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자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2020년 5월 22일 조선우드에서 사망한 지적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을 기억하며
정우준
2007년 대학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연찮게 노들야학에 오게 됐다. 그 후로 이번 학기까지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길고 얇게 교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0명.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일하다 매일 6명의 노동자가 죽습니다. 소위 주요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살, 교통사고와 함께 산업재해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라 하여 임기 내에 산업재해(사고)로 죽는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6월까지 상반기에만 산업재해로 1,101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다 사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다보니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묻히고 그저 숫자로만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는 산업재해로 사망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죽음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전해져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단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2016년의 구의역 김군,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정도가 어
렴풋이 기억에 남는 사건일 겁니다.
그럼에도 한 명의 노동자 이야기를 더 꺼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22일, 광주의 작은 폐기물 공장에서도 한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폐목재를 커다란 파쇄기에 넣어 분쇄하는 일을 했던 그는 기계에 걸린 폐기물을 제거하려다 본인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재순입니다. 직원이 채 10명이 되지 않는 작은 폐기물 처리업체인 조선우드에서 일했던 김재순은 1994년생으로 고작 만 25살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18년 전에 산업재해로 왼손 손가락 한 마디를 잃은 산재노동자였습니다. 그리고 김재순은 지적장애인 노동자였습니다.
김재순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김재순이 죽자 조선우드는 책임을 본인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그가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태안화력에서 사망한 김용균의 사고 때에도 회사가 유족에게 처음 했던 말은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죽는 경우, 노동자나 유가족이 가장 먼저 그리고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광주 지역에서는 고(故) 김재순 시민사회 대책위가 구성되었고, 대책위의 진상 조사를 통해 김재순의 사망이 회사의 책임임이 드러났습니다. 2020년 6월 4일 대책위는 회사가 2인 1조 근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위험한 작업임에도 필수적인 안전장치 없이 김재순에게 일을 시켰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럼에도 김재순의 장례는 그가 죽은 지 70일이 지나서야 치러질 수 있었습니다. 조선우드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도저히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6월 14일 대책위는 김재순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지만 조선우드의 사장인 박상종은 사죄조차 하지 않았고, 김재순이 사망한 공장은 멈춰진 작업을 재개하고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돌아가는 공장에서 한 노동자의 죽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의 책임자는 거의 대부분 처벌받지 않습니다. 100명 중 1~2명만 감옥에 가고, 그마저도 회사의 말단 관리자입니다. 기업은 450만 원 정도의 벌금만 내면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법적으로’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고 김재순 시민사회 대책위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구성한 장애계 대책위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서 사업주와 기업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은, 우리나라의 현행 법 체계가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과 사업주에게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과 사업주는 조선우드의 사장처럼 배짱을 부리며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사건이 다 밝혀진 뒤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적장애인 노동자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김재순의 죽음에 있어 기억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그가 지적장애인 노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김재순은 조선우드에서 24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조선우드를 3개월 간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 다른 직장을 찾고 싶어서였습니다. 조선우드는 2014년 1월 16일에도 노동자가 사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 조선우드와 사실상 같은 회사라 할 수 있는 조선자원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팔이 절단되거나 피부가 벗겨지는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재순은 3개월 뒤 다시 조선우드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의 노동권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 눈에 보는 2019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15세 이상 장애인의 고용률은 34.5%로 전체 인구의 고용률 61.3%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20.2%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김재순은 조선우드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한지 10개월이 지난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장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더 자주 다칩니다. 다쳤음에도 사회보장 체계에 도움을 받기가 더 어렵습니다.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장애인 고용기업체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총 179,119명으로 그 중 0.8%인 1,426명이 일을 하다 다쳤습니다.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비율은 0.5%로 장애인 노동자의 60% 수준입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비율도 0.54%입니다. 다치고 난 뒤도 문제입니다.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입니다. 반면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에 접수된 산업재해 승인율은 90.9%입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들에 비해 산업재해 승인율이 1/3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선우드에서 김재순이 악조건을 견디며 일하다 끝내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장애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권 때문이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책임을 묻겠습니다
지난 7월 30일, 김재순의 장례는 치러졌지만 김재순의 아버지 김무영(가명)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선우드 박상종 사장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죄를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김재순의 아버지는 6월 26일 『비마이너』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