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봄 114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나의 탈시설기 당신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마세요! / 정소영

by (사)노들 posted Jul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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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탈시설기 당신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마세요!

 

 

정소영 │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권익옹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소영입니다.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어여....

 


  나는 20여 년간 성남에 위치한 소망재활원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다가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역사회로 나와 자립을 시작했다. 내생에 첫 전입신고일~! 2015년 3월 2일!! 이 날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우선 내가 시설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생활을 짤막하게 이야기하자면 4살 무렵 길에서 발견되어 성남시의 의뢰로 시설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들어가게 된 시설이지만 안전한 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누군가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 시설 안에서 나는 나름 많은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 할 수 있는 기회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초등학교 4~5학년 때 쯤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네가 이 재활원 안에서 많은 혜택을 받아 다른 식구들보다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뛰어나 보이지만 이 다음에 커서 사회에 나가보면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당시에 나는 이해를 할 수도 없고 오히려 반항심으로 뭐든 주어진 것에 나 나름 열심히 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하는 과정에서 일반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특수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나는 일반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그 당시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으로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일주일 정도 울면서 일반학교에 보내달라며 단식투쟁을 했지만 내 힘으론 역부족이었던 걸까?

 

난 환경과의 타협을 하면서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마음을 다잡았다. 공부는 혼자 알아서 하면 되는 거라고.. 그러던 중 특수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학제의를 받았다. 내가 전학갈 곳도 특수학교이긴 하지만 일반교과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서 공부를 하기엔 훨씬 수월할 것이란 말에 난 고민 없이 전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학 갈 학교가 재활원에서 꽤 먼 곳이라서 전학을 가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나는 덜컥 겁부터 났기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많은 고민 끝에 전학을 가기로 하고 이것저것 짐을 챙겨 전학 갈 학교로 갔다.

 

내 생에서 처음 재활원을 떠나 중, 고등학교 6년이란 시간을 머물렀던 기숙사.. 여기서 나는 정말 많은 경험과 성장을 하게 되었던 같다. ‘사회로 나가보면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라는 말의 뜻을 나는 이 학교에 온 지 반년 만에 알게 되었고.. 아 그동안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원망하기도 하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애인 생활시설에 들어간 것에 대해 왜 그래야만 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아 난 그동안 마루타처럼 살았구나,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 수많은 생각과 방황을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끝없이 방황을 했던 나는 자연스레 학업은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방황을 하던 중 어느새 나는 고2가 되었다.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좋은 담임을 만나 정신 차리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나는 학업도 중요했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재활원으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이 더 컸기에 학내에서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 학내 학생지원팀을 찾
아가 상담을 했고, 학기 중에는 입학과 동시에 만들어진 장애학생지원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방학 중에는 외부 기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던 중에도 나는 생활시설 소속이었기 때문에 내 통장에 얼마가 어떻게 들어오고 나가게 되는지 사회복지사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난 그게 죽기보다도 싫어서 시설에서 관리하는 통장과 별개의 통장을 개설하여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내가 돈을 벌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시설에서 관리하는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들어오는대로 그냥 막 썼다. 계획 없이 돈을 막 쓴다는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것 때문에 자주 싸우기도 했지만 난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넌 우물 안 개구리야! 넌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그래! 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어서 학업보단 학교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대부분 지원을 했다. 결과가 언제나 좋을 순 없었지만.. 될 때까지 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너 이 성적 가지고 공부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때 내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지 마세요! 때로는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요”라고.... 시간이 또 흐르고 흘러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되었고, 먼저 자립한 언니, 오빠 그리고 성남에 위치한 센터의 도움을 받아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한 후에 시설에 나 이렇게 집도 구했고 돈도 이만큼 모아두었으니 난 나가겠다! 라고 통보하듯이 말을 했고 아직도 그 놀라던 표정들이 잊히지가 않는다.^^

 

 

이렇게 나는 자립에 성공했다.

 

 

가끔 아주 가끔 혼자 모든 것을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게 서럽지만 그래도 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언제나 내 삶은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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