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121호 - 전국 피플퍼스트 참가기 / 박송이

by superv posted Feb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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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피플퍼스트 참가기

 

 

박송이 | 노들야학 교사.

언론사에서 뉴미디어를 담당합니다.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해요.

노들과 함께 울고 웃고 싶습니다. 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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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라던 문재인 대통령보다 무려 38년이나 앞선 어느 날 한 발달장애인이 외쳤다고 한다. "먼저 사람이고 싶다(피플 퍼스트-People First)”. 그는 마냥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획일성으로 묶이는 게 아니라 그저 ''로 대접받고 싶었다고 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말하기로 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올해 7회째를 맞는 한국피플퍼스트 대회 개최지가 부산으로 정해졌다. 전국에 있는 1000여 명의 발달장애인이 모일 예정이었다. 이런 행사에 노들야학이 절대로 빠질 리가 없다. 노들에서는 발달장애인 학생들과 활동가들 약 50여 명이 함께 참가하기로 했다. 나는 “1000명이나 되는 발달장애인이 전국에서 다 모인대라는 박경석 교장쌤의 꼬드김에 넘어가 피플퍼스트에 숟가락을 얹었다.

 

 

920일 아침 8, 기차를 타기 위해 서울역 대합실에 하나둘 모였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고, 노들야학에 모여 선생님과 함께 서울역으로 온 학생들도 있었다. 장애인 거주 시설인 인강원에 사는 학생들도 함께 봉고를 타고 서울역에 집결했다.

 

 

도착하자마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단체 조끼로 갈아입었다. 저 멀리서도 보일 법한 샛노란 색이었다. 우리는 서울역에서 제일 멋지고 눈에 띄었다. 현수막 앞에서 쿨하게 단체 사진을 찍은 노들은 행인들의 시선 세례를 받으며 기차 플랫폼으로 향했다.

 

 

앞으로 12일을 함께하게 될 짝꿍이 정해졌다. 학생과 선생님, 일대일이다. 저마다 들떠 있는 학생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거나 나란히 걸으며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노들은 무려 기차 한 칸을 전부 차지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우리는 도시락을 까먹고 야무지게 간식도 챙겨 먹어가며 유유히 부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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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에 도착한 우리는 짝꿍의 손을 잡고 삼삼오오 모여 더러는 지하철로 더러는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한참을 달려 부산 벡스코에 도착하니 많은 참가자들이 벌써 자리해있었다. 강원, 경기, 광주, 대구 등 전국에서 온 참가자들은 지역별로 모였다. 서울 참가자들 자리는 행사장 가장 뒤쪽에 있었기 때문에 노들은 이곳에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개회식이 시작하고 있었다.

 

 

개최 지역인 부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활동가들이 올해 피플퍼스트 진행을 맡았다. 전국 각지에서 온 발달장애인들은 일자리, 연애, 자립에 대한 경험담을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조화영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자신의 연애를 걱정하는 주변 시선과 간섭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내 주변 친구들이 연애하면 부모님들이 혼냅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합니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이용을 당하거나 데이트 폭력, 성폭력 당한다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비장애인은 안 위험한가요? 이렇게 걱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고 느껴집니다. 저는 현재 연애를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결혼해서 신혼여행도 가고, 자식도 낳아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불쌍한 장애인으로 동정 받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권리로서 나 자신이 가장 행복한 연애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일자리도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이들은 일자리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와 사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발달장애인의 일자리 보장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장판에서 핫이슈인 자립 생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모든 발표가 끝나자 자유발언대순서가 됐다. 갑자기 회의장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평소에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않았던 학생들은 너도나도 참여를 원했다. 학생당 1분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늦으면 마이크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노들 학생들은 잽싸게 줄을 섰다. 모든 참가자 중에서 1번으로 발언대에 선 장기형!! 무슨 말을 할까? 두구두구

 

 

~ 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트로트를 좋아하는 장기형의 선택은 역시나 말보다 노래였다. 장기형을 필두로 참가자들이 줄줄이 노래를 부르자 갑자기 자유발언이 아닌 자유 장기자랑 시간으로 변한다. 참가자들 사이에선 내 나이가 어때서가 인기곡이었다. 야학 낮 수업 학생인 희숙 님도 같은 노래를 불렀는데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는 희숙 님과 진행을 돕기 위한 성호쌤의 작은 실랑이가 큰 웃음을 주었다. 무대를 장악하고 싶었던 희숙 님은 성호쌤 설득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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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쾌한 자유발언이(라 말하고 장기자랑 시간이라고 불린) 끝나고 초청공연 시간이 되었다. 첫 번째 무대는 장혜영-장혜정 자매의 등장으로 시작했다. 혜정 님은 애창곡인 반갑습니다를 구성지게 불렀다. 영화나 영상에서만 들었던 장혜영 감독의 자작곡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니 더욱더 다정하게 들렸다. 장혜영 감독은 자리에 앉아있던 참가자들을 무대 근처로 불러모았다. 참가자들은 이 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박차고 나가 무대에 오르거나 무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장 자매가 흥겨운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자 우리들은 홀린 듯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후 양천리 축제단과 래퍼 슬릭이 등장하자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 양천리 축제단은 무대를 벗어나 회의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악기를 두드렸고 참가자들은 입으로, 몸으로 악기를 만들어 소리를 보탰다. 우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행렬처럼 신나고 유쾌했다.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라고 본인을 소개한 래퍼 슬릭은 회의장을 천국(?)으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웃고, 춤추고, 박수치고, 노래했다.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학생들은 흥겨웠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숙소는 아르피나 유스호스텔이었는데 차로 가면 금방 도착할 거리였지만 걸어서 가기엔 차도가 있어 위험했다. 하지만 주최 측이 이동수단으로 셔틀버스를 잘 준비해준 덕에 빠르고 편하게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무려 뷔페였다. 맛있는 뷔페 식사 이후에는 일정이 없어서 그대로 쉬면 끝이었다. 우리는 든든히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가 쉬다가 야밤의 치킨타임을 가졌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치킨 아닌가. 우리는 삼삼오오 방으로 모여 배달된 치킨을 먹으며 그렇게 첫날밤을 마쳤다.

 

 

둘째 날에는 일정이 많지 않았다. 아침엔 조식을 먹고 참가자들이 원하는 분과회의에 참여하면 됐다. 자립 생활, 일자리, 취미생활 등 다양한 주제로 열린 분과 회의에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도 학생들은 자기 이야기를 즉석에서 발표했는데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우리 야학에서는 주원이형이 일자리에 관한 발표를 했다.

 

 

이 당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바로 희숙 님이 장기형 얼굴을 갑자기 때리는 도전 행동을 한 것이다. 장기형은 그 자리에서 억울함에 울음을 터뜨렸고 우리는 두 사람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나를 비롯한 신입 교사들은 깜짝 놀랐지만 곧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등장해 둘을 중재했다. 평소 두 사람의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돌발상황을 생각지 못해 느꼈던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켰다.

 

 

시간은 어느덧 흘러 폐회식이 열릴 차례였다. 우리는 유스호스텔 내에 있는 회의장으로 모여 이틀 동안 열렸던 피플퍼스트의 성과와 의미를 정리하며 단체 사진을 남겼다. 큰 사고(?)가 없었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는 소소한 소동과 해프닝을 뒤로하고 12일 같았던 12일 피플퍼스트는 끝이 났다.

 

 

첫 참가였던 나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무척 즐거웠다. 다만 이런 부족한 참가자 눈에도 피플퍼스트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있었다. 일단 거의 모든 행사가 장애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발달장애인 위주로 구성된 듯 보였다. 소음에 민감하거나 도전 행동을 하는 몇몇 학생이 있었는데 이 학생들은 앞에 나가 발언을 하거나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장애 정도가 덜 심한 참가자들 위주로 행사가 꾸려졌다.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 참가자들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조금은 안타까웠다. 주최 측이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부득이하게 발언 기회를 한정하고 무대를 통제한 점도 참가자들의 불만을 샀다. 애초에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그 많은 인원이 모두 자신의 말을 하기 힘들었을 테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모두를 위한 피플퍼스트라도 필연적으로 배제되는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쉬움과 애틋함을 남긴 피플퍼스트였지만 가능하다면 내년에도 꼭 다시 참가하고 싶다. 그때는 좀 더 즐겁고 유연하게 피플퍼스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충청북도에서 열릴 ‘2020피플퍼스트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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