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행진,
멈추지 않는 투쟁의 길로 나아가자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초보 활동가. 투쟁의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에게 먹물 같다고, 인터뷰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말이 험하다고 놀림당하기 일쑤. 뒤틀린 몸과 말을 끝까지 지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소박한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7월 1일,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공약 사항 중 하나였던 ‘장애등급제 폐지’를 시행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장애인들이 더 이상 의학적 기준의 장애등급이 아닌, 서비스의 필요에 따른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장애계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계기로 장애가 더 이상 한낱 등급으로 구획되지 않고, 장애인이 시민으로서 주체적 권리를 인정받아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통합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 바 있다. 그러나 한 해가 지난 지금 돌이켜 보건대,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 폐지’나 다름없었다. 장애등급제가 제도상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장애등급제 폐지 후 장애인 당사자의 정체성 및 사회 환경적 요인에 맞는 적합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예산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장애등급제의 단계적 폐지는 서비스를 기준으로 하여 크게 3단계에 걸친 폐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로, 2019년 ‘일상생활 영역’에서의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장애등급에 좌우되던 기존의 인정조사 체계로부터 벗어나 서비스 필요도에 따른 제공을 약속했다. 두 번째로, 2020년 ‘이동 영역’에서의 장애등급제 폐지를 통해 특별교통수단 이용 및 장애인 명의의 자동차 운용에서 장애인 당사자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세 번째로, 2022년 ‘소득과 고용지원 영역’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진행하여, 장애인 고용과 장애인 연금 등 소득보장의 문제를 포괄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충분한 예산 확대가 수반되지 않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한낱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 장애등급제가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을지 몰라도 서비스 수요를 개별 평가로 진행하지 않고 또 다른 의료적 기준에 따라 집단 평가로 진행했다. 즉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는 15등급으로 편재되어 등급 아닌 등급의 틀을 새로이 획책했다. 기존 6등급 체계는 사라졌지만 장애인의 몸이 다시 15등급으로 평가되는 더욱 잔인한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가 장애인 예산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정부는 강변했다. 그들의 말은 기만에 가까웠다. 새로운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표의 도입으로 19.5%의 장애인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전보다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도리어 삭감되는 참사가 발생했으며, 장애인 주차장 및 특별교통수단의 증대 없는 자격 확대는 장애인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제도 변화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협의체는 거버넌스를 위한 것이 아닌 한낱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정부 부처의 입맛대로 운영하면서 장애계의 의견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묵살했기 때문이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매년 7월 1일,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슬로건으로 하는 전동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장애인들을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로 다루면서 그 권리를 박탈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아, 그리고 장애인을 함부로 ‘잠수시키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기획재정부 산하 기관인 조달청에서 출발해 잠수교를향해 걷는 전동행진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했다. 특히 이번에는 ‘장애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구호와 함께 잠수교를 지나 기획재정부 홍남기 장관 자택 앞까지 가는 장거리 행진 계획을 세운 바 있다. 비록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최종 목적지가 잠수교로 수정되기는 했지만, 수도 서울의 한 복판에서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게 했고, 밧줄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의 삶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시혜와 동정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현재의 장애등급제 폐지는 가짜에 불과하며, 특히 최중증장애인의 삶을 위협하는 잔인한 제도이다. 본래의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껍데기와 표상적 의미만 남은 채, 여전히 의학적 기준 아래 장애인의 몸을 재단하고 삶을 위협하는 것이 2019년 발표된 장애등급제 폐지의 현주소이다.
가짜 장애등급제 폐지로 인해 최중증장애인 동지들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삭감 위협과 같은 절망적인 희망 고문과 사형 선고가 연속되고 있다. 국가는 예산 효율성의 명분 아래, 장애등급제 폐지의 근본적인 정책적 의미를 짓밟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지치지 말아야 한다. 7월 1일 우리가 조달청 앞에서 외쳤던 것처럼, ‘장애인 목숨도 소중하다’는 당연한 명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쟁취한다’는 투쟁의 역동을 끊임없이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장애등급제가 진짜 폐지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전동 행진은 멈추지 않아야 한다. 멈추지 않는 투쟁의 길로 나아가자.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힘겨울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