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자립 욕구 공유회 참관 후기
김수연
노들야학 신임교사 교육 중
지난 3월 6일(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하 노들센터)는 <자립 욕구 공유회:나의 자립 욕구 재발견>을 열었습니다. 작년까지 사업설명회가 노들센터의 활동 방향 및 사업 소개와 질의응답으로 진행되었다면, 올해에는' 개인별 참여자의 욕구와 환경 등에 맞춰진 지원을 계획하고자' 본 행사가 마련되었습니다. 여행, 문화활동, 건강관리, 일상생활지원 이상 네 가지 주제에서 소외된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공유회는 노들센터 김필순 사무국장님의 진행과 박경석 고장 선생님의 인사말, 잇따라 신입활동가분들의 자기소개로 문을 열었습니다. 공유회는 올해 이루고 싶은 것들을 작성하고 각 모둠(여행, 문화활동, 건강관리, 일상생활지원)에서 한 명씩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동안 시설 속에서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까! 필자는 모두가 제각각 파란 하늘, 맛있는 음식 등 재잘재잘 꺼내어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시간을 예상했건만, 지지부진한 소통에 난항(!)을 겪으며 땀을 뻘뻘 흘리는 활동가들의 얼굴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수십 년 동안 어떤 선호와 경험을 축적해왔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한 시간이라는 짧은 동안에 그림판과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검색하여 알려주는 모습은 '자립 욕구 공유회'라기보다 '자립 욕구 맞추기' 대회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이는 길게는 수십 년이라는 오랜 시간 욕구를 가질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있음을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고 들을 것인지, 통약 불가능한 언어를 가진(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에 봉착하게 만들었습니다.
시설화된 삶 자체를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이런 욕구도 가질 수 있고, 그것은 당신의 권리라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2015년 인강원 국가인권 위원회의 직권조사 결과(인권침해와 회계부 정)에 따라 서울시와 도봉구가 폐쇄명령을 내렸음에도, ‘불순한 의도의 욕구조사를 반대한다’며 자식들의 욕구를 외면하려던 시설 거주자 부모들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피를 나눈 가족이 저버린, 지역사회 안에 마련되었어야 할 장애인의 자리를 활동가들과 활동지원사들은 바지런하게 닦고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의 눈동자에 설핏 비치는 호기심, 집중하지 못하고 탁자 주위를 빙빙 돌면서도 말간 얼굴에 뜬 해사함을 보니, 자신들의 욕구를 경청하고자 마련된 자리가 썩 마음에 들었던 듯합니다. 여전히 장애로 명명되는 '차이'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할지 혼란스럽지만, 비장애사회와 격리되어 살아온 장 애인에게 선호와 선택의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의 끈을 놓지 않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장애인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곁을 내주기 위해 비장애사회를 비장애-장애 경계를 넘어 살 만한 곳으로 가꾸기 위한 노력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인사말에서 박경석 고장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욕구란 매일, 상황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 형식적으로 자립했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자립이 무엇인지 같이 나누고 풀어보자."
시설 속에서 응고된 과거의 삶을 현재(present) 흐르는 시간과 함께 쪼개어, 매일 변하는 '욕구'와 마음을 들여다보고 살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 미래의 꿈을 함께 그려 가는 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 를 포기하지 않는 노들이라는 공간에 오면 마음이 풀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때 사람들과 꿈꾸며 주고 받은 온기는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는 추억으로 남겠지요. 어쩌면 그 추억을 켜켜이 쌓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잘 가닿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