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114호 - [장판 핫이슈] 3평 투쟁이 열어놓을 세상 평창동계올림픽, 평화 그리고 평등을 말하라! / 김순화

by (사)노들 posted Aug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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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 투쟁이 열어놓을 세상 평창동계올림픽, 평화 그리고 평등을 말하라!

 

 

김순화 │ 안녕하세요! 지난해 12월부터 소통하고, 함께하고, 멋지게 싸우고, 항상 현장의 중심에 서 있는 (사실.. 정말 바쁜ㅎㅎ)서울장차연만의 매력을 알아가느라 정신없는 요즘을 보내는 김순화 입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88서울올림픽 이후로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다. 1988년 그 후, 지금 우리는 아직도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문화예술권리, 그리고 사회보장권리 4가지의 평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여러 방면에서 각 부처들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투쟁을 통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켰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더미다.

 

“1988년 ‘(경증장애인 중심의)양대 법안 투쟁’을 통해 쟁취한 ‘일할 권리’와 ‘복지’를 넘어서, 이동하고 문화 예술 활동을 하고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보장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 즉, 장애인의 4가지 평등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을 넘어서 ‘평등올림픽’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동정’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시대를 우리 손으로 끝내자.” 이 시점에 박경석 대표의 이 투쟁 제안이 있었고, 우리는 ‘3평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발표한 ‘평창, 평양, 평화’를 통해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라는 기조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우리의 3평 투쟁 기조는 2015년 UN총회의 기본정신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Leave no one behind)’이다. 평등 없이 평화란 있을 수 없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소외된 누군가는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점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3평 투쟁의 목표는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도종환 문화예술관광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면담을 통해 우리의 요구안 전달 및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합의를 하고 예산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의 주체로서 일할 일자리가 없었던 것,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시내버스, 시외버스 등 일상적인 이동할 권리에서 배제되었던 것, 장애인의 문화예술은 동정, 시혜, 극복의 신화로만 비쳐졌던 것,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에 묶여 개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것, 이처럼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 살아도 시설과 다를 바가 없는 이 세상을 이제는 바꾸자는 목적으로 각 4개 부처의 장관들과의 면담을 쟁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2월 2일 3평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2월 9일 개회식 맞이 평등올림픽 투쟁, 2월 13일 ~ 15일 2박 3일 동안 서울역 농성을 하며 진행 된 설 귀향객 집중 선전전 및 각 당 대표들을 만나서 우리의 요구를 알리는 면담잡기 투쟁, 3월 7일 ~ 3월 10일 투쟁을 통해 도종환 장관을 축사로 이끈 평창 패럴림픽 국제컨퍼런스, 3월 9일 패럴림픽 개회식 맞이 3평 비전선포식까지.. 노동권 농성을 접은 지 얼마 안 된 와중에 쉴 틈 없이 각 단위들이 서로 협력하며 거대한 투쟁들을 통해 각 부처 장관들과의 면담 약속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쟁취해낸 것 같다. 작년 12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나로서는 엄청 중요한 시기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애인운동.. 30년이 넘는 정말 긴 시간동안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했다. 문화, 사회적 이슈, 기계의 발달, 4차 산업혁명까지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장애인의 속도는 똑같았을까?

 

장애인의 속도는 너무 느리다. 왜 이렇게 느릴까?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 누군가의 속도는 빠르고, 누군가의 속도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 속도는 누구에게 맞춰져 있는 것일까? 지금 외치고 있는 이동권, 노동권, 문화예술권리, 사회보장권리는 사실 너무 기본적인 것들이다. 너무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를 생존의 권리로써 목숨을 걸고 외쳐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이 나라에 살기 위해 투쟁해야 할 것들이 왜 이렇게 많기는 또 많은 것일까. 대학을 갓 졸업한 뒤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며 느꼈던 의문점과 그 이후 IL이념을 가지고 있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느꼈던 의문점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정말 어려웠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서울장차연 활동 이후로도 또 계속해서 생겨나는 세상의 구조에 대한 의문점으로 가득 채워져 가지만 이제는 그 해답을 조금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탈시설해서 자립생활주택에 머무르게 된 분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적이 있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태어나서 시설에서 10대, 20대를 보내온 삶의 과정들을 들었다. 내가 살아온 삶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 때도 의문점이 들었었다. 그이와 나의 차이점은 장애유무, 태어난 집안의 자본소유 크기 정도일 것 같다. 똑같은 시대에 태어났는데 왜 내가 살아온 삶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의 차이 때문이었다. 당연한 것을 목숨 걸고 외쳐야하는, 계속 해서 배제되어가고 누군가의 속도에 숨이 벅차게 따라가야만 하도록 만들어 놓은 잔인한 구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이제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동정’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시대를 우리 손으로 끝내자.” 3평 투쟁의 기조가 모두에게 너무도 절실하고 와 닿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길고 외로운 투쟁의 시간을 보냈다.

 

이번 3평 투쟁을 통해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제발 생존의 위협을 가하는 적폐들을 끝내는 새로운 시대가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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