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싯돌> 그리고 다시 박경석
장선정 │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제가 자꾸만 ‘그 때를 아십니까?’류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이번도 같아요. 노들바람 이 전에 <부싯돌>이라는 야학 소식지가 있었어요. 저에게 7, 8, 9,1 0호가 있는데 소식지가 거의 무크지처럼 나올 때라 97년 8월부터 99년 3월까지의 소식이에요. 그 때나 지금이나 편집위원들이 원고 모으는 데 긴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도 같고, 김명학이 노들인들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같고, 박경석이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것도 같아요. (하하. 정말이에요. 20년 세월이 무색하죠.)
지금 노란들판에서 저와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안 믿을 것 같은데, 그 시절 <부싯돌>은 편집 디자인을 제가 했어요. 편집을 직접 하면 제작비가 크게 내려간다고 해서 매킨토시에서 구동되던 ‘쿽’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워서 꽤 열심히 했었죠. (궁금하시죠? ^^ 심지어 8호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표지를 컬러인쇄를 했네요. 절대 보여드리지 않겠어요.)
<부싯돌>을 다시 읽으면서 저는, 순수하게 몰입하는 사람을 계산하거나 망설이는 사람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이어서 박경석을 생각했죠. 지금은 마땅하다는 듯 수많은 이름이 찍히는 소식지 뒷면의 후원인 명단이지만 <부싯돌> 7호의 후원은 딱 두 곳이에요. 것도 맨날마다 쳐들어가다시피 방문하던 단골 밥집 사장님이 포함되어 있어요. 아마, 7호를 찍고 98년부터 지로 후원모집을 시작했지 싶은데 8호쯤에서 40명이 되었다가 10호에는 거의 100명 가까이로 늘었더라고요.
짐작하시듯 후원인 명부를 늘어나게 한 가장 큰...... (뭐라고 해야 하나) 가장 강력한 이유는 ‘박경석의 뻔뻔함(이라 쓰고 절실함이라고 이해할까요?)’이에요. 편집을 제가 했다고 했잖아요. 10호에 있는 후원인의 명단을 보면 ‘박경석의 첫사랑’(몹시 가슴 아프게 헤어졌다는) ‘박경석의 큰 형, 작은 형, 큰 누나, 여동생’, ‘박경석의 동창들‘ 그리고 막 사회에 나갔지만 아직 낮은데서 박박 기고 있던 퇴임교사들이 대다수예요. 그 모든 이름들이 한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딱히 칭찬을 하려고 이러는 것도 아니에요. 박경석은 이제 사회단체들 속에선 꽤 이름 있는 사람이 되었고, 아마 종로경찰서에서도 제법 주목하고 있을 거고, 맨날 여기저기 연대활동으로 바빠서 돈 버는 노란들판은 남의 자식 취급인데 뭐가 예쁘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한 인간이 통과해야 할 터널과 쓰라린 장면들, 그리고 살을 찢고 나와야 하는 변태의 순간들을 가장 순명하게 받아들인 자로 박경석을 생각해요. 그리고 그가 겪어 낸 수많은 이별들과 그로 인해 그에게 왔을 고통과 눈물을 생각하고 그렇지만 그것들을 이유로 물러나거나 우회하지 않았던 그의 순수함과 책임감이 일관되게 힘을 발휘했던 세월을 기억하고 있어요.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장년(?)이긴 했지만 백발이 성성한 노인(미안~)이 된 오늘까지 그의 말과 행동이 대체로 어긋남이 없고, 좀 정신없긴 해도 말투나 태도의 맥락도 거의 일정하다는 점을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우리는 힘이 들 때, ‘그만 할까?’를 생각하게 돼요. 그 것은 그만해도 되는 위치에 있었거나, 그만 하고 가고 싶은 곳이나 갈 수 있는 곳이 있었거나, 이도저도 모두놓고 싶은 순간을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는 소진의 시점을 맞이했기 때문이거나 하겠죠?
박경석은 아마도 25년 가까이 단 한 번도 ‘그만’하거나 ‘잠시’ 쉬자고 하지 않았을 거고, 그런 그를 원망하거나 따라가긴 쉬워도 누군가 그의 앞에 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쯤 되면 대체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하려고 이러나 싶으시죠? 엊그제 박경석을 만났어요. 전생에 고래였는지 어부였는지 역시 일관되게 ‘회’를 그렇게도 좋아하는데 맘먹고 술 한잔하자더니 얼마 먹지 못하더라고요. 그리고는 올 초부터 상근비를 받지 않고 있고, 퇴직금을 정산해서 전장연 벽돌기금으로 내고는 교통비만 지원을 받고 있다며 조금 취한 채 장콜을 타고 귀가했어요. 뭐랄까 아주 조금 비감한 마음이 들었다면......(저도 취했었나봐요 ㅠㅠ)
저는, 박경석이 골골하며 백수하길 바래요. 지금처럼 가끔 만나서 술 한잔할 수 있으면 좋고, 그 긴 세월동안 형태를 달리해 반복하고 있는 그의 꿈과 말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렇지만 이미 다 알아들었다는 것을 서로 알 수 있는 오랜 친구로 남고 싶어요.
그리고, 다시
......
힘을 내요. 박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