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 책꽂이]
장애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상이다
『철학, 장애를 논하다』(김도현 저, 그린비, 2020)
변재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초보 활동가.
투쟁의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에게 먹물 같다고, 인터뷰 현장에서는 시민들에게 말이 험하다고 놀림당하기 일쑤.
뒤틀린 몸과 말을 끝까지 지키는 활동가가 되기를 소박한 목표로 삼고 있다.
불같은 철학 논쟁은 늘 단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잡지를 읽는 독자들을 흥분시키고 철학적 논쟁을 유발하기 위해 과감한 명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장애는 어떠한 경우에도 손상이다.”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
『철학, 장애를 논하다』의 제1부 ‘형이상학’ 파트에서는 장애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소개한다. 장판(장애인운동판) 활동가라면 익히 들어보았을 법한,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에 대한 논의도 이 장에 자세히 실려 있다. 이 글에서는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사회적 모델’과 ‘의료적 모델’이라는 양대 모델은 기본적으로 장애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먼저 의료적 모델은 ‘개인적인 결함’에 우선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모델에 의하면 장애는 개인의 결함에 의해 발생하며, ‘비정상적인’ 결함을 해결하는 것이 곧 장애를 해결하는 것이기에 의학적 처치 등이 주된 관심사이다.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정책은 장애를 ‘의료적 모델’에서 해석한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에도 존속되고 있는 각종 점수표가 바로 이 모델의 강력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의료적 모델은 필연적으로 장애인을 (손상의 정도와 기능에 대한) ‘채점’을 통해 파악해야 할 대상, ‘치료’받아야 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즉 서로 다른 장애인이 지닌 각자의 장애는 자신이 제어할 수 없고, 우선적으로 공무원과 의사의 몫에 달려있다. 장애인 스스로가 인식하는 정체성과 사회적 어려움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의료적 모델에 입각한 정책이 비판받는 지점이다. 따라서 많은 장애인단체가 옹호하는 사회적 모델에서는 신체적 결함보다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장애를 정치적 정체성의 개념으로 해석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장애는 단지 신체적 결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에 좌우되기 때문에, 장애 없는 세상은 어떠한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가에 달려있다. 사회적 모델에서는 장애의 계기가 되는 손상을 치료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 및 혐오 금지와 같이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부터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수많은 장애인단체가 장애를 정의하는 데 사회적 모델을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모델에서 장애는 경험적 사실이 아닌 구성적 실재이기 때문에, 장애 담론의 중심은 사회구조와 문화의 변화에 놓여 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의료적 모델이 ‘사회 환경’에 대한 논의를 누락하거나, 모든 사회적 모델이 ‘의학적 결함’에 관한 논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결정적인 차이는 장애를 자연주의적 차원에서의 경험으로 해석할 것인가, 구성주의적 차원에서 사회적 상호주의로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로서 나의 주체성을 인정받는 데에는 사회적 모델이 보다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모델을 통해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래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이자 더 정확히는 통증을 감각하는 사람으로서 사회적 모델을 비판해보고자 한다.
몸 없는 사회적 모델
사회적 모델의 가장 큰 문제는 장애를 ‘비의료적’인 정체성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체가 감각하는 이상이나 통증에 관한 논의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 우선 이 책의 제4장 ‘장애와 사고하는 몸’이 취하고 있는 ‘현상학’적 인식론에 대해 사회적 모델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기하는 비판을 살펴보자.
“사회적 장애 모델은 분석의 시선을 병리화된 개인으로부터 사회적 관행으로 돌려놓았다. 강고한 사회적 모델은 장애란 개인의 손상된 몸에 관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만들어 내는 사회 내에서 억압받는 낙인화된 집단에 관한 것이라고 논함으로써, 체현과 장애 간의 연계를 단절하고자 시도한다. 상이한 유형의 몸을 지닌 존재의 체험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현상학적 철학의 전략은 이를 거스른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적 모델에 입각한 비평가들은 현상학적 접근법이 장애라는 ‘문제’를 병리화된 개인에게로 되돌려 놓으며, 차이를 지닌 사람들을 장애화하도록 사회가 편재된다는 실제 이슈에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게 만든다고 논한다.”
위 의견에 대해 나는 도리어 사회적 구성주의에 전적으로 의존한 ‘몸 없는 장애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신체 인식에 기반한 현상학을 개인주의적이고 병리학적인 관점이라고, 즉 ‘의료적 모델’의 일부라고 오인하여 비판한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사회적 장벽이자 구성물로 인식하는 이들의 시각에는 ‘차별’, ‘배제’,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골고루 들어있지만, 그보다 앞서는 ‘몸’에 대한 이야기는 삭제되어 있다.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은 장애가 기본적으로 손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원론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이를 중대하게 다루지 않음으로써, 몸의 감각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듯 ‘신체적 손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부가적인 것이 되는 순간, 장애 정체성은 생생함을 잃게 되고 사회에 의해 좌우되는 수동적인 것으로 환원된다.
그래서 나는 단언한다. 장애는 어떠한 경우에도 몸의 손상의 문제이다. 그리고 손상의 문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손상은 많은 경우 신경생리학적 통증을 수반하며, 다양한 신체적 통증은 그 어떤 사회적 장애물에 의한 고통의 경험보다 본질적이고 생생하며 악랄한 문제이다. 내 신체에서 비롯되는 근원적인 통증의 문제는 어떠한 사회적 제도로도 경감되지 않는다. 통증을 수반하는 몸의 손상은 사회적 장벽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모델을 주장하기 위해, 장애를 ‘사회적 구성물’로 표현하기 위해, ‘몸’을 활용하는 정도로 언급해서는 안 된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몸의 손상 문제는 장애를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환원시키는 원자론적 시각이 아니라, 오히려 추상적인 문제를 생생한 감각의 문제로 직시하는 시선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창하는 사회적 모델 논의 홍수 속에서 ‘몸 없는 정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는 이제 몸의 손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장애해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몸’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늘 불만이었던 것이 바로 이런 문제였다. 사회적 모델이 ‘손상’을 다루지 않고 ‘고통’을 부차적인 문제로 여기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몸에 대한 극복을 강요하게 된다. 나아가 장애를 인식하고 정의할 때 몸을 삭제하는 것은 고통 없는 장애를 지닌 자의 편향으로도 느껴졌다.
장애해방은 고통의 해방으로부터 온다
내가 생생한 고통과 손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의료적 모델을 옹호하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손상에 대한 의학적 인식이 수반되지 않고서는 장애의 문제가 결코 정의될 수 없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의료적 모델이 갖고 있는 가부장적인 처치의 양태와 장애인을 객체화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철저히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단언한다. 장애인의 몸은 신경생리학적 손상과 절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손상과 절단은 사회적 구성에 따라 ‘장점’으로 치부될 수 없는 명확한 ‘약점’이다. 아니 고통은 장점과 단점을 구분하기 이전에 본질적이고 괴로운 실재이자 감각이다. 장애를 인식하는 데 있어 이 본질적인 몸의 정체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장애가 어떠한 경우에도 몸의 손상에서 비롯된다면, 과연 장애해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고통의 해방으로부터 온다. 피곤하지 않을 몸을 가질 권리, 통증 없는 몸을 가질 권리로부터 장애해방이 실천된다. 장애해방은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기회를 제공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으로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인식하게 됨으로써 오는 것이다. 장애해방의 문제는 반드시 현상학적 시각과 사회 구성주의적 시각 모두를 고려해야만 한다.
나는 이 글에서 제출한 나의 입장에 대한 반박과 토론을 환영한다. 내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당신의 의견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것이 현상학이고 사회 구성주의이기 때문이다. 무비판적으로 ‘의료적 모델’과 ‘사회적 모델’의 개념을 달달 외우는 현재의 모습은 도리어 우리가 벗어나고자 한 자연주의를 지독하게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