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의 도전> 저자에게 보내는 편지
이 책이 꼭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김도현 님, 안녕하세요. 저는 평택에서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랍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 읽던 중 <장애학의 도전>을 접하게 되었는데요, 좋은 책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장애학의 도전>이 너무 좋아서 도현 님이 앞서 쓰신 책들도 찾아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저는 사범대를 나와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아이의 자폐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표를 던지고 나왔습니다. 꼭 ‘고쳐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요. 아이의 ‘다름’을 고쳐야 할 질병으로만 여겼지 장애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발달장애 자녀를 둔 전국의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저 또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자폐증 정도는 극복할 수 있고 ‘완치’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 아이한테만 온 에너지를 쏟고도 (당연히) 자폐증을 치료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이제 아들이 열두 살이 되어서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장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오직 자폐증 치료나 자폐증과 관련된 책들만 보았지요.
<장애학의 도전>을 접하기 전 장애와 관련된 다른 책들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여러 엄마들과 함께 공부 모임을 꾸렸지요. 한 책에서는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자기 정체성과 ‘미적 영역’의 차원에서 얘기했습니다. 하나의 매력으로요. 이런 걸 ‘장애 자부심’이라고 하나보다, 나름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그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 본인이 장애인이기도 했기에, 이 책을 열심히 읽으면 발달장애의 전 생애에 대한 우리들의 고민도 해결되겠거니 싶었지요. 그런데 그 책에서도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프라이드’를 세워주시는데, 발달장애에 대해선 사실 ‘나도 모르겠다!’여서 우리 엄마들끼리 책을 읽으며 웃었거든요. ‘거봐라, 다른 장애는 다 가능해도 발달장애는 어쩔 수 없어.’ 이런 자조 섞인 웃음이었지요. 발달장애는 어디서든 열외구나 싶기도 하고, ‘알 수 없어 죄송해요’라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에 재밌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장애학의 도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 속담 있지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내용, 아이들 가르치면서 경험한 교육 현실, 아이 치료와 교육에 매달리면서 읽었던 책, 특수교육의 현실, 주위에서 주워들은 발달장애에 대한 온갖 정보, 장애인 복지 정책에 대한 방향과 그 변화 등, 복잡하게 얽혀 겉돌던 수많은 지식들이 도현 님 책 한 권으로 싹 정리가 되었습니다. 개명천지의 기분을 느끼게 된 거지요. 모든 문제를 파생시킨 핵심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나머지는 절로 풀리는, 그 매듭 지점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책머리에서부터 “‘보는 자리[시좌]’(position of view)가 달라지면 풍경(landscape) 자체가 달라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면서, 도현 님이 제가 선 자리를 스윽 알려주시는 게 아니겠어요?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사는 엄마로서 제가 그동안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새롭게 열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정말 엄청난 집중력으로 <장애학의 도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각주와 참고문헌, 심지어 찾아보기까지 줄치면서 읽었다면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짐작이 가실는지요?^^ 그 다음 제가 환호한 지점은 ‘발달장애인’을 포함해서, 아니 심지어 중심에 두고 모든 장애 영역을 아우르는 ‘접속-성찰-전환-도전’의 장애 연구를 해주셨다는 점입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시시포스가 아닐까 생각하며 살았는데, 관점이 바뀌고 장애와 비장애를 횡단해 서로 연결되면 무거운 바위도 솜사탕이 될 수 있겠구나, 가슴이 뛰었답니다.
보통 책을 읽고 후기를 쓸 때는 비판적인 얘기도 좀 있어야 할 텐데요, 저는 아직 <장애학의 도전>에 푹 빠져 있는 상태라 거기까지는 좀 어렵겠네요. 어쨌거나 제가 이 편지를 쓴 이유는 도현 님이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뿌듯함을 느끼셨으면 해서랍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한 엄마가 이토록 열광하며 당신의 책을 읽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고, 이를 에너지 삼아 그 다음 도전을 또 시작해주셨으면 하는 욕심도 있고요. 제 삶과 저희 아이에게 새로운 좌표를, 당당하고 아름다운 ‘시좌’를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꼭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평택에서 김성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