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로를 기어가는 몸들의 이야기
- 장애인용 오체투지? 육체투지? 장애투지?
2018년 4월 19일
딱 광화문 앞
전국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이 청와대를 향해 상소문을 올렸다. 그러곤 어느새 77명이라는 거대한 수의 사람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아스팔트 차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번 투쟁을 오체투지라고 불렀다. 2018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기획한 투쟁이었다. 올해도 우리는 여전히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외치며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다. 노란들판의 여러 활동가들이 이 투쟁에 참가했다. 도로를 막고, 도로를 온몸으로 기어 행진하는 이 오체투지의 의미를 다뤄보고 싶었다. 노란들판의 오체투지 참가자 박경석, 김명학, 김탄진, 김진석, 이형숙, 서기현 ... 처음엔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자 했었다. 하지만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므로, 일단 가장 바쁜 사람 둘만 먼저 섭외하기로 했다. 그러다 결국엔 어쩌다가 그 둘의 이야기만 듣게 되었다. 오체투지 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는 ‘비마이너’(www.beminor.com)에서 볼 수 있다.
일시 : 2018년 5월 24일 목요일 아침
참석 : 오체투지 참가자 박경석, 이형숙 / 편집위원 민아영, 김유미
정리 : 김유미 사진 : 정택용
유미 우리가 이 기어가는 투쟁을 한 게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동안은 기어가는 투쟁이라고 했었는데 이번엔 왜 오체투지가 되었을까?
경석 그냥 기어가는 투쟁이었는데, 기자 기자 하다가 누군가가 오체투지? 해서... 그리고 오체투지 책이 있잖아요. 일본인 그 사람 있잖아.
아영 그건 <오체불만족>. 오토다케.
경석 아. 오체불만족이구나. 아무튼 그래서 그냥 기어서 가서 ‘기는 투쟁’ 이렇게 하기보다 투쟁의 명칭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떤 고민이 있어서 오체투지가 나온 게 아니라 기는 투쟁이니까 오체투지네? 했죠. 그럼 오체투지가 뭐지? 환경 쪽에서도 오체투지 하고, 노동 쪽에서도 오체투지 하고... 삼보일배 하는 오체투지. 예전에 한 신부님도 환경 문제로 오체투지 해서 전국 돌면서 왔잖아요. 오.체.투.지. 불교 용어에서 전승된 거래요. 티벳 쪽에서.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이렇게 다섯 부분. 이 다섯 부분을 땅에다가 대는... 이게 불교적 의식이래요. 이런 건 비장애인식 오체투지고.
아영 우리는 다섯 부분이 아니고 온 몸을 땅에다 다 대던데요?
경석 아니지. 그건 보여지는 거고.
아영 우리는 계속 다 대면서... 우리야 말로 진짜 오체투지지.
형숙 온몸이야 온몸.
경석 아니 그건 당신들 해석이고.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그걸 땅에 대면서 가는 게 오체투지인 건데. 그럼 장애인들의 오체투지는 뭐냐?
형숙 우리는 육체투지였어. 대표님은 등까지 바닥에 다 대고.
경석 아니야. 오체투지가 아니라 온몸투지다. 몸체투지다. 이건 장애인용 오체투지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 비장애인들은 진짜 오체투지고. 그날 투쟁할 때 함께 연대한다고 외부에서 사람들이 왔잖아. 그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열심히 기니까 빛을 발하지 못했어.
아영 아... 했어?
경석 응 했어. 세 번 절하고 다했어요. 우리가 너무나 처절하게 오체투지를 하니까 잘 못 본 거지. 이제 오체투지의 기본은 이렇게 바뀔 거야. 기는 게 오체투지다. 이게 불교의 정신도 바꾸고. 세상도 바꿀 수 있는...
아영 불교에선 어떤 의미예요?
경석 자신의 몸을 낮추면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뜻이 바로 오체투지. 부처님께 가면서. 불교적으로 오체투지가 어떤 의미냐 하면, 부처님께 귀의한다고 하잖아. 귀의하면서 그 신에게 공경하는...
유미 지금 막 검색을 해서 이야기하고 계시네요. 하하하.
아영 환경운동에서 오체투지를 한다는 건 이해가 되는데, 인간으로서 자세를 낮추는 의미로. 근데 장애인투쟁에서 몸을 낮추고 그게... 저는 잘 ...
경석 너무 어렵게 하지마. 오체투지의 의미를 갖고 와서 한 거야. 환경운동에선 자연에 귀속한다, 자연에 공경을 뜻한다 그런 뜻이잖아. 우리는 그냥, 기는 거네? 어? 오체투지네? 이렇게 해서, 해석이 난무한 상황이야.
형숙 우리는 기어가기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전장연에서 오체투지 이렇게 이름을 붙였더라고. 요즘은 이렇게 오체투지라고 하나보다 하고 했던 거지. 특별하게 생각은 안 했어요. 기어가기지 우리가 뭐 오체투지야.
경석 기어가는 거야. 근데 그걸 장애인용 오체투지, 그렇게 하자는 거지.
아영 육체투지! 육체투지!
경석 육체투지 하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요.
형숙 용은 빼고 장애인 오체투지 이렇게 합시다.
경석 아이고.
아영 장애투지! 장애인용 투지.
경석 장애인용 오체투지!
형숙 박경석 대표님만 육체투지!
경석 설명을 한 건데 왜 나만 까!
형숙 까는 게 아니라 대표님이 제일 처절했어. 창조(그날의 활동지원사)가 정말 불쌍했어.
유미 굴리기.
유미 기는 게 공공장소에서, 대로에서 기는 거잖아요. 길 때 감정적인 부대낌 같은 건 없는지 궁금합니다. 형숙 대표님도 여러 번 기지 않았어요?
형숙 수원에서도 기었고. 원래 기어가기 하면은 내 수준에 맞는 기어가기를 해야 돼요. 내 수준에 맞는 건 앉아서 엉덩이로 기어가는 거예요. 근데 오체 투지를 계속 얘기하니까, 이번엔 엎드려서 기어야겠구나 싶었어요. 오체투지라니까 몸으로 해야 될 거 같잖아. 사람들이 나보고 왜 못하는데 엎어져서 갔냐, 다른 사람처럼 앉아서 기어야 하지 않느냐 했어요. 그래서 저는 ‘야 그건 오체투지가 아니다, 오체투지는 온몸으로 이렇게 해야되는 거 아니냐!’ 하면서 했거든요. 근데 해보니까 뭐 어차피 앉아서 기든 엎드려서 기든, 몸이 운동이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전에 앉아서 기는 것도 어깨에 힘이 없어서 아팠어요. 이번엔 엎드려서 하니까 내가 몸을 정말 못 가누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지 몰랐지. 엎드려서 하는 게 장난이 아니었어. 명학이형님 엄청 잘 기더라고요. 저는 명학형님이 앉아있을 때 되게 중증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는 거 보니까 저보다 낫더라고요. 하하하.
경석 누구? 나?
형숙 명학형님이요. 대표님은 이미 포기했어. 그렇게 못 할 줄 몰랐어.
아영 저도 오체투지 이게 정리가 잘 안 되다가. 실제로 하게 되면 이게 어떤 느낌일까? 장애운동을 하고 있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지원만 하지 그 상황을 못 겪어보잖아요. 이걸 어떻게 하면 생각해볼 수 있을까 고민했었거든요. 이게 어쨌든 휠체어에서 내려와서 자신의 몸을 다 드러내는 거잖아요. 제가 여성운동을 한다고 하면 제가 제 몸을 누드로 보여주는 그런 느낌하고 비슷한 거예요.
형숙 몰랐는데, 하다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이게 내 몸 다 보여주는 거구나. 좀만 잘못 하면 내 배 드러나지, 뭐 드러나지 그렇더라고.
아영 이게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해야 하나? 거기서부터 오는 감정들도 있을 거고. 또 너무 오래 기어보신 분들이라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형숙 대표님은 이번에 거의 처음이라고 했잖아. 나는 대표님은 이번에 왜 기었는지 모르겠어. 서울역이야 선전포고라고 했지만 이번엔 왜 기었어?
경석 한강대교 때는 나는 못 기었지. 아 그때 나는 집회하면 나를 딱 집어서 연행해가던 시절이었거든. 그때는 굉장히 탄압이 심해서 어떤 불법행동이 시작되면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 나를 잡아갔어. 나를 표적으로 잡아갔어. 박경석이만 잡으면 된다 그랬으니까.
형숙 지금도 그렇지 않아?
경석 지금은 안 잡아가잖아요. 연행 자체를 안 하잖아요. 요새는.
형숙 맞아. 벌금 때리지.
경석 전에는 나를 딱, 타겟으로 젤 먼저 연행해가던 시절이라서 한강대교 길 때는 토꼈지. 근데 지금은 왜 했냐. 연행 안 하니까 한 거지. 이제 경찰 소환하고, 조사 받으라고 하겠지. 이제 이런 방식의 탄압을 하는 거지. 예전에는 바로 현장에서 잡아서 48시간 살리고 조사하고 했는데, 요새는 채증해서 조사하고 이제는 경찰의 대응방식이 달라진 거지. 왜요?
유미 결국에는 안 잡혀가니까 기었다? 바로 안 잡혀가니까?
경석 꼭 안 잡혀가서 기었다가 아니라, 그때는 왜 안 기었냐고 하니까 그때는 그런 상황이 있었다. 지금은 안 잡혀 가는 것도 있지만. 이제 내가 언제 또 기겠어? 이제 나도 나이가 되고. 투쟁의 밑바닥 현장에선 벗어나서 이제 요양원으로 갈 시대가 되었으니 마지막의 마음으로.
형숙 잘하면 환갑 기념으로 한번 기겠네. 하긴 박명애 대표님은 환갑 넘었는데 기었어. 갑자기 슬퍼지네. 대표님 65세쯤이면...
경석 그래서 이 투쟁을, 여러분이 이 투쟁의 현장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들판에서서 외치는 목소리로서의 위치를 잘 선점해야 하는 거야. 세상은 점점 체제 내화되고 조금 더 나아질 거야. 근데 우리가 양 조금 늘리기 위한 투쟁이 아니잖아? 항상 양이 늘어날 때는 또다시 제도 밖으로 나오는 용기가 필요한 거야. 들판에 서다! 들판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다! 사회가 원이라고 치면, 옛날엔 다수의 장애인들이 다 변방에 있었어.
원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시설에 있었어. 근데 우리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원이 늘어난 거지. 그러면 이 세상이 이렇게 늘어나면 이만큼 확장된 것이 완성이냐? 아니다! 우리는 세상이 이렇게 될 때 또 바깥에 설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지. 진지가 원 안에 있다면 진지를, 원 밖으로 옮겨 나와야 되지. 원 밖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것이 언제 끝날 거냐? 중증장애인의 육체 자체가 자본의 속도를 거부한다! 이것을 너무 희화화 하거나 슬퍼하거나 그럴 게 아니다. 이 투쟁은 기쁨 슬픔 처절함이 녹아있는 종합적 예술이다. 이 종합적 예술은 바로 체제의 변화를 향한 중증장애인이 가진 무기다. 이들이 지식이 있어 뭐가 있어, 지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데. 기자고 하면 또 잘 기잖아.
형숙 못 기는 걸 잘한다?
경석 못 기는 것 같은데, 못 기니까 몸이 처절한 거고. 이 몸이 보여주는 게 자본주의의 속도와...
아영 그럼 행위예술을 계속 한 거야?
경석 그렇지. 이걸 행위예술로 표현할 수도 있고. 이게 바로 문화이고. 내 삶이 녹아있고 고통이 녹아있고. 표현이 있고 슬픔이 있고 투쟁이 있고 행복이 있고 외로움이 있고. 이런 것들이 문화예요.
형숙 사실 이걸 하면서 느꼈어요. 정말이에요.
유미 어떻게?
형숙 우리가 두 시간 넘게 있었잖아요. 이걸 진짜 느낀다고요. 열도 났다가 분노도 있었고.
경석 존재감을 느끼는 거지.
형숙 외로움도 느꼈고. 나는 언제 저기까지 가나. 박경석 대표님이 먼저 가면 안 되는데. 오기도 생기고.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경석 이런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투쟁을 통해서라도 세상의 변화를... 나의 존재감이 있다는 거예요.
형숙 앞에 이야기가 약간 사기성이 있는데, 사실 내가 그렇게 느꼈어. 정말 힘들고...
경석 그런 것들이 다 녹아있는... 저녁에 해가 딱 지더라고. 해가 딱 질 때 붉은 노을이 쏵 질 때... 이렇게 드러누운 사람이... 이런 마음을 느꼈어. 나는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막 고통이 다 끝나고 죽기 직전에, 이제 다 이뤘다 하면서 죽는 장면이 있어. 나도 수많은 투쟁을 했잖아. 청와대도 가고 철로도 내려가고. 나도 오체투지, 이 투쟁을 끝으로 아 이제 다 이뤘구나. 앞으로 이제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 투쟁을 통해서 하늘을 보면서 투쟁에 죽어갔던 열사들...
형숙 저것도 지나고 나서 느끼는 거지. 그 당시 진짜 그런 생각이 났어?
경석 노을을 보면서.
형숙 주변 사람들은 환장하겠는데.
아영 진짜 힘들었구나?
경석 그럴 수도 있고. 포만감일 수도 있고. 고통의 끝은 포만감. 나는 이 고통을 이겨내서 승리의 길로 간다. 이런 투쟁으로 동지들이 나와서 같이 가고 있구나. 이런 게 행복함이다. 잘 적어~
유미 행복감도 있었어요?
형숙 있었죠. 개인적으론 아휴. 그 놈의 오체투지 투쟁을 드디어 했구나!
경석 한번 생각해봐. 정명호 하고 그런 친구들을 생각 해봐. 그 친구들이 시설에 있으면 이런 투쟁을 할 수 있을 것 같애? 하지. 어디서 하냐? 방구석에서 하지.
유미 하루 종일 하지.
경석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렇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권력과의 투쟁에서 대한민국 한가운데 도로에 딱 누워서 하늘을 본다고 생각해봐. 얼마나 자존감이 넘치겠어. 기껏 집구석에 처박혀 누워있고, 시설에 처박혀서 누워 있어봐. 시설장 보면서 어~ 하고 있겠지. 아무도 안 알아주는. 이런 투쟁들, 자신의 몸을 통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보여주는 거야. 인간 승리의 길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투쟁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거. 이것들을 만드는 거, 이게 얼마나... 이걸 또 활동가들이 해야 돼. 이걸 놓치지 말자. 이건 단순히 싫다 좋다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연극이라고 생각해봐. 연극에서는 모든 걸 하잖아. 죽음도 있고, 죽음 속에서 슬프기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방구석을 기기도 하고. 그렇잖아? 그 드러눕는 것을 현실로 끌고 온 거야. 현실로 끌고 와서. 그리고 우리의 투쟁에서 다 할 수 있다는 걸, 판을 만드는 거야. 판을 기획한다는 것, 그것은 또 체제를 넘는 거야.
형숙 이게 1~20분이었다면 간단히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긴 시간이다 보니까 경찰 구두발을 보면 열 받고. 방패를 보면 마음이 이상하더라고. 거기에서 나는 정말 무기력하잖아. 거기서 할 게 뭐 있어. 기는 것 외에는. 바닥에서. 그래서 여러 생각이 났어. 화도 나다가 다양한 생각이 나더라고. 다른 사람도 나처럼 그랬을 것 같더라고.
경석 우리가 가진 건 진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는 몸뚱어리 하나, 경쟁에 쓸모없는 몸뚱어리 하나. 그걸 가지고 표현을 한 거지. 그것이 세상을 넓힐 수 있으면. 우리 뒤에 있는 싸우지 못하는 저 뒤에 혼자서 여전히 시혜와 동정으로 있는 사람의 마음에 투쟁의 불씨 하나 심을 수 있다면. (급 노래 시작) 민들레 꽃처럼 살아야 한다, 내가 가야 할 저~ ...
유미 근데 이게, 보는 사람들이 아직 훈련 혹은 생각이 안 따라오는 것 같은 게 있죠.
경석 불편하지?
유미 저만 해도 같이 있으면 슬프고 안 됐다는 느낌 계속 들고. 이거 몇 시간 하지? 불편해죽겠네 이런 생각 들고. 아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저는 가까운 동료들에 대한 마음일 수 있는데... 기어가는 장애인의 신체가 안 익숙한 것 같지만, 우리는 굉장히 잘 훈련돼 있어요. 저기 명동에 가면 하루 종일 기어서, 오체투지 육체투지 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맥락을 제거하고 형태만 보면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띄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이 사건을 해석하는 게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특히 이 사건을 경험하지도 않은 비장애인이 이 사건을 볼 때 다르게 볼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엄마가 이걸 볼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언론들은 이걸, 지금 이런 의미까지 담아서 해석할 수 있을까?
경석 적어도 JTBC나 오마이뉴스는 철학적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의미는 정확히 전달했지. 시혜적으로 나간 건 아니거든. 많은 사람이 여전히 그렇게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 투쟁을 못해야 하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비장애인의 불편한 시각 때문에 이것이 고려돼야 하는 사항이냐? 고려는 될 수 있어도 포기는 할 수 없는 투쟁이지 않느냐. 또 하나 기는 모습은 똑같다, 맞아. 명동에서 돈 벌기 위해서 기나, 여기서 이렇게 기나 똑같은 모습이지. 근데 관계의 문제가 있잖아. 똑같은 장면이더라도 관계 속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사람, 상황 속에서 의미가 달라진다. 명동에서, 지하철에서 기는 장면이 있을 거고, 문재인 대통령 만나겠다고 하면서 권리를 보장해라 하면서 기는 건, 사진으로 찍어놓으면 똑같애. 우리 걸 사진 찍어서 지하철에 옮겨놓으면 불쌍한 장애인이 되는 거지. 이런 익숙한 시각이 있겠지. 이건 장애인만의 문제냐?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어부예요. 물고기를 낚는 어부인데, 예수님이 베드로를 제자 삼을 때 뭐라고 했냐? 그냥 물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해서, 베드로는 위대한 성자가 됐지. 명동에서 기는 장애인이 물고기를 낚는 어부라면 우리는 이 투쟁을 통해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똑같은 직업이잖아. 나는 관계 속에서 그 장면은 달라질 거라고 보고. 더 본질적으로 가면 명동의 기는 장애인들이 물고기 낚는 어부였다면 우리는 이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었다! 라는 의미를 가지는 투쟁이었다!
형숙 우리 센터에서 평가를 했는데 다시는 못하게 해야겠다. 너무 힘들었다. 보기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아예 같이 하면 좋은데 자기는 할 수 없는 위치고 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아영 이게 약간... 일상 속에서 활동할 때 보통 비장애인 활동가와 장애인 활동가의 역할을 완전히 재배치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일상 활동에선 몸을 쓰는 일이 생기면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막 움직이잖아요. 근데 이 오체투지를 할 때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유미 없긴? 굴려야지. 잡아 땡기고.
경석 나는 이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고 할 일을 찾아보면 얼마나 많은데. 하나의 공정을 할 때 이 공정에 들어가는 수많은 과정이 있어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걸 통해서 무엇을 확장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우리가 이게 일상 속에서 훈련이 안 돼 있어. 사진 빨리 빨리 찍어가지고 막 올리고 친구한테도 보내고. 그런 걸 하자고 하는 건데. 꼭 기어야 돼? 아니잖아. 기는 게 같이 하는 건 아니거든. 근데 다른 때는 많이 하잖아. 행진도 있고, 사진 찍는 것도 있고 샤우팅도 있고. 수많은 그 하나의 기는 과정에서 참여를 할 수 있는데, 기지 못한다고 해서.
다음엔 이걸 못하게 해야 돼 라고 하는 건 좀. 굉장히 좀 더 이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이거를 밥 먹듯이 하자 이런 건 아니고. 필요할 때 이 투쟁도 쓸 수 있어야 하는 거지. 세상엔 물론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겠지. 우리가 진지를 가지고 세상을 넓혀 가는 것이, 어떤 운동적 단체보다 노란들판이 힘을 가지고 있고 장점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견뎌온 힘이다. 노란들판을 만들어온, 견뎌온 힘이 언제나 진지로서, 많은 사람이 들어오고 재생산되고 확장하고. 그래서 이 곳이 있으면 자본주의가 바뀌어갈 것이다. 노란들판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만들어간다...
유미 우리가 그날 몇 시간 기었죠?
형숙 두 시간 반.
유미 몸은 어땠어요?
경석 뭐 그렇죠. 힘들어. 척수장애는 척수 장애의 아픔이 있어. 형숙 소장님은 지체장애잖아. 지체장애는 껌 값이야.
형숙 나는 여기 팔이 다 까지고. 안 쓰던 근육을 써서 너무 아파가지고 눕지를 못 했어요. 누우면, 몸이 닿으면 너무 아픈 거야. 그래서 누웠다 앉았다 한 삼일을 그랬어요. 길 때 마지막에 몸에 감았던 거 다 풀고 나니까 너무 추운 거야. 그래서 내가 그동안 너무 운동을 안했구나 생각했어요. 그 정도 했다고 오한이 나더라고. 운동을 좀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투쟁하는 운동 말고 몸을 쓰는 운동. 대표님은 아마 어디 상처가? 거기 바닥이 유난히 깔끄럽더라고. 우리가 길 줄 알고 그렇게 해놨나? 대표님은 상처가 났을 것 같아.
유미 어떠셨어요?
경석 힘들었다 뭐 그런 건 기본이지. 기본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근데 나는 고통을 느낄 때...너무 아팠어... 어...? 일단 어깨가 안 올라가더라고. 엉덩이는 더 무거워진 것 같고. 나머지는 못 느끼니까. 못 느끼는 게 또 느끼는 사람에 대한 무감각의 고통이랄까. 무감각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형숙 땅에 끌리니까 피부가 다 빨갛게 돼있더라고. 대표님도 아마 그럴 거야.
유미 저는 어쨌든 이런 투쟁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투쟁은 맞는데, 굉장히 자학적인 형태인 느낌도 없지 않아서. 투쟁의 과정에서 그럴 수 있죠.
경석 그래 아프잖아~ 그지~ 아프니까 즐겁게 노래도 하고 문화도 하고 같이 하는 거잖아. 아니 뭐 안 아프고 해도 되지.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나는 그 것을 피하는 조건이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일 뿐이다. 나는 이것을 지금 선택하지만 이후 이 투쟁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선물을 나눌 수 있다. 리프트에서 안 떨어져 죽어도 되고.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활동보조를 24시간 만들고. 시설에서 나오게 하고. 등급제를 제대로 폐지해서 개인의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자. 이 선물들을 엄청나게 갖고 있는 고통이라면 당당하게 갈 수 있는 힘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 길을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허허. 왜? (양쪽 옆 사람 손을 잡는다) 물론 단식하고 나도 삭발하는 거 싫어. 단식이 더 좋아.
유미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
형숙 저는 뭐 이래저래 했지만. 항상 전장연 활동 비택들이 즐겁고 재밌다. 항상 기대가 된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이 기대가 되고 즐겁고.
유미 저랑 많이 다르시네요.
형숙 어떤데?
경석 이제 지겹겠지?
유미 지겹다기보다는 무서워요. 무섭고 걱정되고 겁나고...
아영 하하. 모르겠어요. 어쩔 수 없는, 스케일의 남다름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멋있기도 한데...
유미 감당이 안 되지?
아영 아이고. 그래서 투쟁 한번하고 집에 오면 연극 끝나고 나서 허한 기분 알죠? 뭔가 굴 속에 앉아 있는 느낌 들 때가 있어요.
형숙 만약 잘 안 됐으면 억울하고 분하고. 우리가 계획한 만큼 돼야 하는데, 안 되면 뭐가 잘못이었나 자책하게 되고... 대표님은 어떠세요?
경석 내가 투쟁하면서 느낀 거를... 내가 아침에 써왔지. 크. 이 투쟁이라는 것들이... 특히 장애인, 비장애인, 가난한 사람들,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사랑 같애. 그 연결의 사랑이 바로. 누가 끊을 수 있겠어? 그거 끊기면 죽는 거야. 그런 투쟁의 길 함께 갑시다. 빨리 손 잡으세요. 창조야 사진 좀 찍어라.
창조 하나 둘 셋~
경석 투쟁의 끈을 놓지 말자!
유미 아영아 왜 답이 없어. 대답해야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