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2009년!
탁영희 │ 처음 노들바람에 글을 쓰게 되어 어색해요. 저는 올해 20살이 되었어요.
요즘 오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두 집 살림하는 중입니다. 두 집 살림 힘드네요.
쌍용 자동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광화문 농성을 하던 시기였다. 그날의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추석이다. 광화문 지하에서 차례를 끝내고 대한문 앞에 있는 쌍차 농성장에 처음 방문했다. 사실 가기 전까지 무슨 내용의 농성을 하는지 몰랐다. 단지 나는 그냥 따라갔다. 그날이 내가 처음 쌍차를 알게 된 날이다.쌍용 자동차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사회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활동이었는데 나는 그때 ‘쌍차’가 떠올랐고 그 내용을 주제로 탐구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정리해고’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정리해고가 쌍차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쌍용 자동차 노동자들이 복직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이뤘구나’를 생각했다. 하지만 끝나지않았다. 전원복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에게 ‘쌍용 자동차 노동조합’은 학령기의 한 페이지이며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곳이다.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정리해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노동자를 위한 법은 없다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김득중 아저씨가 단식 농성 중이던 시기에 연대 문화제를 하러 갔다. 강정 마을에서 본 그들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동료가 단식해서인지 아니면 1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힘들어서인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지쳐 보였다.
또한, 학교에서 ‘쌍차’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싸운 훌륭한 투쟁’으로 소개 된다. 그들의 투쟁은 누구나 본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올해 처음으로 쌍차에서 하는 ‘같이 살래요’를 했다. 의미가 너무 좋았다. ‘쌍용에서 만든 차에 쌍차 동지들을 태워 연대자들이 차를 끌어 청와대까지 간다.’라는 내용이다. 120명의 복직과 그들이 10년 동안 한 연대와 그들의 투쟁이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에 갔다. 나는 10대에 쌍차를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었다. 쌍차는 나에게 학령기 교과서 같은 존재였으며 ‘연대’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전원복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작은 일일지라도 그것이 커져서 전원복직이 되는 날까지 함께할 것이다. 예전에는 청소년이라서 제약도 많았고 핑계가 있었지만 그때 하지 못한 연대들을 올해부터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