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바람을 여는 창
김유미 / <노들바람> 편집인
노들이 궁금해진 어떤 분이 <노들바람> 과월호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주었습니다. 소식지가 완성되면 노란들판 홈페이지(nodeul.or.kr)에 <노들바람> pdf 파일을 업로드하기에, 그곳에서 찾아보시라 했습니다. 다음날 그 분은 56호와 57호 두 호 모두 2005년 7월호로 돼있던데 이것은 어찌된 일이냐 저에게 물었습니다. 2005년엔 제가 노들에 없었으니까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책도 2019년 12월에 만든 겨울호라고 표시했습니다. 이 짧은 글을 쓰는 지금은 1월 초인데요. 2030년쯤 누군가는 비슷한 질문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호인데 1월 얘기가 들어가 있네요?
2019년 하반기에 야학에서 기초사회 수업을 맡아 진행했습니다. 수업에서 만난 학생분들은 숫자로 구분된 시간들을 어려워합니다. 12월의 12는 어렵고 29일의 29는 낯섭니다. 수업을 시작하는 시간 오후 5시도 바로 떠오르지 않고, 내일 11시에 만나자고 약속해놓고 다음날 11시에 집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어쨌든, 어찌됐든 야학은 옵니다.
2020년 1월, 야학은 겨울방학을 맞았지만, 열이 넘는 학생들이 매일같이 야학에 옵니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신청해 선발된 분들입니다. 작년보다 인원이 늘었습니다. 야학을 쓸고 닦고 설거지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권리옹호’ 활동도 합니다. 처음으로 일을 해보고, 처음으로 월급을 받아보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2020년엔 그 이야기들을 잘 기록해보고 싶습니다.
한 해, 열두 달의 시작은 겨울인데, 왜 사람들이 말하는 사계절의 순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인 것일까요. 1월이 봄인 나라에서 순서를 정한 것일까. 봄을 좋아해서 일까. 순서대로 이뤄지지 않고,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과 비슷하다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답을 찾아봅니다. <노들바람> 2019년 겨울호. 천천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