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아 안녕]
노들과 상빈의 만남
박상빈 | 사회적 기준에 따른 삶을 살다가 가치관이 변해 대안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현재 노들야학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사회적 기준에 따라 명성과 수익만 추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동기도 순전히 돈 때문이었고, 학과를 선택할 때도 돈을 기준으로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고른 선택지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긴 고민 끝에 결국 대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때부터 돈보다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고민한 끝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행복 사회 만들기’를 가치관으로 삼았습니다. 즉, 불행이 넘치는 현 사회를 넘어선 대안 사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전선에서 사회 운동을 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에 관심이 갔습니다. 활동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던 중 박경석 고장선생님의 ‘최후 변론’을 읽게 되었습니다. 변론문에서는 잘못된 복지 제도와 일그러진 사회 때문에 고통받으면서 죽어가는 장애인들이 묘사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마음이 동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들 야학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원봉사를 신청했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시작한 첫 활동은 박상준 님 초등 검정고시 과외였습니다. 상준 님은 초-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인 분이십니다. 그래서 학구열이 엄청나십니다. 다만, 기초가 부족하셔서 일대일로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상준 님과 같이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장애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야학에 오기 전까지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니깐 잘 돌봐줘야 한다는 온정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상준 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장애인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밥도 먹고, 공부하면서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열심히 공부한 끝에 초등 검정고시를 합격하셨습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1학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상준 님과 같이 공부한 활동은 장애인과 개인적으로 만날 좋은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노들 야학 시스템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안면도 못 튼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2학기에는 김유미 선생님의 수학 수업을 보조했습니다. 저는 중증 장애인 학생분 옆에서 보조해드리고, 주위 학생분들에게 한 번 더 설명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보조하면서 야학 수업이 돌아가는 구조를 배우고 다양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노들 야학이라는 공동체에 호감이 많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노들 야학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치유하고 힘을 얻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가 정말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1년 동안 자원봉사를 하니 2018년이 끝났습니다. 앞으로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박누리 선생님이 신입교사를 제안하셔서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신입교사 인준 활동을 하면서 야학 수업과 활동을 좀 더 깊이 알게 됐습니다. 다양한 수업에 참관하기도 하고, 권익 옹호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저는 야학에서 학습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바꾸는 운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 대로 활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활동 중에서 광화문 3.1절 기념식 점거 농성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행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이 바리게이트로 진입로를 막자, 앞면을 철판으로 감싼 전동휠체어로 바리게이트를 박살 내고 돌진했습니다. 진입로가 뚫리자 뒤에 있던 전동 휠체어 부대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어벤져스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전동휠체어 부대를 앞으로 하면서 행사장 무대 뒤를 점거했습니다. 그러자 행사 주최 측과 마찰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구안을 들어줄 때까지 농성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정 안되면 본 행사 때까지 기다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행정 관계자가 달려와서 이후 만남을 약속하고 농성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이렇게라도 해야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회에 대한 분노가 더 생겼습니다. 또한, 장애 해방은 아직 멀었구나 하는 패배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연합해서 한 걸음씩 나가면 결국 장애 해방에 다다를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초조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보고 느낀 교사 인준 과정도 끝났습니다. 지금은 국어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 수업이라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항상 학생분들과 같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어서 언젠가는 더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교사 활동을 하면서 대학원 입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운동 방식 중 사회문제의 제도적 접근 방식에 관심이 많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활동하면서 생긴 법적 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고, 문제가 있는 행정권 행사에 행정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장애인 인권이 복지 제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현 상황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법적 언어로 표현할 법조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회 운동을 하는 데에 여러 장점이 있다고 판단되어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합격부터 해야겠죠? 다가오는 2학기에 열심히 야학 활동하면서 입시도 잘 마무리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