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을 관람하고 나서...
<추신>, 장애인문화예술판 2017년 작품
이은애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중증장애인응급알림 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합니닿ㅎㅎㅎ 술이 좋은 이유는 술과 함께 그 사람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요즘 술과 함께 사랑도 좋아지는 중입니다.^^
연극 <추신>의 주된 내용은 추한 몸이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연극배우 분들이 나와서 자신의 몸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셨다. 이번 연극에서는 뇌병변장애인,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장애 유형의 배우 분들과 그리고 성소수자 배우 분까지 함께 나오셔서 연극을 해주셨다. 연극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추한 몸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추한 몸인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혹은 나의 추한 면들 또한 추한 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모두가 추한 면이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있건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건 간에 말이다.
연극에서 보여주는 추한 모습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충분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극 대사에는 이런 말이 나왔다. “00아 너의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른 친구들처럼 할 수 있어~” 그러쟈 장애인 연극배우는 “선생님 제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고 하셨죠? 그런데 저는 저만큼의 거리도 움직일 수가 없어요...”(대사는 더듬은 기억으로 쓴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그 부분을 보면서 나도 저런 추한 발언을 경증 장애인에게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발언이 어쩌면 추한 모습 추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차별이었음을..
사람은 천부인권사상을 가지고 태어난다, 서로의 모습을 비판하거나 칭송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추하다는 기준을 만든 것도 인간이고 외모지상주의를 뿌리박은 것도 인간이다. 사람은 본질 그 자체가 사람일 뿐이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말이다. 추한 몸을 그들의 몸이라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도 연극에는 담겨져 있었다. 내가 나라서 싫다고 그렇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나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 들여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의 받아들이기 싫은 면을 비로소 받아들여 질 때 어쩌면 추한 나의 모습에서 벗어나 완전한 내가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