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약자의 눈을 통해
미래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박영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실 비서관. 전 마을활동가.
<약자의 눈>은 국회 최초 장애와 노인 관련 의원 연구 단체입니다.
18년 만에 국회로 돌아온 김민석 의원이 “장애,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구단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마을활동가 출신인 나의 정무적 판단 능력을 의심해서 떠보는 걸까?’ 의원의 테스트에 절대 말려들지 않으리라 다짐한 저는 “민원은 골치 아프고, 실익은 없을 것이며, 전문가풀은 의정활동에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긴 안목으로 본다면 외교 안보나 한반도 평화, 기후위기 같은 큼직한 연구주제가 어떻겠습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의원은 만약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면 “장애인과 노인”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고색창연한 아젠다보다 장애 청년과의 대화에서 심장이 뛰었다는 의원의 말을 듣고, 저는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20대 초반 장애인야학에서의 ‘행복했지만 몹시 힘들고 아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저는 5년간 장애인야학에서 일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개인사로 한국을 떠나 일곱 해를 나라 밖으로 떠돌 때까지 가장 치열했던 청년 시절을 장애인야학에서 보낸 셈입니다. 그래서 <약자의 눈>은 제겐 “20여년 밀린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며 보편적 인권과 행복권을 말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약자들은 당연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 셈입니다.
비가 쏟아지던 이른 아침 약자의 눈 창립총회, 궂은 날씨에도 국회도서관 강당을 가득 메웠던 이들이 생각납니다. 준비한 방명록이 모자랄 만큼 예상치 못한 인파였습니다. 감사하기도 했고 감동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잘해야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그 마음은 우리 의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이동, 교육, 노동을 위한 연속 세미나에서 바쁜 일정 때문에 인사말만 하고 자리를 뜨기로 했던 의원은 3회 세미나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실 토론회 참석자가 행사 내내 착석을 하는 게 놀랄 일도 대단한 일도 아님에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일정을 늦추면서까지 장애인 이동권, 중증장애인의 공공일자리, 장애인평생교육 등 낯설지 모를 연구주제에 열성과 관심을 가지는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따스해졌습니다.
먼 길을 돌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서 우리들은 만났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함께할 친구를 얻고, 따스한 시선을 가진 정치인을 얻고, 20여년 만에 숙제를 제출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아무도 차별받지 않고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