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본 노들야학 모꼬지가 좋았습니다
김상현 | 깊은 생각 없이 노들 야학에 한 번 왔다가 올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점점 빠져들고 있는 신입 교사입니다.
저는 신입 교사입니다. 처음 가본 노들 야학 모꼬지는 좋았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날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 느낌을 독자들께 잘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서 벌써 아쉽습니다.
11월 2일. 날씨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미세먼지가 좀 있다고 했지만, 요새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 얼마나 되나요? 버스 3대와 승합차 1대가 교사, 학생, 활동지원사 80여명을 싣고 10시 반쯤 서울에서 용인으로 출발했습니다. 김밥이 맛있었습니다. 엔돌핀 김밥입니다. 나중에 교사회의에서 거의 모든 분들이 김밥을 언급하며 준비팀을 칭찬했습니다. 와우정사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니 멀리 부처님의 거대한 머리가 보였습니다(몸은 없습니다). 부처님 머리 뒤에는 공작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새하얀 공작새도 있었죠). 기와불사를 하는 곳에는 한국어와 태국어가 적혀있었습니다. 천성호 선생님이 동남아의 소승 불교와 우리나라 대승 불교는 다른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관광객이 제법 많았습니다. 박준호 선생님을 도와 김선심 님의 휠체어를 밀어 언덕을 올랐습니다. 빨간 단풍이 든 나무 앞에서 사진도 찍었습니다. 와우정사를 떠나기 전에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레쓰비 캔 커피를 네 다섯 개 사들고 가던 정지민 님이 그 중 하나를 떨어뜨렸습니다. 떨어진 캔이 터졌는데 괜찮다고, 자기가 마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민속촌에서는 10개 조로 나뉘어 움직였습니다. 저희 조는 입장하자마자 어느 처마 아래 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조금만 걸어들어가면 도시락을 놓고 먹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있었습니다. 초가집 사이를 걷다가 천성호 선생님이 "봉규 형, 이거 다 어렸을 때 보던 거 아니에요?"라고 농담조로 물었는데 이봉규 님이 그렇다고 대답해서 다들 조금 놀랐습니다. 입구에서 먼 장터(푸드코트)까지 가서 인절미와 커피를 사먹었습니다(1/n하자고 하고 이현아 선생님이 계산했던 거 같은데 아직 돈을 못 드렸네요).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 옆에 보리와 무가 심어져있었는데, 김희정 님이 태연스레 무 하나를 쑤욱 뽑았습니다. 김희정 님은 나중에 관아에 가서 곤장을 맞았습니다. 정종헌 선생님이 마음이 약해서 아주 세게 치진 않는 듯 했습니다. 직업 교육을 받기 위해 야학을 잠시 떠나는 김희자 님에게 박누리 선생님이 인생 상담을 해줬습니다. 박송이 선생님과 이현아 선생님이 자신들이 소띠라면서 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 도착하니 먼저 오신 분들이 바베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리비와, 고등어, 오징어를 씻고 손질했습니다. 배승천 선생님이 고등어를 구웠는데 그 기름이 숯불에 떨어져 지옥불(hellfire)이 피어 올랐습니다. 지옥에서 온 고등어는 속이 덜 익었다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진 인기가 좋았습니다. 바베큐를 하던 장소에는 다른 손님이 없었고, 술과 밥이 들어가니 자연스레 춤판, 노래판이 벌어졌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최고의 인기곡이었습니다. 분위기가 약간 식었을 때 허신행 선생님이 <너는 내 아들이라>를 "너는 내 딸이라"로 개사하여 부르며 분위기 부흥(혹은 부흥회 분위기)을 유도했습니다. 약해진 숯불에 박누리 선생님이 귤을, 조은별 선생님이 감자와 고구마를 구웠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는 하나에 5천원이라고 했지만, 그걸 먹은 그 누구도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11월 3일. 아침 햇살이 시원스레 내렸습니다. 리조트에서 아침을 먹은 후 건물 뒷 편에 있는 풋살장(outdoor futsal field)에서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체육대회 진행을 맡은 박송이 선생님이 노란 풍선 30개에 바람을 넣었습니다. 무선 마이크에 건전지가 다 되어 진행이 어려울 뻔 했는데, 유금문 선생님이 자신이 갖고 있던 건전지를 쓰라고 줬습니다. 김필순 선생님이 페트병에 노란 풍선을 달고 그림을 그려 성화 봉송용 성화를 만들었습니다. 한혜선 선생님이 김희자 님에게 성화를 건냈고, 김희자 님이 풋살장을 가로질러 성화를 봉송했습니다. 비로소 시작된 체육대회의 첫 순서는 OX 퀴즈였습니다. 첫 번째 문제는 "고장 샘과 창조 샘 중 고장 샘이 전화를 먼저 받는다"였습니다. 한쪽에선 "정창조! 정창조!"하는 구호가, 다른 쪽에선 "박경석 못 믿어?"라는 외침이 터져나왔습니다.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화를 걸었는데 걸자마자 박경석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성호 샘과 태종 형이 눈싸움을 하면 성호 샘이 이긴다"였습니다. 천성호 선생님의 가는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하기 어렵기에 임태종 님이 약간 불리한 게임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천성호 선생님은 얼굴을 천연덕스레 들이밀며 상대에게 공격을 가했고, 임태종 님은 그 면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며 피하다가 눈을 깜빡이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다시 한번 눈싸움 대결(김수지 님 vs. 최영은 님), 누가 "꼬끼오~"를 더 오래하는지(정진영 선생님 vs. 정종헌 선생님), 누구 지갑 혹은 주머니에 현금이 많은지(김홍기 님 vs. 박점순 님), 누가 더 빠른지(김효진 님 vs. 김홍기 님; 김진수 선생님 vs 하상윤 님) 등의 대결이 이어졌고, 살아남은 사람은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OX퀴즈의 끝까지 살아남은 박지호 님이 상품으로 목욕용품 세트를 받았습니다. 체육대회의 두 번째 순서는 이어달리기였습니다. 평범한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풋살장을 돌면서 큰 공(gym ball)도 차고(위험 요소가 있어서 나중엔 제외했습니다), 노란 풍선도 터뜨리고, 큰 주사위를 5가 나올 때까지 굴리기도 하는 일종의 장애물 달리기였습니다. 처음엔 두 팀으로 나눠서 한 팀 당 주자 3명이 달리는 것이었는데, 점차 자원자가 많아져서 추가로 경기를 했습니다. 주자들이 달려가며 노란 풍선을 터뜨리기 좋게 가을 선생님, 박준호 선생님, 유금문 선생님, 이종운 선생님, 정진영 선생님이 풍선을 깔아주었습니다. 주사위 굴리는 걸 도와준 건 야학에서 수학 수업을 하는 박임당 선생님과 한혜선 선생님이었습니다. 김경남 님, 김수지 님, 김장기 님, 이인성 님, 이혜미 님, 이홍철 님, 임기하 님, 정혜운 님, 최동운 님 등 여러 명이 달렸습니다. 김유미 선생님은 모두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주자를 따라가며 소리를 지르느라 누가 몇 번째로 뛰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상품인 목욕용품 세트는 여럿이 나눠가졌습니다.
용인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동숭동에는 1시에 도착했습니다. 2019년 노들 야학 모꼬지는 그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모꼬지의 뭐가 그리 좋았는지에 대해선 독자의 상상력에 기대보겠습니다. 이 원고를 청탁한 김진수 선생님에게 "필생의 역작을 쓰겠다"고 했는데, 그러진 못한 것 같아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