히 높다 Battle, 2015; Irshad et al., 2011 . 일본 장애 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미야기시 해 안가 주변 도시에서 장애인 사망률은 평균 2.02%로 비장애인의 사망률 0.83%에 비해 약 2.4배 높았으며 원자력발전소가 있던 오나가와촌에서는 장애인 사망률이 15.6%인데 반해 비장애인은 5.9%로 장애인 사망률이 약 2.6배 높았다 Japan Disabilities Forum, 2015 .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장애인의 피해는 심각하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장애인 과 발달장애인 그리고 신장장애인의 피해가 컸다. 2020년 한국 코로나 첫 사망자는 청도 대남병 원에서 나왔다. 60대 남성이었던 그는 30년 넘게 그 시설에 갇혀 있었으며 사망 당시 몸무게가 42kg밖에 되지 않았다. 청도대남병원 수용자의 99%인 122명이 감염되었고 4월 12일까지 7명이 사망했다. 청도대남병원 사례는 사회와 격리되어 집단생활을 하는 수용시설이 얼마나 감염병에 취약한지 그리고 시설의 삶이 얼마나 비 인간적인지를 보여주었다BBC News Korea, 2020 . 장애인의 차별적 죽음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공공기관인 영국 공공 건강국Public Health England (PHE) 발표에 따르면 발달장애가 있 는 18-34세의 사람이 장애가 없는 사람보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30배나 높았다 BBC News, 2020 .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파인크레스트 양로원 거주자 40% 이상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었고 마크햄 이라는 장애인 시설의 42명의 장애인 중 40명이 감염되고 38명의 간호 노무자들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Parekh and Underwood, 2020 . 이는 우리 사회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야만 하는 심각한 문제 이다. 어째서 장애인 사망률이 비장애인에 비해 이렇게 높은지, 대남병원에서 사망한 60대 남성은 42kg밖에 나가지 않았는지, 왜 그 남성은 30년간이나 시설에 갇혀있었는지, 대체 대남병원의 시 설과 구조가 어떠했길래 집단 발병을 했는지, 발달장애인과 발달장애인 가족이 지금 어떤 고통을 겪는지 말이다. 그리고 이 재난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그리고 동료 이웃이 서로 구해주기
“장애인이 재난 대비 워크숍은 왜 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재난 때는 스스로 구하고, 공동체가 구하고, 그다음에 나라가 구하기 때문입 니다.”
재난 경험 인터뷰를 통해서 얻은 두 가지 결론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재난 시에는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구하고, 이웃사람과 친구가 구해준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장애인일수록 이웃과 동료의 도움이 중요했다. 실제 1995년 일본 한신 아와지 지진 때 가옥이나 가구에 깔린 사람의 60%가 이웃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고, 장애인 동료들이 다른 장애인을 도와 함께 피신했다.
필자는 포항에서 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학술지에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 포항지진을 겪은 장애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Park et al., 2019 라는 논문을 쓰면 서 결국 장애인의 재난 문제는 국가가 활동지원사 시간을 늘리고 공공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는 결론을 썼다. 그런데 논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어떤 외국의 학자가 “왜 장애인이 스스로 재 난 대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느냐.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라면 장애인도 스스로 재난 대비 를 할 수 있다”라는 코멘트를 남겨주었고 낯이 뜨거웠다. 장애인은 스스로 탈출하기 어렵다는 것 을 인정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장애-재난 관련한 토론회에 초대받아 가보면 대 부분의 결론은 국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무게가 거의 99% 쏠려있다. 당연히 국가 재 난 시스템은 장애 포괄적으로 모두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 시스 템은 마비되기 마련이고, 국가 시스템이 잘 갖춰진 것으로는 늘 부족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급작스 럽게 발생하는 재난인 경우 더욱 스스로의 의지와 재난 지식, 이웃과 동료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 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재난 대비 교육과 훈련 그리고 워크숍이 필요한 것이다.
장애 포괄 재난 교육 및 훈련의 부재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 장애인을 포함한 대한 재난 대비 교육 및 훈련이 거의 이루어지 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재난 교육이나 훈련이 더 잘 갖춰져 있었으나 장애인들을 훈련 에서 배제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2016년 지진이 일어난 구마모토에서도 한 두 지역을 제외 하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훈련이나 교육은 특별히 없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 전의 센다이 원전 사건이 발생한 후 도쿄전력이 실시한 훈련에도 장애인과 임산부 등 약자들은 모두 배제되었다.
일본 장애 포럼에서 2017년 전국 지자체에 ‘장애, 방재 가운데 어떻게 장애인을 대하고 있나’ 하는 설문 조사를 했는데, 거기에서 ‘장애인은 소중하다’는 의식은 있지만 아무래도 장애인 까지 감당할 수도 없고, 필요한 전문지식도 적어서 곤란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행정에서 일 년에 한 번 이상 방재 훈련을 꼭 하는데. 그런 곳에 장애인이 참여하는지 물었더니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지역의 방재 훈련이라든지, 방재에 참 가하는지 물었더니, 참가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참가해도 되 는지 모른다든지, 자신이 참가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다 등. 예를 들어 수화통역이 없다든지. 또, 애초에 휠체어에 탄 사람이 함께 참가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히라타, 일 본 장애 포럼, (Park, 2019)
한국에서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장애 시설의 경우 1년에 2번씩 정기 훈련을 실시하 고 재난 매뉴얼도 잘 비치되어있었다. 하지만 사설 장애인 기관의 경우 재난 대피 훈련을 따로 받 거나 재난 대응 매뉴얼을 공유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의 노들장애인야학, 연세대학교 장 애인권위원회에서는 리슨투더시티와 함께 2019년, 2020년에 재난 교육 및 재난 대비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워크숍은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지진에 대한 시나리오를 짜고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상상하고 실제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대피하는 방법 등을 익히는 워크숍이었다. 2020년 대구 지역에서 심각한 수준의 코로나를 겪으며, 대구 장애 NGO들이 자 체적으로 대응 매뉴얼을 섬세하게 제작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울의 노들야학에서도 자체 매뉴 얼 및 발달 장애 학생 개인별 맞춤 대응 매뉴얼도 개발하였다. 특히 대구 활동가들의 경험에 의하 면 코로나 확진이 되었던 발달장애인이 열이 40도까지 올랐어도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학생들의 고통 표현을 이해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었다. 매뉴얼은 야 학 교사가 자신의 담당 학생에 대하여, 학생의 고통 표현 이해하기, 평소 자주 가는 곳 체크하기, 마스크 착용 상태 확인하기, 지병 확인하기 등으로 구성하여 맞춤형 매뉴얼을 만들었다.
나가며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오염은 결국 우리에게 감염병으로 돌아왔으며, 장애인과 노인 격리시설은 죽음의 공간이 되었고, 코로나로 인한 복지 시스템의 구멍을 모두 가족의 헌신으로 메꾸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장애인이 스스 로,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며 장애인도 다른 장애인 과 비장애인의 재난 탈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와 동시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어야하며 함께 도와야한다. 이웃이 서로 도와 재난에 대응하는 체계를 ‘공동체 기반 재난 관리’ Community Based Risk Management 라고 한다 Allen, 2006; Shaw et al., 2011 . 하지만 공동체 개념이 사라진 서울 같은 도시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 이런 이상적인 재난대비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이웃이 장애인을 돕지 않는다면 지인이 라도 도와야 한다.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사회적 자본’이 두터운 사람이 재난에서도 대피 확률이 높다 Aldrich, 2008; Bihari and Ryan, 2012; Hishida and Shaw, 2014 . 그러나 장애인은 직장에 다니는 비율 도, 대학 진학률도, 외출하는 빈도 자체가 비장애인보다 확연히 낮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망이 두 터울 리가 없다. 즉, 우리가 외면해온 일상의 문제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같이 성장 할 수 있는 사회 문화, 장애인의 학습권, 노동권,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의 사 회적 자본을 향상할 수 없으며, 재난 시에 이 문제들은 몇 배로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장애와 재난에 대하여 긴 호흡으로 그리고 다양한 시각의 시도들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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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w, R., Ishiwatari, M., Arnold, M., 2011. Community-based disaster risk manag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