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름 123호 - [교단일기] 합격, 합격, 합격 / 김호세아

by superv posted Sep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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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합격, 합격, 합격

 

 김호세아

노들야학 교사는 이력서에도 넣습니다. 야학교사를 특권으로 생각하는 1인

 

김호세아_천막수업.jpg

 

 

 

 

  한 학기가 잘 끝났다.

  검정고시 교사는 2학기째이다. 검정고시반을 맡고 난 2019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이 있어서 실은 내가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책 임감으로 출석도장을 찍자는 마음으로 한 주, 한 주를 보냈다. 그런데 어느덧 한 학기가 이렇게 지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무엇보다 시험에 응시한 모든 학생분들이 합격을 했다. 최악의 시간에도 최선의 결과라는 소중한 선물에 몇 글자로 그동안의 시간들을 기념하고 싶다.

 

  오래 전부터 어머니가 다녔던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사를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그 래서 많은 분들이 거쳐 가셨을 검정고시 수업의 교사 를 하는 것도 내게 특권이었다. 지금은 응시생이나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이 많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노들의 검정고시반은 노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정체성 이라고 생각한다. 그 오랜 시간부터 지금까지 검정고시 반이 이어져 온 것도 차별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서 배움의 기회마저 온전히 누릴 수 없었던 분들이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해온 열정 덕이라고 생각한다.

 

  난 검정고시를 보지 않고 제도권 학교를 통해서 학 력을 인정받았으니 어쩌면 검정고시를 치를 학생분들 보다 오히려 나에게 더욱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또한 ‘합격’이라는 가시적인 목표가 있는 수업이다보니 나름의 부담도 있었다. 이렇게 나에게 검정고시반은 다양한 감정으로 와닿았다.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기출문제를 내가 풀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하니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공교육의 세계를 다시 엿보았다. 영어나 국어, 도덕과 같은 과목들은 쉽게 가능했으나 과학, 수학 등은 학생분들도 어려웠지만, 나도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15~17년 전의 나’를 불러내고 싶었지만, 내 머릿속은 그때의 지식을 지운지 오래였다. 합격이 목표였기에 과감하게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는 과목으로 학생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합격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몇몇 과목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반기부터는 기출문제 중심으로 계속 수업을 했다.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회사의 비리를 고발하 고, 직장 내 괴롭힘과 싸우는 시간이 일상에서 계속되 면서 난생 처음 겪는 소진들을 경험했다. 하던 일도 그 만두게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순간이었지만, 목요일 저녁 수업에 가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익제보를 하고 직장 내 괴롭힘과 싸우는 과정은 ‘존중받지 못하는’ 과정이었다. 조금 더 나은 가치를 위해서 직업적 경력의 단절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떳떳한’ 일들을 했지만 함께하는 동료와 회사로부터 존중을 받진 못했다. 그래도 노들에 오면 선생님으로 나를 생각해주고 내 부족한 모습도 이해해주는 학생분들에게서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시간들이라고나 할까.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입장이었지만, 존중받을 수 있다는 느낌은 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검정고시 수업을 참여하는 원동력이었다.

 

  코로나19로 시험이 연기돼서 초조할 법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수업에 나와서 기출문제를 풀면서 시험을 준비하셨고 최근에 세 분이 모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카톡방에 드디어 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떻게 축하를 해드 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냥 기쁜 마음으로 마음의 박수가 우러나왔다. 한없이 축하해야할 일이었다.

 

  함께했던 시간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지만, ‘합격’이라 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모두 이룰 수 있어서 기쁜 시간이었다. 난 좋은 선생은 아니지만 좋은 학생분들 덕분에 검정고시 전원 합격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세 분의 합격생들의 앞날을 응원하고, 다음 발걸음들도 함께 걸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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