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비마이너]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고병권 |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으며,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1.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사유 이미지』에는 제목이 동일한 두 편의 글이 있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Einmal ist keinmal)’. 그는 이 제목으로 돈 주앙과 트로츠키에 대해 토막글을 한 편씩 썼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목 그대로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돈 주앙과 트로츠키 모두 이 진리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연애에서 그랬고, 또 한 사람은 혁명에서 그랬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은 ‘단 한 번이면 된다’는 말과 대립한다. ‘단 한 번이면 된다’는 말은 노름꾼의 말이다. 패만 한 번 맞아떨어지면, 숫자 하나만 걸리면, 한 방에 역전할 수 있다는 생각. 꼭 돈이 아니도 이런 노름꾼은 곳곳에 있다. 전세를 역전시킬 단 한 방을 기대하며 손을 크게 휘두르는 권투 선수도 그렇고, 모든 것을 한꺼번에 되찾을 혁명을 기대하며 모험적 행동에 뛰어드는 혁명가도 그렇다.
그렇게 해서는 설령 비슷한 행운을 잡는다 해도 구원이나 해방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로또 당첨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처럼 되기 쉽다. 벤야민은 이것을 글쓰기에 비유했다. 멋진 구절을 떠올려 놓고는 바로 그 구절 때문에 글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구절이 너무 멋져서 다음에 이을 구절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차라리 그 구절을 버리면 수월할 텐데 너무 아까워서 놓지를 못한다. 그러나 놓지 못하는 것은 붙잡힌 것과 같다. 황금으로 만든 족쇄라고 해서 족쇄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는 멋진 구절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으나 그것이 다음의 성공을 막았다는 점에서 아주 나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물론 ‘단 한 번이면 된다’고 말했다고 해서 노름꾼이 노름을 한 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가 허영만의 작품 『48+1』에서처럼 그는 마음속 화투 한 장이 나올 때까지 노름을 멈출 수 없다. 아마도 그 한 장은 평생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평생 마음에서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저 블랙홀처럼 노름꾼을 계속해서 빨아들일 뿐이다. 노름꾼은 상황을 종료시킬 한 방을 꿈꾸지만 그 꿈 때문에 나쁜 상황은 종료되지 않는다.
노름의 이런 생리와 대비되는 것이 노동이다. 한 판에 대한 꿈으로 노름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식으로 노동을 할 수는 없다. 매일의 노동을, 한 방을 기대하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내지르는 권투선수처럼 할 수는 없다(그런 사람은 권투 선수로서도 수명이 짧을 것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안다. 한 번하고 말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 말이 담고 있는 지혜를 파고 들어가는 데 성공한 사람이 트로츠키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영구 혁명’ 개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은 독특한 반복의 구조를 하고 있다. 그에게 혁명은 독립적이지도 않고 단계적이지도 않다. 한 혁명을 수행한 후에 그 다음 혁명에 도전하는 식이 아니다. 그는 반대로 접근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다음 혁명이 먼저다. 미래 혁명을 추구하는 속에서만 현재 혁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은 시간적으로는 연속 혁명이 된다. 당시 러시아는 사회주의는커녕 자본주의에도 이르지 못한 봉건적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혁명가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계론적으로 접근한다면 일단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집중하고 그 다음에 사회주의 혁명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 속에서만 프롤레타리아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선사하는 권리들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미래 혁명이 현재 혁명을 끌고 가는 구조인 것이다.
시간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그렇다. 현재와 미래가 맺는 관계는 일국과 세계가 맺는 관계와 같다. 이 경우 영구 혁명은 국제 혁명이 된다. 혁명이 러시아에서 먼저 일어난다고 해도 그 성패는 다음에 국제 혁명이 일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 혁명이 현재 혁명을 구원하듯 국제 혁명이 일국 혁명을 구원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혁명가는 미래 혁명의 추구 속에서 현재 혁명을 수행하고, 국제 혁명의 추구 속에서 일국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
요컨대 다음번이 없는 한 번은 의미가 없다. 도래하는 혁명이 없을 때 현재의 혁명은 혁명이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의 혁명은 항상 “다가올 혁명극의 제1막”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50년 3월 공산주의자동맹 회원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에서 이 표현을 썼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호소문의 끝을 이렇게 맺었다. “노동자들의 전투 구호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영구적인 혁명Die Revolution in Permanenz”).
2.
그런데 내가 영구 혁명에 대한 탁월한 해설자로 벤야민을 끌어들인 것은 조금 다른 측면을 말하기 위해서다. 앞서도 말했지만 벤야민은 트로츠키에 대한 자신의 언급이 영구 혁명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은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가 옳음을 입증한다. 다만 아무도 이 지혜가 뿌리내린, 실천과 실행의 토대를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트로츠키가 이 일을 해냈는데, 아버지가 들판에서 일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적은 몇 개의 문장을 통해서다.”
벤야민이 트로츠키한테서 감탄한 것은 영구 혁명의 사유나 논리가 아니다. 트로츠키의 성공은 그 사유의 이미지, 그것도 실천적인 이미지를 제시한 것에 있다. 그런데 벤야민은 그것을 의외의 장소에서 찾았다(이것이 내가 벤야민한테 감탄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트로츠키가 어린 시절에 본 아버지의 낫질하던 모습이다.
내가 이것을 ‘의외의 장소’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이것이 트로츠키가 혁명가로서의 삶을 살기 훨씬 전인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는 점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통상 혁명의 주력군으로 묘사하는 도시 노동자가 아니라 시골 농민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벤야민은 트로츠키의 영구 혁명의 실천적 이미지를 나이든 농부의 낫질에서 본 것이다.
트로츠키가 쓴 자서전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그는 고향 야노프카를 떠나 도시인 오데사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는 첫 여름 방학 때 시골집에 내려왔다. 어린 마음에 시골 사람들에게 좀 으스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놋쇠 버클이 달린 가죽 벨트를 차고 빛나는 노란 배지가 달린 흰 모자를 쓰고서 멋을 부린 채 아버지를 따라 들판에 나갔다. 들판에서는 허름한 옷차림의 일꾼들이 밀을 베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의 일하는 모습이 시원찮아 보였는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밀의 상태나 한 번 보겠다며 낫을 빌렸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아버지를 지켜봤다. 아버지는 단순하고 편안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실제로 일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을 시작할 준비하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발걸음 또한 더 나은 낫질 장소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살살 살펴가면서 가볍게 내딛었다. 아버지의 낫 또한 단순하게 움직였고, 아무런 잘난 척함 없이, 심지어 확신에 차 있지도 않은 채―혹은 그렇게 보였다―움직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밀의 맨 아래쪽을 아주 균일하게 베어나갔으며, 낫으로 벤 이삭들을 왼편에서 돌고 있는 벨트로 재빨리 옮겼다.”(『나의 생애』, 박광순 옮김, 범우사, 2001, 152쪽, 번역 수정).
벤야민은 여기서 “매일 매번 낫을 휘두를 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법을 배운 노련한 자의 방식을 보게 된다”고 썼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혁명의 진실을 실천하는 노련한 혁명가의 이미지를 본 것이다. 항상 새로 시작하는 법을 아는 노련한 자는 어떻게 하는가. 한 번에 특별한 힘을 쓰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일도 언제나의 일처럼 처리한다. 아무런 과장 없이, 살살 살펴가면서 그렇게 처리한다. 그리고 이미 잘라낸 것, 이미 이룩한 것을 오래 쥐지 않고 재빨리 한쪽으로 치워놓는다. 다시 벤야민을 인용하자면, “그러한 손들만이 가장 손쉬운 일들을 조심스럽게 처리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도 노는 듯이 해치울 줄 안다.”
3.
트로츠키가 이때의 기억을 영구혁명과 관련지은 적은 없다. 자서전을 쓰며 어린 시절의 기억 한 가지를 길어 올린 것뿐이다. 물론 이 기억을 떠올린 곳에 이렇게 적어두기는 했다. “시골 생활의 많은 것들이 이윽고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인생의 전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런저런 작은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그것들이 종종 나를 크게 도와주곤 했다.”(『나의 생애『, 148쪽)
사실 아버지의 낫질이 나중에 영구 혁명을 떠올리던 때에 되살아나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알 수도 없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낫질은 그가 명시적으로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해방을 염원하며 계속해서 싸워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실천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한 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을 비장하게 외칠 필요는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일을 하는 듯 마는 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발을 내딛을 때는 살살 살펴가며 가볍게 딛을 것. 낫을 돌릴 때는 부드럽게, 벨 때는 단호하게, 벤 다음에는 재빨리 옆으로 치우고 다음 자리로 이동할 것. 이것이 노련하고 원숙한 혁명가의 모습이다.
*덧붙여. 아버지의 낫질은 이렇게 끝나지만 실은 이야기가 조금 더 있다. 아버지가 떠난 후 어린 트로츠키가 낫질을 하겠다며 나섰다. 일꾼 한 사람이 요령을 일러주었다. “애야 발뒤꿈치로 딛고서 베야 한다. 발가락 쪽은 힘을 빼고 그냥 둬. 발가락을 누르면 안 돼.” (참고로 이 낫은 우리가 쓰는 작은 낫과는 다르게 생겼고 쓰는 법도 다르다.) 하지만 어린 트로츠키는 흥분해서 자기 발뒤꿈치가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는지도 몰랐다. 낫을 세 번쯤 휘둘렀을 때 힘을 주지 말라고 했던 발가락은 이미 땅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아이고 맙소사! 이런 식으로 계속 했다가는 낫을 전혀 쓸 수 없게 된다구. 아무래도 아버지에게 좀 더 배워야겠구나.” 일꾼에게 가벼운 핀잔을 듣고 창피했던 트로츠키는 황급히 밀밭을 빠져나왔다. 그때 “배지가 달린 모자 밑으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옷을 멋지게 차려 입고 낫을 호기롭게 돌렸지만, 발에 힘이 너무 들어갔고 심지어 흥분해서 자신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도 몰랐으니, 세 번은 고사하고 한 번의 낫질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