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Still Life>(스틸라이프) 그리고 BeMinor(비마이너)
장선정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1.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무연고사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한 적이 있다.
그 걱정은 내가 가진 걱정의 총량에서 순서를 매겼을 때 늘 상위에 있는 것들에 밀려 깊게, 오래 시간을 끌지는 못 했지만 늘 있었고 지금도 있다. 혹 무슨 걱정을 그리 하느냐 궁금해 할까봐 상위 몇 개를 말해 보면 아래와 같다.
[①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급사할 경우 ② 아이들이 어린데 중병에 걸려서 (내가 죽는 게 걱정이 아니라) 치료비로 그나마 별로 있지도 않은 재산(전세금?)을 탕진하게 될 경우 ③ 아이들이 수학여행으로 배를 타거나, 보일러가 고장 난 펜션에 묵거나, 지붕이 무너질지 모르는 곳으로 캠프를 갈 경우 등]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불안’이라는 단어는 온몸에 착 붙어 있는 ‘피로’나 잠깐은 잊을 수 있지만 때가 되면 돌아오는 ‘허기’처럼 그냥 가깝다. 그 장르와 계열 또한 무척 다양해서 어느 날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 퍼레이드에 밤잠을 설친다.
영화 <Still Life>(스틸라이프)를 보기 전 나의 불안지수는 매일이 빨강이었다. 어느 밤은, 자다 일어나서 시건장치를 확인하고 자는 아이들을 코에서 나오는 숨소리를 듣고 주변의 공기와 사물들을 일제히 의심했다 풀었다 하며 새벽을 보냈었다. 나만 그랬을까? (아니었다는데 오른 손(톱 끝)을 걸어 보겠다) 영화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어느 잠 못 드는 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이 친근한 분들은 꼭 한 번은 봤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의 어느 부분은 시간과 공간과 관계 없이 함께 흘러가는구나하는 동류의 느낌, 그리고 세상에 인간의 마음과 삶을 표현해주는 예술이 있어서 고맙고, 그것을 얼마간이라도 알아듣겠는 내가 다행스럽고, 온통 붉그죽죽했던 불안 지수가 주황 정도로 내려가는 안도의 느낌을 한 번에 가질 수 있다.
2. [비마이너]의 ‘강혜민’ 편집장님이 인쇄물 견적을 의뢰할 때만 해도 이 건은 그저 일이었다. 규격은 미정이었고, 원고의 양은 정확하지 않았으며, 종이의 사양이나 이미지의 개수와 인쇄수량 등을 예산 안에서 맞춰야한다 정도의 생각 속에, ‘비마이너의 재정이 괜찮지 않을 텐데.’ 라는 짐작이 있었을 뿐이었다.
확정 원고가 들어오고 편집을 시작할 때쯤에는 약간 신경 쓰이는 일로 바뀌긴 했어도 제작이 늘어져서 420을 넘기지 않도록 일정 조율을 하는 게 중요했고 청구가를 조금 낮추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생각에서 나와 나의 일(책)은 같지 않았었다. 막판에 배송에 차질이 생겨 퀵서비스 기사님이 노발대발 하는 일이 생겼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눔과 나눔’에 여러 차례 연락을 했을 뿐이었달까.
표지가 아쉬웠다. 그것은 원고나 편집디자인에 있지 않고 내 탓이었다. 종이는 조금 더 두꺼웠어야 했고 후가공을 더 고려했어야 했 다. 아니, 이 모든 것은 핑계일 뿐, 원고를 더 일찍 꼼꼼하게 읽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조금 더 방법을 찾지 않았던 일에 대한 나의 관성과 방심이 아쉽고, 건드리면 아플까봐 원고 읽기를 미루면서 피했던 망설인 시간이 아쉽고, 이토록 좋은 글들을 숱하게 지나쳐 온 나의 흐린 시야가 아쉬웠다.
이 책 안에, 잠 못 드는 밤을 통과하던 내가 있고, 영화 스틸라이프의 존 메이와 등장 인물 들이 있고 오늘과 지금을 사는 우리가 외롭게 존재한다는 걸 더 일찍 알 수 있었다면 다만 며칠이라도 조금 더 온화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라면서, 읽던 책을 덮은 채 오래 앉아서, 허허벌판을 꾸준히 지켜 온 [나눔과 나눔]과 신중하고 사려 깊은 글을 써 준 [비마이너]에게 마음을 다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 하지만 ‘애도 되지 못한 슬픔, 처리되는 죽음- 2018 무연고사 실태 리포트’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덧붙임 1. 본인이 편집디자인을 하고도 420 행사에 참여해 돈을 내고 책을 구입한 디자이너 ‘진실로’에게 고맙다고 말할 기회를 지나쳤다.
더붙임 2. 부족해서 부끄럽지만 제작은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