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116호 - 노들과 베델 -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공동체, 연구의 공동체 / 유기훈

by (사)노들 posted Nov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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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과 베델 -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공동체, 연구의 공동체

 

 

유기훈│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장애인야학에 입성하였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장애인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노들야학 세월만큼
우리들의 나이는 춤을 추고
공부하고 급식 먹고 투쟁하며
함께 노래 부르고
내 이름을 처음쓰고 내 일상을 물어주는
이곳에서 우리는요
나의 삶을 노래하네 나의 삶을 보낸다네

- 노들음악대, 「노란들판」 中

 


  신입교사라는 이름으로 노들이라는 공간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된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노들의 일상은 노래 「노란들판」의 가사처럼, “공부하고 급식 먹고 투쟁하며 함께 노래 부르는” 나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들에서의 하루하루로, ‘배움’과 ‘운동’을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움의 공동체이자 운동의 공동체인 노들. 이러한 노들에서의 6개월을 뒤로하고, 저는 야학의 방학 중 약 한달 간 일본 홋카이도 베델의 집에서 실습을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곳에서도 저를 처음 맞이해주는 것은 노래였고, 비슷하지만 또 다른 종류의 공동체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사자연구와 정체성 함께 쓰기 베델의집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신장애와 함께, ‘동료’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실천해온 공동체입니다.

 

환청이나 환시, 망상을 없애야할 대상으로 보기 보다는 그 자체를 인정하고 이런 환청과 환시, 망상을 지닌 존재로서 마을에서 동료와 어떻게 관계 맺을지를 고민하죠. 뿐만이 아닙니다. 환청을 ‘환청 씨’로, 망상을 ‘경험’으로 동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웃는 과정 속에서, 관계로 인해 꾸짖는 환청이 칭찬하는 환청으로 바뀌기도 하고 환청 씨와 친구가 되기도 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당사자 연구’가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마다 베델의 집에서는 20여 명의 당사자와 스태프, 당사자-스태프 들이 모두 화이트보드를 중심으로 둘러앉습니다. 그 곳에서 모두 ‘스스로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사자 연구 시간에 사토 씨는 “물 마시는 것을 멈출 수 없어 하루에 8개 페트병 분량의 물을 마시게 된다”는 이야기를 공유하였고, 이에 모두가 걱정과 웃음이 섞인 탄성을 지릅니다. 그 원인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끊임없이 환청 씨가 물을 마시라고 지시한다는 사토 씨의 대답이 이어지고, 사회자는 혹시 지금도 환청 씨가 있으신지, 있다면 여기 있는 모두 함께 환청 씨와 대화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대해 20명의 동료들이 사토 씨의 너무나 ‘개인적인’ 문제 혹은 ‘자아’의 문제 속으로 직접 들어가 토론하고 해결방식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갑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다시 당사자 연구 시간이 됩니다. 사토 씨는 동료들이 찾아준 대응방식에 대해 환청 씨와의 관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야기합니다. 동료들은 그러한 사토 씨의 노력에 대해 다시 응원하고 지지하며, 새로운 방향으로의 피드백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사토 씨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동료와 함께 써내려가는(Co-author) 작업이 됩니다.

 

배움의 공동체(夜學), 운동의 공동체(野學) 그리고 ‘연구의 공동체’이러한 베델에서의 경험은 제게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것은 노들에서 체험한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공동체’와는 또 다른, ‘연구의 공동체’였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전문가’로서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개인은, 자신의 개인적 문제를 오픈하고 곁에 있는 또 다른 ‘스스로에 대한 전문가들’과 함께 공동연구(Co-research)하며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갑니다.

 

공부도 아니고, 훈련도 아닌, ‘연구’라는 절묘한 이름하에 각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는 모두의 기억이 되고 선행연구(reference)가 되어 공동체성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공동연구’ 속에서 개인은 위로받고 안심하며,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도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습니다.

 

 

‘연구의 공동체’가 말해주는 것들

 

- 운동과 쓸쓸함에 대하여

 

‘노들’이라는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공동체에서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보내며, 이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처고, 관계의 장이며, 희망과 열정을 보여주는 장소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가끔은 이러한 ‘배움’과 ‘운동’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찬 전진의 그늘 속에, 개인 내면의 ‘슬픔’이나 개인의 ‘고뇌’는, ‘배움’에서도, ‘운동’에서도 말해지고 돌보아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420의 힘찬 투쟁, 그 북적거림 뒤에 집에 돌아와 느낄 개인의 쓸쓸함은 너무나 ‘개인적인’것이기에 우리의 ‘공적 투쟁’ 속에서 다루어질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개인의 쓸쓸함’이 공동의 연대 내에 자리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베델이라는 ‘연구의 공동체’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델에서 쓸쓸함을 공유하는 방식은, 개인의 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일상적 행위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쓸쓸함은 그 개인의 ‘연구’뿐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진행하는 각자의 ‘연구들’ 속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들어오고 얽히며, 서로를 응원하는 어떠한 ‘마음의 연대’ 혹은 ‘약함의 연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로써 베델은 (베델의집에서 발행한 한 책자의 이름처럼) 『안심하고 절망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연구의 공동체’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배움과 운동의 공동체’로 돌아오며, 문득 ‘배움의 공동체’, ‘운동의 공동체’라는 힘찬 전진이 주는 해방감과 함께, 그 뒤에 찾아오는 쓸쓸함이나 울적함 까지도 우리의 공동체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없이 약한 우리의 너무나 개인적인 마음들이 또 다른 ‘마음의 연대’, ‘약함의 연대’를 맺는다면, 우리는 보다 『안심하고 절망할 수』 있지 않을 런지요.

 

수업이 끝나고, 광화문에서 투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개인의 마음의 헛헛함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마음의 연대를 건넬 수 있을까요. 1970년대에 활약한 「푸른잔디회」라는 뇌성마비장애인 집단은 ‘사회활동을 하기 전에, 우선은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라’라고 말한답니다. 뇌성마비로 변형된 자신의 몸을 직시하라고. 그것이 끝나고나서 사회에 나가 운동하고, 그리고 다시 한 번 거울 앞에 섭니다. 그것을 반복하라고 합니다. 저의 이미지로서는 최근의 장애인운동은 거울 앞에 서는 쪽을 잊기 시작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사자운동이나 SST(사회기술훈련)처럼 세상을 바꾼다든지, 자기개혁을 해나간다든지 ‘바꿔서 더욱 가치가 있다’와 같은 부분은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것이 「푸른잔디회」 뒤에 등장한 80년대 이후의 자립생활운동의 대약진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마초 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바꿔서 더욱 가치가 있다’를 힘차게 끌고 나가다 보니, 어느 샌가 자신과 동료를 두고 가 버리거나 하는 경우가 있던 것입니다.1)

 

1. 石原孝二. (2013). 当事者研究の研究. 東京: 医学書院. 내에 수록된 「인터뷰 - 당사자연구가 생기기까지」 중 구마가이 교수의 발언에서 인용. 강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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