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야 같이 놀자~]대학로에서 턱 없이 잘 나가고 싶어라~
-현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턱없이 잘 나가는 무대(?)
노들야학과 노들센터의 보금자리 대학로. 노들 가까운 곳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습니다. 혹자는 비둘기만 많다고 투덜대기도, 그리고 예전보다는 한물간 공간이라고 얘기하지만 서울의 문화예술 중심지라 할 만한 공간입니다. 이런 마로니에 공원의 한켠에 무대가 하나 있는데요. 얼마 전 이곳에 작지만 큰 변화가 한 가지 생겼습니다.
‘턱 없이 잘 나간다’라는 말은 노들극단 ‘판’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슬로건(?)인데요. 이 말이 현실이 되었답니다. 지난 2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마로니에 공원 무대 접근이 가능하게 해달라고 진정을 냈습니다. 그리고 보름여 만인 3월 9일, 무대 뒤편에 목재로 된 경사로가 생겼답니다. 다른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차별 없이 무대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경사로가 없던 이전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동안 마로니에 공원 무대로 올라가는 방법은 계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사로가 없고 계단만 있는 접근권의 제한. 이것이 어디 마로니에공원 무대만의 문제일까만 조금만 더 고민해보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로니에 공원 무대는 야외공연장이다 보니 객석에 대한 접근권의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물론 아주 무거운 돌덩이 의자를 옮겨야 하는 것 빼고는요)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주체로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배제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객석이 아닌 무대에 경사로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마로니에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노들야학과 장애인문화운동을 하는 많은 단위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작년 ‘노들인의 밤’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지금처럼 경사로가 없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서 이동식 경사로를 대여해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대 접근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노들인의 밤’이 진행되는 동안 정말 위태해보였습니다. 일단 경사로 폭이 좁기도 했고, 경사로가 고정이 되지 않다보니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안전사고를 당할 수도 있구요.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대변되는 대학로. 그 중심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 그리고 일상적으로 작고 큰 규모의 공연이 이뤄질 수 있는 마로니에 공원 무대. 이 무대에 경사로가 없다는 것은 바로 장애인을 문화생산의 주체로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무대에 올라와서 공연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의든) 어떤 사회적 인식이 작용한 것입니다. 그런 마로니에 공원 무대에 경사로가 생겼다는 것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무대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 이상을 갖는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화 활동에 있어서 비장애인 중심성에 균열을 내고, 장애인들이 턱없이 잘나갈 수 있는 문화생산자가 되는 데에 이 정도면 큰 의미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로니에 공원과 장애인 문화 활동
또 다른 이야기를 한 가지 더 할게요. 얼마 전 3월 5일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9년도 장애인 생활체육 활성화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골자는 이렇습니다. ‘그동안 장애인체육이 엘리트 위주의 장애인체육 정책이었는데, 앞으로는 생활체육 중심으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생활체육 참여인구는 2008년 말 6.3퍼센트로 약 14만 명에 이르며 이는 비장애인의 체육활동 참여율 34.2퍼센트에 비해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장애인의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4개 부문 16개 세부사업에 총 63억 640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질적으로 향상시킬 만한 최소치라도 존재했을까 라는 문제의식이 듭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이 조금은 기만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구요. 우리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 당장에 생존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문화가 웬 말이냐 라는 생각일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는 향유하고 소비하는 여가로서 자리 잡고 있는데다가 장애인의 문화에서는 특히나 여가로서의 문화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에 삶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녹아있고 문화를 통해 이것이 발현된다고 생각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장애인 문화에 향유와 소비의 여가문화만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문화라는 영역에 장애인의 자리는 없다는 것일 테지요.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는 것처럼 문화에서도 차별과 배제를 받으며 문화로써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영역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너무 얘기가 돌아왔네요.^^; 다시 돌아가면. 마로니에 공원 공간 속에 장애인의 고유한 문화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한켠에는 비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농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없지요. 혹시 ‘보치아’라고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나가서 매번 금메달을 따오는 효자 종목인데요, 뇌성마비장애인들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서 공을 이용해 점수를 내며 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동계올림픽 종목인 컬링을 연상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노들야학 학생분들과 노들센터 활동가 및 회원분들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는 게임입니다.
보치아는 동호회나 모임이 많이 있는 편인데요, 대부분의 동호회들이 연습장소가 없어서 지하철 역사 같은 곳에 모여서 연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치아를 엘리트 장애인 체육인들만이 아닌 생활체육으로 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이 접근이 용이한 마로니에 공원으로 나온다면, 어떤 광경일까요. 요즘 서울 일대가 디자인이다 뭐시다 하면서 한창 공사 중인데, 마로니에 공원도 리모델링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들센터는 앞서 말한 보치아를 포함한 장애인 생활체육 시설을 마로니에 공원 안에 만들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턱 없이 잘나가는 무대가 만들어진 것처럼 마로니에 공원 안에 보치아 경기장이 만들어진다, 굉장히 의미 있지 않을까요?!
대학로, 그리고 장애인
대학로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너무나 북적대서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공연장도 많고, 식당도 많고, 술집도 많구요. 노들 활동가들, 노들야학 학생, 그리고 노들센터 회원 분들도 야학과 센터를 벗어나 외부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실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늘 걸리는 것이 있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접근 가능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비장애인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 식당, 가고 싶은 술집을 찾아가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은 그것보다도 내가 접근 가능한 곳을 먼저 찾게 됩니다. 대학로는 특히나 길이 좁은데다가 길마다 차들이 다니고, 건물이 높지가 않다보니 엘리베이터도 없는 경우가 많구요. 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로서도 장애인활동가분들과 같이 밥을 먹건 술을 마시건 그런 곳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가는 곳만 계속 가게 된답니다. 또 가장 문제인 것은 접근 가능하더라도 대부분의 식당과 술집이 화장실 환경이 좋지 않아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대학로가 초행이신 휠체어를 이용하시는 장애인분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많은 대학로를 비집고 다니면서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면서 접근가능하고 이용가능한 식당을 찾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센터에서는 지역사회 조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로에 있는 음식점 등의 편의시설 조사, 그리고 종로지역 내 주요 명소의 편의시설을 조사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을 수행하는 분들은 노들야학 학생 두 분과 센터 회원 세 분이고, 다섯 분 모두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입니다. 몇 해 전부터 장애인편의시설에 대한 관심이 제법 높아져서 많은 자료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편의시설 조사를 주로 하는 장애인단체나 전문가에 의해서 이뤄진 것들입니다. 그런 자료들이 있는데 굳이 이 사업을 하는 이유는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조사활동을 하는 것 자체에도 의미가 있고, 그 결과물이 내용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중증장애인 당사자의 경험과 언어로 표현되기에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조사활동을 위한 회의도 진행하고 있고, 역할분담해서 일을 진행하며, 조사활동 시 사진촬영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분이 직접 하고 있습니다. 매월 정기적으로 1회씩 조사활동을 나가서 12월에는 자료들을 편집해서 정보책자도 제작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물리적 환경들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그것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이 문제를 경험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지역사회 조사활동은 지역사회의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활동이자 장애인당사자의 직접행동을 통한 역량강화에 그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리며 즐기고 만나는 대학로. 그곳에 장애인도 평등하게 함께하고 싶습니다. 대학로를 비장애인들만의 공간이 아닌 장애인들도 함께하는, 장애친화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해나가는 활동들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