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꿘위와 노들
- 홍은전 노들야학 사무국장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 21%. 땅땅.
애초 50% 축소 방침을 통보하였다가 반발이 거세어지자 그 다음엔 30%로, 선심 발휘하셔서 최종 21%에 낙찰!됐단다. 이건 뭐, 국가인권위원회가 김밥도 아닌데 너무 막 썰어 드신다. ‘눈엣가시’ 처리하는 방법 치곤 너무 적나라하시다. 네 살 먹은 도현이(내 조카다!)도 이보다는 세련되겠다.ㅜ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땅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국가 기관이다. 장애영역으로 보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이후 장애인 차별의 권리 구제 기관으로, 차별 사안에 대한 조사와 구제, 시정권고를 한다.
인권위 축소, 상황은 이렇단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과 함께 장애인계는 인권위 행정인력 60명 증원을 요구하였으나 당시 행정자치부는 20명 증원을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2008년 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의 전환을 추진, 20명 증원 약속도 없던 일로 만들었다.
그리고 2009년 3월 행정안전부는 급기야 인권위 조직 축소 방침을 통보,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반발과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3월 말 차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거쳐 축소 방침을 최종 통과시킨다. “44명 인원감축. 지역사무소는 1년간 존치 후 존폐여부 결정” 땅땅.
요약해놓고 보니, 더 할 말 없다. 역시나, 참~ 쉽다. 거짓부렁쟁이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예는 구체적으로, 가치는 실생활에서 찾아야하는 노들야학의 익숙한 방식대로, 노들이 인권위를 찾아갔던 기억을 더듬어본다.
2002. 8. 발산역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를 촉구하며 사과를 요구하며 39일간의 단식농성을 벌였다.
2006.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장애아 부모, 교사, 당사자들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였다.
2007. 노들야학을 비롯한 전국의 장애인야학에서 ‘장애성인의 교육권보장을 위한’ 교육차별사례 집단진정(65건)을 제출하였다.
* 2007. 활동보조 권리 쟁취를 위해 중증장애인 25명이 단식농성을 하며 ‘대상제한 폐지, 생활시간 보장, 자부담 폐지 등’을 요구하였다.
* 2007. 실효성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을 위해 60일간의 인권위 점거 농성을 진행하였다.
이쯤 되면.
2007년. 출범 5년 동안 총 21회 352일을 ‘점거 당했다’며 무단점거 자제를 요청한 인권위의 메시지가 충분히 이해될 만도 하다. 너도 나도 와서 막 때리는 동네북이 아님을 항변하고 싶었던 거겠지. 뭐, 같은 상황이라도, 약한 자들의 힘없는 북소리가 인권위를 통해 증폭되어 이 사회에 울려 퍼질 수 있다면, 그건 이 시대 진정한 신문고가 아닐까. 당시 인권위에 대한 교장샘의 응수-‘인권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말이다.
어느 쪽이든.
적어도 노들이 찾아갔던 인권위는(실상 열에 여덟 번은 농성 중이었다.)
‘활동보조 없으면 난 죽어’ 라고 울부짖던 선심과, 내 아이 나 죽고서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 절규하던 어머님들이억울함을 호소하고, 넋두리를 늘어놓고, 저항의 액션을 모의하는 곳이었다.
시장 통처럼, 또 서낭당처럼, 힘없고 억울한 자들의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진정한 민원실이고, 상담실이고, 배움터였던 것이다. 인권이 마렵고 급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해소해줄 곳으로 인권위를 찾는다. 그런 인권위가 축소되면 당연히 대기 줄이 길어지겠지.
그 긴 줄 어디쯤엔, 오늘도 시설에 갇혀 ‘죽은 듯이’ 살기를 강요당하며 신경안정제가 섞인 밥을 먹는 이가 있을 것이고, 보일러가 터져 새어나온 물이 시시각각 자신을 덮쳐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가 있을 것이다. 외줄 위에서 곡예 하듯 생/사가 한끝 차이인 삶, 그 스스로 소리를 낼 기력조차 없는 이들이 그 줄 어디쯤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인권위 축소의 피해는 고스란히 그들, 기댈 곳 하나 없는 약한 자들이다.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를 21% 축소시켰지만, 그 결과는 상상 밖이다. 어찌 삶의 파괴를 수치로 추측하고 가늠할 수 있을까.
※인권위는 이번 결정에 대해 3월 30일 헌법재판소에 대통령령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제기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