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들 책꽂이 ]
만일 이 목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면
리뷰 『묵묵』, 고병권 지음. 돌베개, 2018
장혜영
도무지 알 수 없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고자 노력하는 유튜버 ‘생각 많은 둘째언니’.
무사히 평범한 할머니가 되고자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중.
너무 밝은 빛에 눈이 익숙해진 사람은 어둠의 윤곽을 알지 못한다. 깊은 밤에도 도시의 불빛에 휩싸여 사는 사람은 하늘에 뜬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타오르는 희망의 횃불을 바라보며 걷는 이들에게 횃불이 밝히는 반경의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시간이 지나 횃불이 다 타버리고 아직 아침이 오지 않았을 때, 영원처럼 느껴지 는 어둠과 정적 속에 선 사람은 어디로 걸어야 할까.
“희망이 희망으로만 남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사람들은 누렇게 변색된 그 두 글자를 절망이라고 읽는다”고 말하는 고병권의 『묵묵』은 절망의 자리에서 시 작된 ‘희망 없는’ 글들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색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무서운 침묵과 캄캄한 어둠, 누군가 있다가 떠나간 빈자리가 스산하게 남아있을까?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며 질끈 감았던 눈을 조금 씩 다시 떠 보면, 두려움에 틀어막은 귀를 다시 기울이면, 침묵에도 목소리가 있고 어둠 속에는 묵묵히 함께 걷는 이가 있으며 누군가 떠나간 빈자리는 ‘비어 있는’ 형태로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희망으로 부풀다 절망으로 꺼진 자리,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텅 빈 자리와 텅 빈 말이 있었다”고, 저자는 묵묵히 쓴다.
『묵묵』은 텅 빈 말과 자리를 발견한 저자가 그 시간의 흐름을 따르며 써낸 침묵과 부재의 견문록이다. 2008년부터 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 교사가 된 저자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노들에서의 첫 수업, 게다가 텍스트는 니체. 학생들의 침묵 속에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허공에 소리 좀 지르 다가, 철학 수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철학자는 두 번째 시간에 학생 ‘피터’의 “야 이 거 골 때리네!”라는 외침에 구원을 받는다. 앎이 삶을 구원할 거라고 강의하던 철학자는 어느새 오랜 시간을 시설에서 보내다 이제 막 탈시설해 사회로 돌아온 발달장애인 여성에게 “철학자에게도 삶이 앎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며 철학자는 철학의 시조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듣지 못함’을 상대방의 ‘말하지 못함’으로 교묘히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생각은 하나의 시선이 되고, 시선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노들야학의 창문을 넘어 광화문 지하의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장으 로, 콜트콜텍에서 부당하게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의 농성장으로, 세월호 참사의 추모 공간으로, 퀴어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광장으로, 선감학원에서 살아 돌아온 한때는 아이들이었던 사람들의 증언대회로, 이 사회 곳곳의 장애인수용시설로,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진 강아지에게로, 그리고 종국에는 우리들 “영혼의 밑바닥에 심어져 있는 인식의 나무” 를 불안하게 흔드는 바람에게로 향한다. 그 나무가 자라나기 위해 힘껏 빨아들였던 강물에 누군가 귀를 씻으며 흘려보낸, 소수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배제의 언어가 녹아있을지 모른 다는 것을 경계하면서.
침묵을 채우는 언어에 귀 기울이고 부재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 철학자의 시선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거침이 없다. 『묵묵』의 세계 에서 삶은 변치 않는 북극성을 따라가는 희망 찬 항해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바꾸어내며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이고, 죽은 듯이 살았던 이들에게는 죽어서도 아직 “살지 않았으므로 죽을 수 없” 는 것이다. 그렇게 1,830일이고 4,000일이고 반복되는 오늘을 버텨 기어코 내일을 초래하 는 것이다.
『묵묵』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은 책과 세상을 함께 읽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먼저 묵묵히 걸었던 이들의 삶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도착했다. 콜텍 노동자들이 투쟁 4,464일 만에 사측으로부터 정리해고 ‘유감 표명’과 ‘명예복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노동자들이 원한 것은 ‘사과’와 ‘위로금’이었지만 사측이 준비한 것은 ‘깊은 유감’과 ‘합의금’이 었다. 이제 6개월의 복직 대신 30일의 명예복직이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 젊은 사람들은 지금 같은 세계에서 안 살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임재춘 조합원의 말은 영원한 오늘을 바로잡아 기어코 내일을 불러온 초연한 삶의 언어이다.
콜텍만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듣지 않으려는 이들에 의해 목소리 없는 존재로 치부되었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끈질기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선 거리와 계단, 학교와 병 원, 일터와 식당과 버스 안에, 모니터와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 울려 퍼지고 있다. 만일 이 목소리들이 잘 들리지 않는다면, 빈자리에 깃들어 살아가는 죽은 이의 살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묵묵』을 손에 펴들 때다. 아무데서 나 읽기 시작해도 좋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시간 아무 곳에서나 시작되어 아무 곳에서나 끝나버리듯이.
“희망으로 부풀다
절망으로 꺼진 자리,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텅 빈 자리와
텅 빈 말이 있었다”고,
저자는 묵묵히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