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는다’는 것은…….
장선정 | 노란들판
남동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1월 새벽이었는데, 이 추운 아침에 도대체 누구냐며 전화를 받았다가 통화 중간에 휴대폰을 던져 버렸어요.
사실이 머리에 다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즉시 행동을 해야 하는 막막하고 외로운 상태에서 가진 돈으로 택시비를 낼 수 있을지 걱정하며 시경계선을 넘었고, 이어서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 조사를 받고, 타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사망 진단서를 받아 화장해서 집으로 데려 갔어요.
유난한 아들이었고 살가운 남매 사이도 아니었건만, 후로 꽤 긴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 했어요. 잠을 자지 못 했고 술과 약이 필요했으며 아직 아기였던 아이와 직장은 번번이 방치 되었죠. 이렇게 쓰고 있지만 실은 그 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게 15년쯤 전이에요.
지금은 그런대로 그만하게 살고 있어요.
누군가 형제가 어떻게 되느냐 물으면 ‘과거를 말해야 하나 현재를 말해야 하나.’ 망설이고 어쩌다 비슷한 사람을 보게 되면 몰래 몇 번 다시 보는 정도죠.
슬프다기보단, 삶의 어떤 순간과 과정이 쓸쓸하고, 사진처럼 찍혀 저장되어 있는 기억들이 통제를 벗어나 떠오르고 돌아다니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달까 그래요.
원래는,
아주 조심스럽지만 ‘세월호’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었어요.
봄이면 5년이 되잖아요.
‘기억하겠다’는 말은 ‘언제나’가 아니라 ‘어쩌다’인 것 같을 때가 있고,
‘잊지 않겠다’는 말도 항상성에서는 비껴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러다
누군가나 어디선가에서 시간이 흘렀다고, 정권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고 되돌릴 수도 없으니까 ‘이제 털어내 봐야지’라고 할까봐 지레 겁이 났어요.
며칠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쿠르스크’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런 영화를 개봉 하는구나 그래도 되는 걸까 마음이 무거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갈수록 모르겠는 마음이 들어요.
어떤 작가는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고통의 이유를 찾는 것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썼는데 저도 모르게 아마 그 말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어요.
제가 닿지 못 했던 심연의 무언가에 대해 알고 이해한다고 하려는 건 아니고 ‘괜찮을 때도 되었다’거나 ‘산 사람은 살 궁리를 해야지’라는 말은 적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요. 이 말이 하고 싶었나봐요.
마음을 이렇다하게 설명할 순 없어도,
가방과 필통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이 낡아지면 새로 바꿔 달고
차 뒤편에 붙여 놓은 노란 리본도 때 타면 다시 붙이면서
해마다 4월이 오면,
라일락이 피면,
해사하게 부풀어 오르는 고운 봄이 오면 생각하려고요.
그냥 생각하고 싶어요.
모두 말로 할 순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