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타인의 고통, 구체적 사랑 ‘당신은 괜찮은지.....’ 장선정

by (사)노들 posted Nov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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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구체적 사랑 ‘당신은 괜찮은지.....’

 

장선정│사회적기업 노란들판

 

 

느닷없이 ‘젖’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면, (19금 아님....^^) 임신 중에 말도 못 하게 체중이 늘었다가, 출산 후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저절로 살이 빠졌다면서 핼쓱한 얼굴로 등장하는 여자 연예인들이 많지만, 사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일단, 아이를 낳자마자 내가 포유류임을 인정해야 하는 놀라움을 시작으로, 초기에는 하도 자주 먹여야 하니까 그냥 윗도리는 반탈의 상태로 있는 게 오히려 편하고, 젖을 만들기 위해 국이든 무엇이든 액체류를 계속 먹어줘야 하고, 젖몸살이라도 오게 되면 마음 속 깊이 간직했던 각종 거친 단어를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와요.

 

모유수유를 길게 해서 아이에게 이가 나기 시작하면 더 큰 재앙이 오는데, 잇몸이 간지러운 아이는 젖꼭지를 깨물고, 상처가 나도 젖을 계속 먹이려면 항생제나 연고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까인 상처가 계속 까이면서 신체의 한 부위에서 젖과 피와 혈장을 동시에 목격하는, 그러니까 내 몸에서 나는 각종 체액이 함께 난무하는 기이한 순간을 맞기도 하죠. 그 뿐이 아니라, 갓난아이가 대략 돌이 될 때까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건 ‘1인 집중 체제’ 안에서 충실하게 헌신하며 사는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요.

 

지금은 커다랗고 냄새나는 중2가 되었지만, 오래 전, 큰 아이는 기는 것도,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늦어서 주변 어르신들에게 국가존폐에 버금가는 근심거리였어요. 여러 상황과 사람이, 15개월이 넘도록 걷지 않는 아이를 태평하게 두지 않았었죠. 그러다 어느 날, 소파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 얼굴을 건드리는 느낌에 깨 보니 아이가 두 발로 서서 외계어를 중얼거리며 감히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있었어요. ‘저 좀 보시죠?' 하는 얼굴로요.


흔들흔들하는 아이의 다리를 보니 비몽사몽간에도 속이 뭉클하면서 ‘너도 크느라 꽤 애쓰는구나.’ 하는 연결의 느낌이랄까, 이 기억은 지금부터 영원히 이 아이와 나의 둘 만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보면, 아마 그것이 제가 느낀 최초의 현실적 모성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좀 사는 집 좀 노는 아들로 어지간히 속을 썩이다가 급기야 행글라이더를 달고 추락해서 척추를 다치고, 뭘 잘 했다고 몇 년이나 방구석에 틀어박혀 시들시들하던 아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살아서는 다시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의 다리를 매일같이 주무르던 어머니의 ‘구체적 사랑’ 때문이었다고, 故신지균 여사님의 추모사에 박경석은 적었죠.…

 

그 후로 한 동안 ‘구체적 사랑’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 말엔 명단에서 빠졌던 중요 손님 같은, 아니 어쩌면 진작 알았어야 할 주인을 이제 발견한 것 같은 새삼스런 타격감이 있었어요. (음.....바꿔 말해보고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무슨 일은 일어나죠. 일상다반사는 하루도 빈틈없이 엄중하고, 내 곁의 문제는 단 한 순간도 내게 가볍지 않아요.


조금 더 도덕적으로 살고자 한다거나 조금 더 민주적인 조직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중에도 우리의 인간성은 계속 시험에 들고 내 안의 갈등은 늘 뜨거워서 종종 분리 된 자아를 발견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좀 더 나은 세상에선 나도 좀 더 나아지긴 하는 건지 긴가민가하는 순간마저 있어요. 우리가 진심을 다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도 실상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서 절대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어요. 고통은 나누어지지 않죠.

 

뭐라고 항변하고 싶어 가슴이 벌렁거려도 고통은, 온전히 그 한 몸과 정신에서 발생하고 이뤄지는 단독의 것으로 나눌 수 없어요. 그래서 이것은 어쩌면 다짐인 것 같아요. 내가 너의 고통을 나눌 수 없어도 곁에 있겠다는, 내가 너의 고통에 닿지 못하더라도 나아지기를 바라겠다는, 고통으로 네게 흐르는 피와 땀과 눈물을 닦아도 좋겠냐는, 다시 서지 못 하는 너의 다리를 매일같이 주무르는 ‘구체적 사랑’의 방법을 늘 마음에 두겠다는 스스로 하는 질문이자 답이기도 하고요. 밥은 먹었는지 감기는 좀 어떤지 속 썩이던 치통은 해결을 보았는지 이사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요즘 그럭저럭 지낼 만한지,

 

그래서 당신은 괜찮은지

 

오래 궁금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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