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자리와 몇 가지 질문
허신행 | 사단법인 노란들판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12월부터 장애인일자리 사업 담당으로 노들 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허신행입니다. <노들바람>을 통해서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몇 가지 설명도 드리고 논쟁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장애인 일자리사업은 무엇인가요?
장애인 일자리사업은 국가에서 그간 노동에서 배제되어 온 장애인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입니다. 그리고 사단법인 노란들판은 올해부터 이 사업의 수행기관이 되었답니다. 이 사업은 크게 전일제(하루 8시간 근무), 시간제(하루 4시간 근무), 참여형(일주일에 14시간 근무)으로 나뉩니다.
노들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노들에서는 전일제 근무자가 4명, 시간제 5명, 참여형 18명이 있습니다. 업무의 영역으로 보면 청소 등 공간관리와 야학 급식지원에 11명, 권익옹호 활동에 16명이 애써주고 계십니다. 공간관리는 생각보다 많은 업무를 하신답니다. 2층, 4층, 5층, 6층의 화장실, 복도, 사무실 청소와 분리수거를 맡아주시고 교실과 4층, 6층 강당의 책상과 의자 정리까지 하시지요. 활동지원사 양성교육이 있는 주에는 더더욱 바빠지십니다.
권익옹호활동은 각종 집회, 추모제, 기자회견 등의 현장 활동에 나서고 수많은 장애인권 이슈에 대한 공유 및 토론도 하십니다. 농성장 지킴이 일정에도 참여하시고 일지작성과 회의도 진행합니다. 공간관리에 비해서는 외부 활동의 비중이 훨씬 높은 편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즐겁게 일하고, 때로는 다투고, 월급날엔 동료들에게 들다방에서 커피도 한잔씩 사면서 재미있는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우리에겐 의미 있는 이 일상이 누군가에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나봅니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세금으로 운영되다보니 우리의 일은 외부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기가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받게 되지요. 우리도 생각해볼 여지가 꽤 있습니다.
왜 그 비용을 들여서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하죠? 그냥 돈으로 주면 서로 편하지 않나요?
많은 노동자들은 늘 휴식을 원합니다. 일 하는 것보다는 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굳이 일자리를 통해서 급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돈만 이체하는 것이 관리비용도 줄이고, 당사자의 만족도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듯하지 않나요? 누가 일하고 싶나요. 가만히 있어도 돈이 나오면 그게 더 좋지요.
하지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툭툭 던지는 말들이 누군가의 간절함을 단순한 농담거리로 낮추어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노인일자리 사업을 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일자리가 노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책이나 통계 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나와 일하는 노인 노동자의 얼굴을 한 번만 보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동의했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늘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 사회에 기여하기 보다는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도와주는 존재에서 이제 당당히 자신의 일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때 수업시간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자기존중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렵지 않은 단어 같은데 무슨 말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가 무너지는 경험과 다시 회복하는 경험을 하다 보니 자기를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은 성인에게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부분일 수 있고, 바로 이 자존감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일자리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의 노동능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요?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의 노동능력이 비장애인에 비해서 낮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장애인 그룹 내부에 수없이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는데 그 차이를 무시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장애·비장애의 문제도 아닙니다. 비장애인도 모든 일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준을 비장애인,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두는 말입니다.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틀리다고 하는 태도입니다. 김도현 활동가의 책 『장애학의 도전』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의 노동이 ‘활동->가치->대가’가 아닌 ‘활동->대가->가치’의 형태로 작동해서 돈을 많이 벌면 가치 있는 일로, 돈을 적게 벌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진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노동능력이나 효율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적 기준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일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일이고(김도현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구성원의 물질적·정신적·정서적 삶에 대한 기여), 따라서 대가도 받아야 하고 노동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권익옹호 활동도 노동인가요?
앞서 설명했듯이 노들에는 권익옹호 활동가들이 많이 계시고, 그 활동에 대한 급여도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게 태극기 부대가 돈을 받고 데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도발적으로 묻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돈을 받고 집회에 나온다는 면에서 똑같다고 느껴지시진 않나요?
우리의 활동은 세상의 기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을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니라 장애인의 보편적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합니다. 그동안 비장애인에게 맞춰져있던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전문가의 입을 통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우리의 노동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권익옹호 활동은 다른 사람의 우려대로 망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정 공유만 한다면 우리의 권익옹호 노동자들은 ‘동원되는 대중’이 될 것입니다. 개인의 수행능력만을 중시하고 우리의 활동 자체에 대한 의미에 확신이 없다면 말 잘하고 실행력 있는 활동가가 되지 못한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 혹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운동의 완전무결함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자리 사업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을 뽑고 배치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에 맞는 직무를 개발하고, 업무의 강도를 조정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중재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야학에서, 센터에서, 들다방에서 많은 활동가들이 이 일을 함께 해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노동은 장애인 노동의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행착오들은 훌륭한 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함께 고생해주시는 담당자와 일자리 노동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