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115호 - [교단 일기] 6년 만에 다시 시작한 미술수업 / 정석환

by (사)노들 posted Sep 12,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6년 만에 다시 시작한 미술수업

 


정석환 │노들 미술반 교사. 어쩌다 보니 전공과는 별 관계없는미술 교사를 맡고 있다.

 

 

꾸미기_정석환_교단일기2.jpg

 

   원래 2011년부터 12년까지 대략 2년 동안 노들의 미술시간을 진행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곳의 분위기나 돌아가는 모습들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도 6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닌지라 오랜만에 방문한 노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도 적잖게 달라져있었다. 극장과 맛집으로 빽빽한 대학로 한구석의 크지 않은 건물 한 층에 뜬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힘겹게 살림을 꾸리던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면 한결 여유가 생겼달까. 건물 자체는 그때 쓰던 건물 그대로지만, 세 개의 층을 전부 쓰면서 넓어진 공간은 학교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친목을 나누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는 느낌이었다. 늘어난 공간만큼 이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에 일종의 커뮤니티가 생겼다는 인상도 들었다.


6년 전보다 나아진 듯한 살림뿐 아니라 구성원들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 6년 전에 수업을 하면서 안면이나 친분이 있던 분들은 졸업이나 개인 사정 등으로 많이 떠나시고 학생들 면면도 처음 뵙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예전 수업에서는 주로 손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서 수업진행에서 보조교사 분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던 반면, 이번 학기에는 손의 거동 자체가 불편한 분들은 거의 없어서 아무래도 비교적 적은 도움만으로도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나 자신도 아무래도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과거보다는 약간의 체계나 노하우 같은 것이 생긴 기분도 들었고. 예전의 수업이 주로 무언가 그리거나 만들고 싶은 학생들의 욕구에 맞춰 그때그때 최소한의 주제만 정해주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이었다면, 이번 학기의 경우 수업이라는 정의에 충실하게 학생들에게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으로 수업의 컨셉을 잡았다.


그냥 손이 가는대로 자유롭게 그리고 만들면서 그 시간을 즐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남들에게 좀 더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익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도 제대로 하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필요한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번 학기 초에 맨 먼저 시작한 것은 물체의 형태와 명암(그림자)을 연필로 정확하게 그리는 것이었고,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색깔의 농도를 조절하는 방법, 먼 물체와 가까운 물체의 거리를 파악하고 원근법에 따라 풍경을 그리는 법 순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중간중간에 흥미를 유도할 수 있을 만한 자유로운 그리기나 영화감상 등의 시간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마치 국어나 영어 수업을 하는 듯한 딱딱한 분위기의 수업으로 진행된 것도 사실이다.

 

 

꾸미기_정석환_교단일기3.jpg

 


아마도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전의 다른 미술선생님들이 진행하던 방식에 비하면 이런 방식의 수업이 그리 큰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국어나 산수, 과학 같은 학교의 필수과목들도 아닌데 첫 시간부터 교사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선 긋는 것부터 하나 하나 지시에 따라야 하는 수업방식이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다행히도 학기말을 앞둔 지금까지 수업 자체는 학생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의욕을 보여준 덕에 큰 불상사 없이 진행되고 있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매주 빠짐없이 출석해서 수업에 열의를 갖고 참여해준 덕에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큰 난관 없이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재미없는 수업에 예의상(?)으로라도 매주 참여해서 열심히 따라와 준 학생들에게는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그저 손이 가는대로 연필과 붓을 움직이는 차원을 넘어, 참여해준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보고 생각한 것을 의도한 것에 가깝게 그려낼 수 있는 기본적인 감각이 손에 배기 시작한 듯하여 그 점 또한 다행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목적이야 어쨌든, 일종의 특별활동에 불과한 미술수업에서 너무 딱딱하게 판에 박힌 수업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게 사실이라 2학기부터는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좀 더 자유롭게 학생들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해볼 계획이다. 한 학기동안 지루하게 반복해서 강조했던 원근이니 비례니 크기니 하는 무수한 단어의 뜻이 학생들에게 온전하게 전달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학생들이 미술시간이든 따로 시간을 내서 하든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나갈 때 약간의 도움은 되지 않을까? 자조적이긴 하지만 지난 한 학기에 그 정도의 의미는 부여해보고 싶다. 한 학기동안 참여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고 감사드립니다.


Articles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