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변론
2018년 1월 8일 오후 5시
서 울 중 앙 지방법원 418호에서
존경하는 재판관님,
제가 이곳 법정에서 유무죄를 판결받기 전에 재판관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관님, 2015년 4월 15일, 새벽 6시경. 서 울시 중랑구에 사는 한 아버지가 가족들이 집안 을 비운 사이에 혼자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자 신의 친자식의 뒤통수를 망치로 세 번치고, 그래 도 죽지 않자 목 졸라 살해한 사건(사건 2015고 합111 살인)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에게 새벽 에 망치로 맞아 죽은 친자식은 41살의 지적장애 1급인 장남이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수 십 년 동안 집에서 돌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이 늙고 병들어 이제 죽을 때가 다 되었고, 자 신이 죽고 나면 처와 둘째 아들이 그 장애인 아들 을 돌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심히 부담이 될까 봐, 그 장남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했던 비극적 인 사건이었습니다.
2016년 11월 20일, 전주에서도 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2016년 11월 23일, 경기도 여주에서 또다시 한 어머니가 장애 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습니다. 단 3일 동안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짧은 기 간 동안 두 명의 부모가 두 명의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였습니다. 중증장애인들이 이렇게 한 명씩 한 명씩 그 가족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는 그 부모와 가족들이 중증장애인을 부양 하느라 가중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선택한 비극적인 결과였습니다.
재판관님, 그런데 과연 그 부모가 살인자일까 요. 저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 이 사건들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에게조차 죽임을 당하는 중증장애인은 이 사회에서 도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지 하철리프트를 타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공간이동’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를 이 사회 에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시민들 과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 리듬도 경쾌하고 그 당시 유행했던 ‘랩’도 있는 노래입니다. 그 노래의 랩 부분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내 모습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큰 모순, 자유, 평등, 지키지도 않는 약속 흥! 닥치라고 그래, 언제나 우린 소외받아왔고,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그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 의 시선, 위선 속에 동 정 받는 병신인 줄 아나! 닥 쳐 닥쳐라, 우린 병신이 아냐!!” 그 당시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장애인 인구의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 었 고, 거리의 턱 때문에, 그리고 혼자서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 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했다는 것. 그것은 사회 전체가 장애인들에게 창살 없는 감 옥 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했습니다. 버스도 같이 탈 수 있도록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도입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교 통약 자 이 동편의증진법’을 만들어서 제3조에 (이 동권) 이라는 권리를 명시할 수 있었습니다. ‘교통약자 이 동편 의증진법 제3조 (이이 동권) ;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이 법은 2001년에 장애인이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4년을 싸워서 2005 년 1월 27일에 제정이 되었던 법입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고속버스, 시외버스, 마을버스는 장애인들이 한 대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법에는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 진 다 고 했지만, 버스사업자나 국가는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동서울 버스터미널에 고속버스 차표를 끊고 매번 명절 때 마다 가는 이유입니다. 우리도 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싶어 버스표를 끊고 고속버스를 타러 간 것입니다. 그것이 집회가 되어 불법 집회라 검찰이 기소한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검찰의 기소를 받아들인다 해 도, 중증장애인들도 평등하게 모든 교통수단을 차 별 없이 안전하게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인 이 동 권만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 동권. 재판관님 그것을 함께 지켜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중증장애인들은 이동할 수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장애인 중 45%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한 학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 다. 70명이 넘는 중증장애인들이 학령기에 마땅히 초등학교에 다녔어야 하는데 장애 때문에 받지 못해서 지금 그들과 함께 밤에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공부하고 그들이 지역사회 에서 완전하게 통합하여, 이 사회에 함께 참여하 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 중 다수는 지역사회 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늦은 나이 에 장애인을 수용하는 거주시설에서 탈출하듯 나 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밤에 시설에서 기 어서 탈출해 나 오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와 함께 공부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수용하는 거주시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곳이 바로 ‘꽃동네’입니다. 교황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신다 했을 때 저희들은 많이 기뻤습니다. 세 월호 광장에 유가족들을 만나서 위 로 한다는 뉴스를 보며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 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었습니다. 교황님께서 ‘꽃동네’를 방문하신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장애 가 심한 중증장애인도 수용중심의 거주시설이 아 니라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있도록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택을 마련해 달라 요구하고, 활동보조서비스 시간도 늘려달라고 요 구하고, 장애등급제, 부 양의무제를 폐지해서 중증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 서비스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탈 시설 운동을 열 심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 소식은 우리의 눈앞을 캄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명동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저희는 단 지 교황님께서 대표적인 장애인 수용시설인 꽃동네를 찾아가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교황님처럼 힘 있는 분들 이 한국에 오셔서 꽃동네를 간다는 것은 한국에서 탈 시설을 꿈꾸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에게 큰 절망 을 안겨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의 현실을 잘 모르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 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수용시설을 유지하는 데 기여해 온 정부가 그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가 될까 봐 심히 우려되었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을 찾아간 것은 이 밖에 다른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명동성당에서 우리를 막아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교회가 힘없는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포용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 우 리 들 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다만 이러한 이유로 명동성당에 들어가려다 갑자기 일어난 불상사에 대해서는 명동성당에 깊이 사과를 드렸고 지금도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재판관님,
우리 노들장애인야학 학생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저는 개 새 끼 입니 다.’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학생은 35년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고 노들야학을 다니면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적에는 집구석에서만 있었고, 부모님들이 직장에 나갈
때면 그는 ‘밥 먹어라. 집 잘 봐라’란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저녁에 돌 면 ‘밥 먹었냐. 집 잘 봤냐’며 한 말이 그가 들은 말의 전부였습니다. 동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 면 구석방으로 비켜서 혼자 지내야 했답니다. 그래 서 그는 자신이 ‘개새끼’라 여겼답니다. 집만 지키는 ‘개새끼’ 말입니다.
재판장님,
부모에게 맞아 죽어야 했던 그 자식들의 처참 한 현실과 자신을 ‘개새끼’라 생각하는 우리 노들 장애인야학 학생들의 피눈물 나는 고백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 그런데 헌법 제11조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차별을 받지 아니 한 다’ 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진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 진실을 재판관님께서 지켜주시고 증명 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들은 방구석과 시설에서 쓸모없는 폐기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족이 부담스러워 그 자식을 죽였습니다. 그 자식을 집구석에 개새끼처럼 묶어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담스러우면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로 보내버렸습니다.
모든 국민은 차별받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것은 개인과 가족의 책임이 아니 라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나라’라 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대한민국에는 중증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헌법은, 법은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하지만, 정부는 언제나 예산 타령으로 그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가 참여했던 그 모든 집회와 시위는 중증장애인들이 이 세상에서 ‘폐기물’로 처분당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소리 높여 외친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 사회에서 무척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포 기하지 않고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그 권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가 뿌리내리게 해주십시오.
재판관님, 긴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 1. 9. 박 경석 드림.