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124호 - 세상 끝까지 학사모를 던지자! / 김진수

by 노들 posted Feb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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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학사모를 던지자! 노들야학 낮수업 졸업식

 

 

 

 

 

 

 

김진수

제 소개는 김종삼 시인의 ‘걷자’라는 시로 대신합니다.

‘걷자 방대한 공해 속을 걷자. 술 없는 황야를 다시 걷자.’ 

 

 

 

 

 

 

 

    9 to 9. 하루의 절반인 12시간의 일상을 노들에서 보내는 분들이 있다. 내가 본 그 분들의 일상을 요약 하자면, 야학 도착 -> 도착 후 유리 빌딩 곳곳을 돌 아다니며 인사 -> 휴게실에 모여 티타임 및 수다 -> 점심 -> 낮수업 혹은 장애인 일자리 업무 -> 휴게실 에서 수다 및 티타임 -> 저녁수업 -> 저녁식사 -> 다 시 수업 -> 휴게실에서 수다로 마무리 -> 집으로 귀 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그분들의 일상은 대략 이러했는데, 휴게실에서의 휴식까지 수다로 채우는 일상의 반복은, 하루의 끄트머리인 저녁수업 때쯤에 야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영향은 수업시간마 다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조는 일과, 수업을 함께 듣는 옆 사람과의 잦은 갈등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 황을 인식한 교사들은 그들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학생들에게 매일 일찍 나오면 피곤 하니까, 야학에 아침 일찍 오지 마시고 좀 더 쉬다 오 셔라. 수요일은 저녁수업이 없으니 낮수업이 끝나면 일찍 가서 쉬시라 등등의 말씀을 드렸지만,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학생들에게 졸업을 제안하기로 했다. (아, 이쯤에서 그분들에 대해 말씀드리면, 노 들야학에 다니고 있는 발달장애인 분들 중 자립을 해서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이다.) 제안의 중요한 지점 은 졸업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졸업에 대해 학생들 의 의사를 물어 보자는 것.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졸 업을 제안하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졸업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기준을 갖고 함께 회의를 했고, 졸업을 제안할 여섯 분의 학생을 정했다. 3명 의 교사가 두 명씩 졸업 상담을 하고, 졸업을 받아들 이는 학생들에 한해 졸업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상담 은 제안에 대한 고민보다, 졸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했다. 여섯 분의 학생들 중, 학교를 다녀 본 학생은 한 분도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졸업 이 무엇인지 아는 분도 한 분도 없었다. 일생의 대부 분을 시설에 살거나, 시설에 살지 않았다면,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었던 분들이었다.

 

 

    상담의 결과는 여섯 분의 학생들 모두 아주 흔쾌히 졸업에 대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졸업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 낮수업 중 월요일 수업 담당 선생님들이 졸업식 준비를 함 께 해주셨다. 학위복과 학사모를 사고 현수막을 맞 추고, 졸업 축하 꽃과 졸업증, 축하 영상을 만들었다. 예술인복지재단 예술로 사업의 파견 예술인 사진작 가분이 졸업 사진을 찍어주셨고, 졸업식 당일에는 축하 인사를 하러 여러 곳에서 와주셨다. 졸업식이 시작되자 졸업생들은 조명을 받으며 청중을 가로질 러 입장했다. 청중 앞에 자리를 잡고 졸업식 소감을 당차게 말했다. 졸업식은 마치 축제처럼 즐겁게 마무 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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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졸업식은 헤어짐과 삶에 대한 부담 이 가중되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는데, 학생들과 함 께한 이번 졸업식은 내가 갖고 있던 졸업에 대한 이 미지를 기쁨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바꿔줬다. 졸업식이 있기 며칠 전, 텔레그램에 사진 하나가 떴다. 졸업 가운을 입은 야학 학생들이 학사모를 하 늘 높이 던지는 사진이었다. 졸업식 날 왜 학생들은 학사모를 하늘 높이 던지는 것일까? 궁금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와 같은 질문에 누군가 이런 대답 을 해주었다.

 

 

   ‘아일랜드의 목동들은 울타리 안에 생활하면서 사고와 행동이 갇히는 것을 우려해서 모자 던지기 시합을 하곤 한답니다. 모자를 울타리 밖으로 집어 던진 후 다시 주우러 가기 위해서 울타리 밖으로 나감으로써 목장이라는 한정된 경계를 뛰어넘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 군요. 졸업식 날 모자를 던지는 것도 학교라는 울타 리를 벗어나서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 아닐까요?’

 

 

    ‘한정된 경계를 뛰어 넘어 넓은 세상을 볼 수 있 는...’ 졸업이 어떤 경계를 뛰어 넘는 일이라면, 졸업 을 앞둔 학생들에겐 저마다 경계를 뛰어 넘는 경험 들이 있었다. 시설을 벗어나고, 집을 벗어난 경험들.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난 새로운 세상인 노들. 그렇다 면 그들에게 졸업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설렘, 기쁨 같은 것이고, 그것이 졸업에 대한 제안에 그들 이 고민 없이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일지 모르겠다. 언젠가, 모두 함께 세상 끝까지 모자를 던져 세상의 모든 경계와 벽을 허무는 졸업식을 맞이할 수 있다 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세상 끝까지 모자를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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