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비마이너]
약자의 눈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확대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는데 주관 단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약자의 눈’. 의원들이 만든 연구단체라고 한다. 7월 하순에 출범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신생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개 리플릿에는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행복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당찬 포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겉면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치는 ‘약자의 눈’을 통해 ‘미래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발표 자료도 아닌, 단체 소개 문장을 내가 이렇게 뚫어져라 본 적이 있던가.
약자의 눈. 이 말을 몇 번인가 되뇌었더니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종강 선생. 가톨릭 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시설에서 지내는 최중증장애인이다(그의 이야기는 『나, 함께 산다』(오월의봄, 2018)에 실려 있다). 열아홉의 나이에 열차 연결 통로에서 떨어져 몸이 으스러지고 목 위로만 생명을 건졌다. 퇴원 후 마리아수녀회가 위탁 운영하던 갱생원에서 지냈다. ‘세상의 맨 끝’이라고 불리던 그곳에서 그는 부랑인, 알코올중독자들과 수십 년을 지냈다. 나중에 해당 시설이 가톨릭사회복지회로 이관되고 전문요양시설로 바뀐 뒤에도 그는 그대로 남았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는 현재 탈시설장애인으로서 시설에 남은 사람이다. 그는 2007년 처음으로 탈시설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시설 실태조사를 나온 사람이 명함을 건네며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누군가 몸을 옮겨주고 뒤집어주고 떠먹여주어야만 살 수 있는 사람. 그때까지 그는 시설을 떠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2년의 시간 동안 탈시설이라는 말이 자라나 머리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2009년 그는 전화를 걸었고, 탈시설 활동가들을 만나 장애인 인권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시설 밖 세상’에 대해 들었다.
“뭐랄까요… 박살 난 느낌?”
그런데도 그는 지금 시설에 남아있다. “하하, 이런 몸이다 보니.” ‘이런 몸’으로는 시설을 나가도 치료받는 일에 시간을 다 써야 할 거라고 했다. 휠체어를 타기 위해 몸을 조금만 일으켜도 고산증 같은 게 나타났다. 항상 누워 지내기에 몸을 세우면 어지럽고 곧잘 호흡곤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가 시설에 남은 이유가 ‘이런 몸’ 때문만은 아니다. 탈시설을 열망한다고 전화했을 때도 ‘몸’은 ‘이런 몸’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설에 남은 더 중요한 이유, 어쩌면 시설 밖 세상을 알고, 장애인 인권을 알고 난 뒤에 더 강해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 남은 이유요? “저는 저기 동산 모퉁이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사람입니다.” 울창하고 아름다운 저 성모 동산은 갱생원 시절의 부랑인들, 알코올중독자들이 꽃나무를 심어 봉헌한 곳이다. 폐지를 줍고 봉투를 접은 돈으로 묘목들을 직접 사서 심었다. “그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는 모습을 이곳에 심어진 나무 한 그루,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다 지켜보았겠죠.” 거기 나무와 돌멩이만 본 게 아니다. 사람들이 옮겨놓은 자리에 나무처럼, 돌멩이처럼 놓여있던 그도 보았다. 그는 눈을 가진 나무, 기억을 가진 돌멩이였다. “여기서, 잊지 않고, 이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이 세상에 온 제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이유를 하나 더 말한다. “비록 모퉁이 돌멩이 하나로 굳어진 나이지만 모든 걸 지켜보았잖아요? 또 (활동가들을 통해) 알게 되었잖아요?” 모든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된 돌멩이. “저는 여기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관리자들에게 불편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불편이 바로 제가 여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존재 이유에요.” 시설이 텅 빌 때까지 시설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격하는 눈으로서, 또 장애인 인권과 탈시설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동료들에게 앎을 전하는 머리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말하지 못하는 동료” 곁에서 함께 말하는 입으로서, 그는 시설에 남기로 했다.
이것이 누군가 옮겨놓아야만 장소를 바꿀 수 있었던 사람 이종강이 자기 의지로 시설에 남겠다고 한 이유이다. ‘약자의 눈’이란 이만큼이나 강한 것이다. “정치는 ‘약자의 눈’을 통해 ‘미래의 눈’이 되는 것입니다.” 근사한데 모호한 문장이다. ‘눈’을 통해 ‘눈’이 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약자의 눈’에 ‘미래의 눈’까지, 좋은 눈 두 개를 더해 문장은 화려해졌는데 뜻은 되레 선명함을 잃었다. 그냥 ‘약자의 눈’만 있어도 좋은 정치이고 어려운 다짐이다. 의원들의 연구단체 ‘약자의 눈’에 이종강 선생의 이야기를 출범 축하 선물로 보낸다. 부디 이 눈을 연구하고 이 눈으로 연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