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 책꽂이]
<장애학의 도전>과 함께 장애학에 도전해 보자!
허신행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4년간 광야를 떠돌다 노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12월부터 다시 사단법인 노란들판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신입 교사들이 100번 이상은 접하게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떻게 하다가 노들야학에 오시게 되셨어요?”라는 질문 말이다. 2007년이었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지만 장애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우연히 학교 앞 서점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김도현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였다. 무심코 잡은 얇고 가벼운 이 책은 나에게 엄청난 무게의 충격을 던져주었다.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 소개에 보니 그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의 정책국장이라고 했다. 나는 전장연에 전화를 해서 자원활동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기보다는 노들야학에 연락을 해보라는 답을 주었다. 2007년 여름, 나는 노들야학에 자원활동 교사로 들어가게 되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어 놓으리라 상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명확히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고 생각한다.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노들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노들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감사하고 또 한편으론 신기한 일이다.
내 인생의 책을 쓴 김도현이 꼭 10년 만에 새 단행본을 내놓았다. 바로 <장애학의 도전>이다. “10년의 기간 동안 장애인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며 읽고, 고민하고, 궁리하고, 깨달은 것의 9할 이상, 아니 문장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 건 모두 이 책에 담았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책이 나왔으리라 직감했다. 누구보다도 그의 팬이라고 자처했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읽고 싶은 생각에 예약 구매를 했고, 배송을 받자마자 숨 쉴 틈 없이 통독했다.
역시 김도현이었다. ‘나만 이 은혜를 받을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나만 읽고 다른 사람은 이 책의 존재를 아예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만 아는 보석 같은 노래가 대중가요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이리라. 그리고 사람들이 <장애학의 도전>을 읽고 나면, 나 같은 장애인권교육 강사들의 얘기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도 조금은 섞여 있었다.
이런 사사로운 감정 따위로 사람들에게 추천을 안 할 수는 없다. 평양냉면을 모르고 살았던 나의 30년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장애학을 모르고 평생 살아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사실 <장애학의 도전>은 출간 20여일 만에 1쇄를 모두 소진하고 2쇄를 찍을 정도로 이미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 <장애학의 도전>을 추천하고 싶은 주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쉽다. 단언컨대 장애학을 다루는 그 어떤 책보다 쉽다. 다루고 있는 내용은 절대로 만만치 않다. 우생학, 동물해방론과 장애, 정의(正義), 비장애인중심주의, 자기결정권, 노동권 등 쉽지 않은 논의와 개념들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다. 사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장애인운동을 해온 저자의 경험 때문일 수 있겠다. 학자들은 어려운 말을 써야 자신의 업적이 커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경쟁하듯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20년 넘게 장애인 당사자와의 소통을 통해 수련한 저자는 최대한 쉬운 언어로 상대방을 배려하려 노력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어려운 내용의 글을 읽지만 그의 친절함을 통해 쏙쏙 이해가 되는 희열을 경험할 수 있다.
둘째,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장애’의 ‘장’자도 잘 듣지 못한다. 장애인과 상관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나마 올해부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정보 습득의 창구가 늘기는 했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서든 대중매체를 통해서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되어 있다. 장애인이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를 가진 주체라는 점만 들어도 다행일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김도현의 논의들은 다채롭다 못해 화려하다. 지적 호기심을 진하게 자극한다. ‘도대체 동물권이랑 장애가 무슨 상관이 있지?’,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장애인과 같은 사람들도 자립할 수 있다고?’, ‘근로능력이 없는 장애인에게도 노동권이 있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말이 되나?’와 같은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준다. 그의 논의는 비장애인들이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일종의 매트릭스에 갇혀 살아왔기 때문임을 증명한다. 비장애인중심주의, 사회적 장애 모델 등의 핵심 코드로 장애와 비장애인 간의 관계를 제대로 분석해 낸다.
셋째, 깊이 있다. 장애학에 대한 그의 소개는 바로 저자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장애학은 실천지향적이다. 저자는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투쟁하는 활동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장애인권운동에 투신했으며 지금도 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장애학은 편파적이고 당파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할 때, 예산이 부족하다고 할 때, 꿈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할 때 그는 이동권을, 교육권을, 자립생활의 권리를, 노동권을 외쳤다. 한결같이 장애인의 편에 있었다. 합리적·이성적이라는 표현은 비장애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교묘한 수사였다는 점을 끊임없이 고발했다. 이런 배경을 지닌 저자의 글은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으로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워 익힌 이론이다. 깊이 있는 그의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읽고 나서도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김도현의 글은 진정성이 있다. 현장과 맞닿아있다. 써야 해서 기계처럼 써내려간 여느 보고서와는 다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서, 동료의 억울함을 함께 겪고 이겨내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찡함을, 이 가슴 떨림을 한 사람이라도 더 느껴봤으면 좋겠다. 12년 전의 나에게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가 인생의 책이 되었듯이, 누군가에게 <장애학의 도전>이 인생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책을 읽고 노들야학에 지원했다는 자원활동가가 어서 나타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