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118호 - 증명사진 *박정숙

by 노들 posted Mar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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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 

 

박정숙 | 노들장애인야학 한소리반 학생이고, 노란들판 활동지원사교육기관 활동가입니다.

 

 

사진은 추억이라고 한다. 

나는 평상시에는 셀카도 잘 안 찍는다.

사진 속에 나는 늘 어색하고 멋쩍어 보여서 볼 때마다 맘이 불편했었기에 내 모습을 찍는 것보다 주위에 풍경이나 하늘 찍는 것을 즐겨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SNS 프로필로 쓸 만한 사진을 고르기도 쉽지 않아서 잘 바꾸지 않는다.

여행을 가거나 동네에서도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추억이라고 할 만한 사진이 없었다. 노들야학에 오면서 모꼬지를 가고 단합대회를 가고 하면서 내 앨범에 사진 한 장씩 남기기 시작했다.첫 번째로 갔던 모꼬지에서 50여년을 살아온 시간들을 따지면 제일 사진을 많이 찍었다.사진을 보며 알았다. 웃는 모습이 참 근사하구나, 그리고 또 알았다. 옆에서 함께 웃어준 친구가 있어서라는 것도. 지금은 내 마음에 내 앨범에 항상 미소 짓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던 내가 앨범을 넘겨볼 수 있게 됐다. 사진이 어색해 보이는 만큼 웃음을 주는 추억이고 그것이 나였다. 멋쩍지만 이런 나를 인정하며, 늙어가는 것이 드러나는 사진도 이젠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노들 안에서 사진을 찍거나 찍히거나, 더 많이 내 마음과 앨범에 저장하고 싶어졌다.이렇게 사진은 나에게 많은 의미로 다가오고 품어지고 때론 버려진다.

 

2018년 여름, 야학에서 원하는 학생들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따로 증명사진이 없었기에 아주 신나는 이벤트라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사진 찍기까지 과정에는 수고하는 많은 손길들이 있었다.

 

박정숙 증명사진

 

야학 선생님이 여러 가지 화장품과 도구들을 싸오시고 머리를 고대기로 예쁘게 말아주고, 평소에 거의 하지 않는 화장도 예쁘게 해주셨다. 생각할수록 그 시간이 행복하다. 야학 선생님들과 친구들,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 야단이 났다. 예쁘다고, 무슨 일 있냐고 거울에 비친 화장한 얼굴이 다른 사람 같았지만, 젊어 보이고 예쁘고 기분이 좋았다. 

 

사실 나는 사진관에 가 본 적이 거의 없다. 휠체어나 전동스쿠터를 타고 있는 장애인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진관은 2층에 있거나 계단이 하나둘 있고, 문이 좁은 곳이 많다. 물론 지금은 대형으로 하는 곳도 있긴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 들어간다 해도 원하는 포즈를 취한다거나 휠체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워 사진 찍기를 포기하는 것이 더 쉽다. 

 

그래서 증명사진이 필요하면 집 벽에 붙어 앉아서 찍고 잘라서 쓰곤 했다. 규격에 맞게 예쁘게 만들기는 정말 어려웠다. 이제 얼굴에 늙음이 보이고 웃음에 주름이 가득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하루라도 젊은 지금 영정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어느 사진관을 가야 할까 검색하고 문의해보면, 너무 비싸거나 접근성이 안 되거나 이지가지로 걸리는 것이 많아서 고심하던 차에 야학에서 증명사진 찍어준다고 하니 정말 고마웠고 신났다.

잘 찍어서 영정으로 쓰면 오늘 일을 기억하는 이들이 웃으며 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아주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이런 즐거운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분들의 마음과 손길과 시간을 모아 행복한 시간을 추억으로 갖게 되어 감사하다. 이제 내 나이가 이곳에 머물 시간을 계산해야 할 만큼이 되었다. 2018년에 남긴 증명사진 속에 멋쩍은 웃음이 옅어져 자연스럽게 웃어질 때까지 매년 증명사진을 찍어 두어야겠다. 내 영정을 고를 때 고민하며 추억하며 웃게 해야겠다.

맘먹었고 실행할 예정이다.  

 

화장은 하지 않아도 머리는 미장원에 가서 예쁘게 할 참이다. 그리고 야학 복도 벽을 배경으로 선생님한테 찍어 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누군가 만들어주는 포즈 말고 내가 만든 포즈로 찍는 증명사진을 저장하고 싶다. 꼭 반듯하지 않아도 구도에 맞지 않아도 되는 나를 남기고 싶다. 꼭 사진관이나 블루 스크린 앞에서가 아닌 야학 교실에서, 모꼬지에서, 투쟁현장에서 찍혀지는 사진들이 나의 영정으로 추억될 증명사진이 되었으면 좋겠다.2019년에 다시 하는 내 멋대로 찍는 증명사진 이벤트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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