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승리하는 한판의 투쟁을 준비합니다
박경석 │ 노들장애인야학 고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지난 2월8일 검사가 구형한 2년6개월에 대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재판부 최종선고를 앞두고 연기되었음. 현재는 새로운 재판부에서 처음부터 다시 재판이 진행 중에 있음.
“저는 박경석입니다. 저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앞에 동지들에게 소개된 정태수, 박흥수 열사를 88년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며 만났습니다. 저는 83년에 교회 가라는 엄마 말 듣지 않고 주일날 토함산에서 행글라이딩 타다가 추락하여 척수가 마비된 장애 최고등급인 1급 중증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어머니는 “니가 엄마 말 듣지 않고 장애인이 되었으면서, 어디 가서 너무 까불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저는 죽기 위해 오년간 집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죽지 못해 88년에 장애인종합복지관에 갔습니다. 그 당시 나는 직업훈련 받고 취직해서 첫 봉급을 우리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었던 정말 착하게 살고 싶었던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사람이 줄을 잘 서야 한다고요. 저는 줄을 잘 서기 위해 복지관에서 선생님 말 정말 잘 들었습니다. 내 동기 정태수가 데모를 일부러 조직하기 위해 국민체조를 못하게 하려고 훈련생을 꼬시는 나쁜 짓을 알아채고 선생님에게 꼬발렸던 정말 정의로운 합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마음은 더욱 공허해지고 무엇인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한잔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줄을 잘못 서게 되었습니다. 태수와 흥수형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과 나눈 대화와 행동은 현대적 용어로 동료상담 정도이었겠죠.정말 힘 있는 동료상담은 내가 왜 지역사회에서 「분리·제한·거부·배제」 되어 차별받는 이유를 깨닫는 것이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공간에 함께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그것을 배웠습니다.
최정환 열사의 시신이 탈취되는 연세대학교 장례식장 그곳에서 저는 경찰들의 최루탄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분노를 알았습니다. 이덕인 열사가 안치되었던 인천 길병원 영안실 벽이 백골단의 해머에 깨져나갔던 그 현장에서 저는 절망했고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도 함께 배웠습니다.
나의 동지. 최옥란, 정태수, 그리고 사랑하는 형 흥수형을 2002년 이동권투쟁 한가운데 보내야했습니다. 추운 겨울 우동민 열사를 보냈습니다. 아무리 싸워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국가인권위가 우동민 열사의 죽음에 사과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국가인원위 건물을 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화장실 정도는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우리 투쟁의 결과라 생각합니다. 장애인운동의 힘은 바로 투쟁하는 대중들의 물리력입니다.
바로 여기 청와대 입구에서 함께 있는 동지들입니다. 그것이 태수와 흥수형이 내게 가르쳐준 진실이고 선물입니다. 그 진실과 선물을 두고 나는 이 투쟁 현장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1,842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장애수용시설 폐지를 위한 광화문지하차도 투쟁에서 김주영, 지우·지훈 파주어린남매, 송국현, 그리고, 그리고.. 박흥구, 박종필까지 떠나보냈습니다. 85일의 중증장애인노동권 점거농성 투쟁하면서, 1990년 당시 태수와 흥수형이 집회 간다고 따라오라 해서 따라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앞 집회에서 괜히 앞에 있다가 경찰들에게 군화발로 짓밟혔던 생각이 났습니다.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투쟁의 노동권이 2018년 중증장애인 노동권으로 연결된 투쟁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이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을 차별하는 근본적인 모순에 좀 더 다가간 투쟁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투쟁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제가 저 하늘나라 가서 태수와 흥수형에게 전하면서 자랑하고 싶습니다.
비록 그대들 때문에 개고생 했지만, 장애인이 되어 인생 망친 줄 알았는데 한평생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게 줄을 잘 세워줘서 고맙다는 말도 함께 하렵니다. 그 자랑스런 투쟁. 피하지 않겠습니다. 힘들지요. 동지들. 저는 참 힘들어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와 중증장애인을 배제시키는 이 사회와 권력 앞에 굴종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곳은 청와대 앞입니다. 바로 앞입니다. 거리는 가깝지만 여전히 내 마음의 거리는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이제 진짜 승리하는 한판의 투쟁을 준비합니다. 그것이 각자에게 무엇이든지, 저에게 그것은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힘들지요.
동지들.
함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2018.3.26.
청와대 앞 최옥란 열사 16주기 및 장애해방열사 합동추모제에서 박경석
(추모제 현장 발언을 지면에 옮겼습니다_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