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동네 한 바퀴] 노동건강연대 그리고 정우준 / 김유미

by superv posted Aug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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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한 바퀴 ]

노동건강연대 그리고 정우준

 

김유미

일상 대부분의 커피와 밥을 노들에서 해결하는 사람. 야학에서 수학 2반 수업을 맡고 있다. 이번 학기 목표는 구구단 2, 5!

<노들바람> 원고를 남들보다 먼저 읽으며 키득거리고 훌쩍이는 시간을 좋아한다.

 

 

교복을 입고 큰 뿔테 안경을 낀 고등학생을 마로니에공원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기억이 난다. 시사주간지를 챙겨 읽는 학생이었고, 당시 야학이 있던 정립회관 근처에 산다고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야학 신임교사에 지원했다. 아주 일찌감치 이런 삶을 알고, 선택하는 사람이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것 같다.

십년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우준은 노동건강연대에서 활동한다. 야학에 회의하러 오거나, 집회 물품을 빌리러 오기도 한다. 지난 겨울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안전한 노동을 고민하는 활동가 우준을 종종 만났고, 반가웠다. 우준을 사이에 두고 노들과 노동건강연대가 함께 나눠볼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이번 동네 한 바퀴에서는 야학 교사 우준과 노동건강연대의 활동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jpg

 

  우준 선생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정우준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야학 교사였고. 아마도 임용시기(?) 기준 야학 최연소 교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금은 노동건강연대라는 곳에서 1년 반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야학이랑은, 수능이 끝난 200711월에 왔으니 벌써 12년째 인연이네 요. 물론 중간에 잦은 휴직을 했고, 최근에는 뜨문뜨문 가다보니 유리빌딩에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상황입니다.

 

  우준 선생님이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왜 노들에 안 오고

노동건강연대에 갔어요? ㅎㅎ

 

물론 생각은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야학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교사들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제가 그 정도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이 많았던 거 같아요. 중요한 건 야학 상근자가 무척 빡세자나요^^ 물론 알고 보니 여기도 빡세다라는 사실.

지금 일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는 대학원 실습을 구하다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당시에 삼성 핸드폰을 만들던 청년노동자 6명이 메탄올에 의해 급성 실명된 사고가 있었고, 노동건강연대는 이분들에게 시각장애인으로서 살 아가는 것 등등을 지원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사회복지를 전공한 대학원생이 실습처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제가 가게 된 거죠. 그렇게 노동건강연대에서 실습을 하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게 야학에 서 같이 술 먹던 교사들의 꼬심 때문이었으니 결과적으로 야학 때문에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게 된 셈인 거죠?

여담으로 제가 노들야학에서 활동했다고 하면 여기 사람들도 그런 과격한 데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야학 소문이 무시무시하게 나있어서 활동하기 좀 편한 것도 있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지

좀 더 소개해주세요.

우준 선생님은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노동건강연대는 1988년 생긴 노동과건강연구회를 전신으로 2001년에 생긴 단체입니 다. 주로 노동자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의사, 법률가, 노동조합 활동가, 시민들이 주축 회원입 니다.하는 일은 이름처럼 노동자건강과 관련 된 활동입니다. 특히 하청노동자, 여성노동자, 알바 등과 같이 불안정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 예전부터 산업재해로 노동자를 사망하게 한 것이 기업의 책임이라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산재사고를 일으킨 기업을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기업살인법’(기업처벌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3명이서 일하는 작은 단체다보니 이런 저런 일을 다 하는 편이지만 주로 장례식장을 찾아서 산재사망 유가족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 사망사고가 난 기업을 검찰에 고발하고 기자회견하는 일 등을 주로 합니다. 영수증도 풀로 붙이구요. 장점이라면 1년에 2400명 정도가 산재로 사망하기 때문에(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입니다!) 태안, 울산, 대전, 인천, 안산, 부천, 수원 등 전국을 다닐 수 있다는..

 

  작년 겨울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님 사 고가 있은 후,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우준 선생님을 마주친 적이 있어요. 사고 이후 산업안전법 개정하고 또 여러 가 지 대책이 마련된 줄 알았는데요. 최근에도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뉴스를 봤어요.

김용균 님 사고 이후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게 여전히 부족한지 궁금해요.

 

  제가 하는 일이 대부분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입니다. 접하는 죽음마다 엄청난 사연이 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좀 더 담기는 죽음들이 있습니다. 김용균씨 사고가 딱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알려진 후부터 태안을 오갔고 저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도 들었구요. 김용균씨 이후 왜 부족한가는 장애등급제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가 폐지돼서 개선된 줄 알지만 그건 가짜잖아요. 마찬 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었는데 실상 알맹이는 많이 개선되지 않았어요. 김용 균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가짜 김용균법이죠. 달라진 거라면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법을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된 정도?

 

사실 걱정거리가 더 많습니다. 올해 들어 산재사망은 더 늘고 있습니다. 김용균씨처럼 안전한 상황에서 일하지 못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지 않아서죠. 노동건강연대는 한 명의 목 숨값이 400만원이라고 합니다. 노동자 한 명이 사망할 때 보통 기업이 400만원의 벌금형을 받기 때문이죠. 이런데 누가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투자를 하겠습니까. 특히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한테는 더욱 더 안하는 상황입니다. 위험하니까 안전하게 만들면 되잖아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인 거죠. 원래 위험하지 않은 일도 제대로 된 장비와 휴식을 주지 않아서 위험하게 만드는 사회니.

 

노동건강연대에서 일하면서

노들을 떠올린 적이 있나요?

 

산재노동자와 장애인은 장애와 장해(산재보험상 장애의 개념)라는 다른 이름처럼 제법 거리가 있죠. 물론 산재장애인이라는 범주도 있지만 공통점은 같이 장애등록을 한다는 점 정도인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둘 모두, 사실 사회가 만든 차별로 인해 손상 받은 몸으로 치부되고 노동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배제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한 점이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장애인, 일하다 다친 노동자처럼 손상당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와 노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야학도 죽음이란 단어와 멀지 않잖아요. 일하는 곳은 달라도 어느 시기가 되면 서로 비슷한 사람 을 떠올리게 되는 거 같아요.

둘 다 추상적이죠? 좀 더 직접적인 연관성 이라면 지금 노들센터에 산재노동자를 오랫동안 지원하신 분이 일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정도면 둘 간의 연관성이 있는 거겠죠?

 

  야학 수업은 언제 다시

할 예정인지

궁금해요.

 

  늘 마음에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고향에 자주들 가시진 않죠? 저도 그렇습니다. 지난 학기 해보니 불확실성이 큰 저로서는 한 주에 하루를 빼는 것도 쉽지 않더라구요. 당분간 집회나 후원주점을 열심히 가면서 얼굴을 안 까먹게 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으려구요. 물론 420집회 못갔습니다.

 

  노들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세요.

 

  노란들판에 처음 왔을 때 한 번 글 써본 거 같은데 10년이 지나서 두 번째 이야기가 실리는 거 같네요. 10년 뒤에도 야학 후원회원이자 교사로 다시 글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투쟁과 생활로 고생하는 여러 노들 단위의 구성원들 그리고 노들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 모두에게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네요.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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