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으로 일구는 땅, 대항로
조아라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항로로 정착한 후, 책상에 물건이 하나둘 쌓이는 게 뿌듯합니다.
글쓰기를 어려워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루에 인사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이곳 ‘대항로’에 둥지를 튼 지 벌써 3개월을 꽉 채워 간다. 그동안 집회, 기자회견 혹은 일정을 별도로 잡아야 겨우 만날 수 있던 사람들을 이제는 매일 혹은 식사 때 마다 본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호들갑스럽게 안부를 나누며 웃음꽃이 활짝 핀다. 그래, 우리는 진작에 함께 살았어야 했어. 사건과 상담으로 묶이는 관계가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며 맺는 관계란 감도부터 다르다. 우리가, 드디어, 대항로에서, 함께 산다.
저항의 길, 대항로1)
1) 이글에 나온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은 박현 님이,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육권 투쟁’은 박경석 님이, ‘탈시설 투쟁’은 임소연 님이, ‘이동권 투쟁’은 문애린 님이 작성했다. 4월 25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대항로 파티’에서 글쓴이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 글들을 차분히 낭독했다.
젊음과 예술의 거리인 ‘대학로’를 우리는 ‘대항로’라부르기로 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서막을 연 이곳에서, 장애인인권운동이 지나온 길을 기억하고, 앞으로도 ‘저항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작명이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다가오는 뜻이 새삼 가슴을 달군다. 땀과 눈물이 뒤엉켜있는 곳,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손길이 얼룩진 곳, 여러 켜마다 쌓인 역사는 또 끊임없이 제 나이를 먹어가는 곳, 매일 길을 오가며 꾸준히 뿌린 씨앗의 열매를 끝내는 보고야 마는 곳… 그래, 이곳이 대항로다.
1)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서울 한복판에 “420장애인차별철폐의 투쟁”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리며 투쟁의 서막을 알렸던 곳.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양방향으로 처음 생겼던 곳, 대학로 2003년 420투쟁 때 장애인이동권연대 중심으로 모든 진보운동단체들을 조직해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기획단’을 만들었고 326을 420투쟁 시작일로 정하고 최옥란열사 추모기일로 삼게 되었다. 4월 20일 행진 당시 경찰은 6시 땡하고 일몰이 되면 여과 없이 해산명령방송을 했고 강제 해산(연행)을 시켰던 시기였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장장 7시간 동안 밤 9시가 넘어서야 종로 한복판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장애인에게 420 투쟁은 척박하고 차별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끈질기게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2)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육권 투쟁
평생을 집구석에서 교육받지 못하고 차별받아왔던 장애성인의 교육권을 위해 15년이라는 시간동안 견뎌오고 투쟁했던 정든 공간을 뒤로 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며 교육받기 위해 ‘다시 떠나’ 뿌리 내린 이곳 대항로. 2008년 1월 그해 겨울은 어느 때보다 매서웠지만 천막야학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리고 ‘야간학교’로 시작했던 노들이 평등의 들판을 일구기 위한 ‘야학’으로 거듭났던 순간이었다. 그 어떤 시련 속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을 우리의 사랑으로, 우리의 투쟁으로, 바로 이곳 대항로에 노란들판을 일구기 시작했다. ‘인간 존엄과 평등’의 희망을 일구어 내는 우리의 실천은 해방을 향한 연대의 몸짓이며,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위한 대항로를 우리는 이곳에서 개척해나갈 것이다.
3) 탈시설 투쟁
탈시설 투쟁은 인간 존엄에 대한 투쟁이다. 함께 웃고 울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살아있는 존재로서 ‘나’를 증언하는 투쟁이다. 바로 이 곳 이 자리는 존엄의 투쟁 탈시설 투쟁의 역사적 현장이다. 2009년 6월 2일 시설장애인의 역습! 김진수, 김동림, 황정용, 방상연, 하상윤, 주기옥, 김용남, 홍성호 마로니에의 8인이, 시설은 아니다. 좋은 시설은 없다. 우리가 있을 곳은 지역사회,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게 33일을 바로 여기 대항로에서 노숙하였다. 탈시설을 권리로서 요구하였다. 탈시설장애인 한 명 한 명은 혁명가가 되었다. 한 명 한 명의 삶이 탈시설 투쟁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우리는 다시 이 자리에 모였다. 마로니에 8인 혁명의 정신을 이어 대항로의 길을 개척하러 대항로! 이곳은 우리 탈시설 투쟁의 현장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4) 이동권 투쟁
몇 명의 장애인들과 대학생, 시민들이 함께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고 외치며 거리로 나와 버스를 점거하고 버스타기를 몸으로 실천했던 이동권 투쟁의 메카 대학로. 수많은 선전전과 기자회견 등 끝도 없이 길에서 삶을 보냈던 기억을 간직한 곳이며,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콜택시 등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와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마음껏 다닐 수 있는 누구에게 나 보편적인 권리를 우리는 투쟁으로 만들었다. 다시 한 번 이동권의 투쟁을 시작했던 마음으로 대항로의 시대를 열고 싶다.
앞으로 나아갈 길,
얼마 전 한 장애인이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하여 결국 사망했다. 하지만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기계를 또 누군가는 타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여전히 턱 앞에서 우리는 굶주림과 생리욕구를 뒤로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이 땅에서 장애인은 배움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교육에서 배제된다. 마로니에 8인 투쟁 10년째인 해에도, 30,980명의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실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 과연 우리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새삼 서럽다. 하지만 ‘대항로’는 누가 터준 길이 아니다. 그동안 변두리에 불과했던 장애인의 현실에 분노하고, 행동으로 저항해온 사람들이 함께 일궈온 길이다. 사회제도의 변화는 대항로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앞으로 나아갈 길도 마찬가지다. 나와 내 옆 사람을 믿고, 불의에 대한 저항을 주저하지 않으며 나아가는 그 길이 바로 대항로일 것이다.
★ ‘대항로’에 새롭게 입주한 단체를 소개합니다. 잘 부탁해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애해방열사단/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 보증금 1억 마련을 위해 ‘벽돌회원’을 상시 모집 중!
1명의 벽돌회원은 30만원~100만원의 벽돌을 쌓을 수 있습니다. 벽돌기금은 ‘5년 후 상환받기’와 ‘완전후원’ 둘 중 하나의 방식을 고르실 수 있답니다.
‘완전후원’ 벽돌은 기부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합니다. ‘5년 후 상환받기’는 기부가 아니기 때문에 기부금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습니다.
(문의: 대항로 5층에 있는 누구나에게! 특히 아라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